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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주 Mar 16. 2024

직장어린이집의 추억

 지금은 아홉 살인 우리 아들이 세 살일 때, 나는 첫 번째 복직을 했다(모든 나이는 만 나이가 아닌 한국나이 기준이다). 지금 복직이 너무나 괴롭고 캄캄한 데 비해 그때는 복직이 이렇게 무겁지 않았다. 왜 그런가 생각하면 아무래도 육아가 버겁고 힘들던 차에 복직과 직장어린이집 입소가 동시에 이뤄졌기 때문인 것 같다. 그리고 그때 배치된 부서의 업무는 큰 카테고리에서 내가 해본 일이었기에 지금처럼 두렵지는 않았다.


 당시 같은 부서에 있던 동기는 '야, 나는 첫째 낳고 복직하니까 몸이 편해져서 갑자기 둘째가 생겼어. 둘째 생각 없으면 조심해.'라고 말해줬다. 그만큼 아이 영아기 시절의 육아휴직은 힘들다. 그맘때의 아이를 키우다 보면 물론 많은 감동의 순간이 있지만, 정말 지난하고 몸이 힘들고 마음도 괴롭다. 동기는 이어서 '맞벌이 직장인이 애 둘 키우는데 양가 부모 도움 없고 시터 안 쓰면 이혼하거나, 퇴사하거나, 병이 생기거나 셋 중 하나다'라는 잊을 수 없는 명대사를 던졌다. 


 그때 우리 아이는 월령 18개월에 허벅지가 든든한 우량아였는데, 아직 말은 한마디도 못 했고 어린이집 적응기간 한 달 내내 울며 엄마를 찾았다. 나는 우리 회사 최고의 복지는 어린이집이며, 직장어린이집의 안정적인 운영과 선생님들의 헌신적인 돌봄이 정말 더할 나위 없이 훌륭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정말 좋은 기관이고 선생님들인 것과 별개로 아이에게 늘 편안하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복직한 주에 바로 외부 교육받을 일이 있었는데 일정을 마치고 회사로 돌아오면 우리 아이만 어린이집에 남아있곤 했다. 선생님에게 안긴 채 울고 있는 아이, 적응 안 된 어린이집에 10시간 넘게 있으면서 모든 친구들이 부모님과 함께 떠나는 걸 본 아이를 만나면 마음이 아팠다. 하지만 어른은 일을 하고, 아이는 어린이집에 가는 것이라고 외치며 졸업까지 만 5년을 꽉 채워 다녔다. 


 때때로 닥치는 가슴 아픈 순간들을 아이의 성장과정에서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받아들일 수 있다면, 직장어린이집 자체는 정말 좋은 시스템이다. 회사와 같은 건물이라는 것 자체가 엄청난 메리트로, 출퇴근길에 등하원이 가능하다는 일상적인 편리함을 넘어서서 아이에게 혹시 문제가 생길 때 내가 5분 내로 가볼 수 있다는 안정감이 있다. 아침 8시부터 밤 9시까지 보육의 문이 열려있고 시설도 훌륭하다. 아이를 키우는 기혼 직원들은 직장어린이집 덕에 회사에 대한 충성심이 올라간다고들 말한다. (회사의 한정된 복지 예산을 어린이집에 지나치게 많이 사용한다는 불만을 가진 직원들도 있다.)


 그런데 우리 아들이 입소한 게 직장어린이집이 설립된 지 5년 정도 된 시점이었단 걸 생각하면, 대체 그전에 우리 선배분들은 어떻게 맞벌이를 할 수 있었나 의문이 든다. 동네 어린이집에 보내면 출근시간 전에 애를 맡기기가 힘들고, 퇴근하고 애를 찾기에도 너무 늦은 시간이다. 양가 부모 중 누군가의 헌신, 또는 좋은 시터를 만나는 천운 및 경제력이 필요하다. 지금도 모든 회사에 직장어린이집이 있는 것은 아니고, 모든 직장어린이집이 실제로 직장에 위치한 것도 아니라는 걸 생각하면 아이 키우며 부모가 둘 다 경력을 이어가는 게 쉽지 않은 일이다. 물론 프리랜서 또는 하이브리드 근무가 가능한 일자리가 많아져서 육아와 일의 병행이 비교적 용이한 분들도 꽤 있지만, 일반적인 직장을 기준으로 생각해 보면 아이 키우며 경력 이어가기가 쉽지 않다.

 

 직장어린이집 졸업식 때 아이들은 울지 않는데 엄마들만 훌쩍거렸다. 잘 있거라 동무들아... 끄허어어업. 등하원을 맡았던 부모들은 마지막 해에 같은 반이었던 아이들이 친척 아이처럼 익숙했고, 직장생활을 하며 애를 실어 나르는 노고를 함께 겪으며 동지의식도 돈독했다. (신기한 건 아이 아빠가 우리 회사 직원이고 원래 친분이 있던 경우에도 결국은 엄마들끼리 더 친해졌다.) 내 아이를 포함해 귀여운 우리 어린이 친구들의 성장과 이별이 감개무량했다. 


  아침잠이 많은 애를 들쳐업고 출근하다 허리가 삐끗하거나, 등원(=출근)하는 차에서 아이가 토를 해서 패닉에 빠진 채 운전하거나, 하원길에 회사 로비에서 마구 뛰고 구르는 아이를 황급히 쫓아가 붙들거나... 아이를 데리고 직장에 다니다보면 여러모로 좋다고만은 할 수 없는 인상 깊은 추억들이 잔뜩 생기는데, 그 아수라장을 떠올릴 수록 직장어린이집에는 고마운 마음만 든다. 직장인 부모에게 꼭 필요한 동반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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