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여름휴가는 제주도로 다녀왔다.
제주도를 여행할 때 내가 좋아하는 장면들은 이런 순간이다. 늦은 오후에 곽지해수욕장에 가서 남편과 아이는 게를 잡고, 나는 잠시 구경하다가 해수욕장에 돗자리 하나 깔고 누워 책을 읽는다. 그러다 보면 노을이 바닷가의 검은 갯바위들과 모래 위로 분홍 장막을 드리우는데, 그때 공기의 색감은 내 살결까지 물들일 것 같이 선명하다. 어두운 바위와 부서지는 파도의 물살 위로 내려앉은 진한 분홍. 그런 저녁 풍경이 펼쳐질 때가 되면 웨딩 촬영을 하는 커플들도 종종 보인다. 그렇게 바다에 들어가지 않은 채 바다를 즐기고 나서 피시앤칩스와 깔라마리 튀김을 먹고 숙소로 돌아가면 행복하고 만족스럽게 반나절이 지나간다. 그리고 다음날 나만 먼저 일어나서 커피를 내리고, 창 밖으로 마당이 보이는 식탁에 앉아 책을 읽거나 일기를 쓴다.
하지만 여행에서 내가 좋아하는 호젓한 시간이 차지하는 비중은 소소하다. 우리 일정에는 목장 방문, 981파크, 바다 물놀이, 수영장, 서바이벌 체험 등등 아이가 좋아하는 놀거리가 잔뜩이다.
특히나 이번 여행에는 야심찬 컨텐츠가 하나 있었으니, 7시간짜리 야간 배낚시를 신청해뒀다. 낚시카페를 굉장히 좋아하고 항상 실제 자연에서 낚시를 해보고 싶어 하는 아들을 위한 일정이었는데, 전에 체험 배낚시 한 시간짜리는 몇 번 해본 적이 있어서 단계를 끌어올렸다. 아무래도 뱃멀미와 기대에 못 미치는 결과 때문에 실망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지만 그런 점까지 포함해서 경험이니까. 혹시 이번에 영 힘들고 지루해서 다시는 안 한다고 하면 그 또한 나쁘지 않지-라는 마음이었다.
배에 오르기 직전, 남편은 아들에게 몇 마리나 잡힐 것 같냐고 물었다.
"나는 세 마리 잡고 싶어."
"그 정도 잡히면 다행이지."
섬에서 유년기를 보냈고, 아버님 낚시에 따라가 지루하게 땅 파던 기억이 있는 남편은 낚시의 조과에 굉장히 부정적인 뷰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아무래도 애가 뱃멀미를 할 것 같다고 걱정했다.
우리를 포함해 8명의 낚시손님과 선장님, 세 명의 선원분이 탄 배는 한 시간 가까이 나아간 뒤 집어등을 켰다. 우리가 신청한 건 오징어 낚시인데, 한치나 갈치 등 다른 어종이 잡힐 수도 있다고 했다.
오징어 낚시는 릴에 달려있는 수심 체크 액정을 보고 선장님의 안내에 따라 수심을 바꿔가며 낚싯대를 드리워야 한다. 그러면 물결의 너울을 따라 낚싯대가 위아래로 휘청거리는데, 그 정상적인 흔들림과는 다르게 좀 방정맞게 움직일 때가 있다. 그게 릴을 감아올릴 타이밍이었다. 오르내리는 낚싯대의 끄트머리를 보고 있으면 '이게 너울인가 오징어인가'라는 생각이 들지만 그래도 '앗, 혹시?' 싶어 올려보면 반 이상은 맞았고, 선원 분들은 곁눈으로 쓱 보기만 해도 '지금 걸렸어요!' 하고 알려주셨다.
남편의 걱정과 달리 아이는 멀미를 하지 않았고, 힘들다고 투덜대거나 징징대지도 않았다. 게다가 오징어가 너무 잘 잡혔다. 우리 셋이 합쳐서 21마리를 잡았다. 선원 분들은 최근 일주일간 오늘 조황이 제일 좋다며, 배에 낚시 손님이 보통 10명 내외로 타는데 한 배에서 열 마리도 못 잡을 때도 있다고 했다.
조과도 좋고, 애 컨디션도 좋은 와중에 심각한 문제가 있었으니, 나와 남편이 모두 극심한 뱃멀미로 뻗어버렸다는 것이다. 멀미약을 설명서 시간에 맞춰 먹어 두었지만 아마 멀미약도 토한 것 같다. 그날의 손님 8명 중에 우리 둘만 지독한 멀미에 시달렸다. 나는 출항 직후부터 속이 울렁거렸고, 초반에는 낚시를 좀 하고 애도 살펴봤지만 몇 차례 뱃전에서 바다를 향해 토한 뒤로는 그냥 멍해졌다. 어느 순간 남편도 뱃전을 붙잡고 거듭 토했다. 우리는 번갈아 토하고, 음료수로 입을 헹구고, 콧물을 닦고, 벤치에 구겨진 빨래처럼 놓여 있다가 이따금 정신력을 긁어모아 아이와 낚싯대를 체크했다. 하지만 그것도 어느 순간 포기하고 그냥 벤치에 쭈그려 누웠다.
이미 충분히 오징어를 잡았는데, 멀미하는 인간을 계속 배에 태우는 것만으로도 지옥이 완성되겠구나-라는 생각이 드는데 아직 출항한 지 세 시간이 채 안 됐다는 걸 확인했을 때의 절망감이란. 처음엔 나만 누운 줄 알았는데 게슴츠레 눈을 떠보니 아들이 혼자 낚싯대 앞에 서있었고, 고개를 돌려보니 옆 벤치에 남편이 누워 있었다. (아이를 많이 도와주신 선원분들께 무척 감사하다.) 인간은 의지로 육체를 지배할 수 없는 것이었다... 누워있는 게 그나마 낫고 몸을 세울수록 멀미가 심해지고, 걸음을 떼면 더욱 심해지는 지라 내내 화장실도 못 갔다.
그날은 오전에 비가 많이 왔고, 오후엔 비가 긋다 말다 했는데 낚시를 하던 도중에 비가 거세게 내리기 시작했다. 우리 아들은 우비를 입은 채 시야가 아득해질 정도로 내리는 비를 맞으면서도 홀로 비장하게 낚시에 집중했다. 천만다행으로 비가 너무 많이 내려서 예정보다 일찍 낚시를 접게 되었다. 비가 심하니 다들 양해해 주시면 일찍 항구로 돌아가겠다는 안내가 너무나 반가웠다.
비록 나는 멀미에 먹혀 버렸지만, 육지라고는 보이지 않는 밤바다 위에서 작은 낚싯배에 타고 바라보는 풍경엔 예상치 못한 아름다움이 있었다. 집어등으로 밝혀진 밤바다 속에서 은빛 비늘이 빛나는 물고기들이 보였고, 떼 지어 날아가는 이름 모를 새들은 등이 검고 배가 흰색이라 어두운 그림자처럼 날아가다가 방향을 바꾸면 단박에 하얀 꽃송이처럼 반짝였다. 비는 많이 왔지만 바람이 심하진 않아서 위험하거나 무서운 느낌은 없었고, 빗줄기 덕에 그 순간이 좀 더 밀도 있게 느껴졌다.
그리고 낚시라는 본목적에 너무 잘 맞게도 오징어가 심심할 틈 없이 낚여서 양손이 묵직해지는 굉장히 실존적이고 물질적인 즐거움이 있었다. 잡은 오징어는 당장 먹을 2마리만 남기고 나머지는 항구로 마중 나온 수산물 업체에 맡겼다. 업체에서는 무게를 달아 가격을 측정하고 오징어 내장 손질, 진공 포장, 급랭 후 원하는 날짜에 택배로 부쳐줬다. 진짜 배달의 민족 만세다. 앞으로 1년은 오징어를 사 먹을 일이 없을 것 같다.
그러니까, 야간 배낚시는 멀미만 하지 않는다면 참 재미난 활동이다. 하지만 당신이 멀미를 한다면 멀미가 그 활동의 핵심이 되어버린다. 나는 다시는 못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