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직후 출근 3일차, 신기하게 내 몸이 알람 울리기 5분전에 깨어난다. 이번에 복직하면서 8시~5시 근무를 신청해서 이전에 비해 1시간 이상 일찍 일어나야 하는 점이 걱정됐었는데 피로는 어쩔 수 없지만 기상에는 문제가 없다. 달리 생각하면 내가 출근에 그만큼 압박을 느끼고 있는가보다.
집을 나서는 시각 7시 10분, 아이는 푹 자게 두고 남편은 내가 나오기 직전에 깨운다. 오늘은 신발장에 막 발을 디딘 순간 아이가 '엄마, 아직 안 갔지?'하고 황급히 부르며 나오길래 꼭 안아줬다. 아이는 한 번의 포옹을 받고 다시 자러 들어갔다.
복직해서 좋은 점을 굳이 생각해본다. 일단 출퇴근길 운전하면서 팟캐스트로 시사 프로그램을 듣는데, 진행을 잘 하시는 건지 오랜만에 세상사 듣는 재미가 있다. 집에서 지낼 적에는 시간이 있어도 정치/경제/사회 쪽으로 영 관심이 안 갔더랬다. 트럼프가 내세우는 정책이라든지, 우리나라의 출산율 현황이라든지 중국 이커머스 업체들의 활발한 해외진출 같은 이야기를 들으면서 경각심이 들기도 하고, 세상이 망하려나 싶기도 하고 헛웃음이 나오기도 하는데 대체적으로 흥미롭다. 작년부터 친구들이나 미술학원 선생님 등등 여러 곳에서 만난 다양한 사람들로부터 알리바바나 테무에서 쇼핑한 이야기를 들었었는데(진짜 싸다. 그런데 엉망인 것도 많다) 그냥 그렇구나- 했던 게 굉장히 글로벌한 흐름이라는 걸 깨닫는 순간은 재미있다.
그리고 당연히 경제적으로 보다 여유로운 느낌이 든다. 아직 월급날은 안 됐지만, 약속된 캐시플로우가 있기에 쿠팡 앱 화면을 가로지르는 손가락이 경쾌해진다. 아이가 보고 싶어하는 책도 도서관에서 빌리지 않고 그냥 사 준다. (물론 이건 도서관에 갈 시간이 없어서 그런 면이 크기 때문에 꼭 좋은 점이랄 수는 없다.) 복직하면서 도우미 아주머니 방문횟수를 늘렸고, 출근해보니 사무실 천장 조명이 내 책상을 약간 빗겨나가 있길래 3일차인 오늘 스탠드를 주문했다. 큰 돈은 아니지만 이런저런 소비가 훨씬 쉬워졌다.
그 외에 좀더 차림새에 신경을 쓰고, 루틴하게 생활하고, 아이와 나의 준비물이나 옷차림을 미리미리 챙기는 부지런한 사람이 된다는 장점이 있다. 사실 장점이라기 보다는 그냥 생존 방편이다. 또, 휴직하면서 사귄 동네 친구들도 참 좋지만 회사에서 1n년 간 알고지낸 동료들은 격의없이 편해서 좋다. 그리고 회사 내외의 많은 사람을 만나고 딴생각할 틈이 없는 생활패턴 자체가 누군가에게는 직장생활의 장점이 될 수 있다.
육아휴직하고 집에 있을 때는 내 일과가 아이의 일정에 맞물려 있기에 아이가 내 의식을 떠날 새가 없는데, 일하고 있다보면 아이 생각이 끊긴다. 아이와 분리된 나라는 인간이 있다. 하지만, 내가 지금 업무에 대한 만족도나 자기효능감이 너무 낮은 상태라 이건 지금 장점으로 와닿지는 않는다. 업무만족도가 높다면 '아이를 잊고 내 일에 몰입하는 시간이 있다'라는 건 장점일 것 같다.
생각할수록 명백한 장점은 잘 모르겠고, 그냥 역시 직장에 다니니 뭐가 많이 다른데 지금 생활도 워커블하다...정도의 마음이다. 나는 집에 있는 시간이 너무 길어질 때의 단점(잡념이 많아진다든지, 루틴이 흐트러진다든지, 아이에게 지나치게 신경쓰게 된다든지)도 분명히 있다고 생각하기에 일을 아예 안하고 싶진 않다. 하지만 역시 내 소원은 정년까지 반일근무랄까... 일 조금, 살림 조금, 취미 조금, 가족과의 시간도 조금, 게으름도 조금. 그렇게 얄팍하게 이것저것 하는 게 나에겐 이상적인 생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