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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바라기 Oct 21. 2023

야나할머니와 비향기

떴다 떴다 비행기 날아라 날아라

똥 싸는 비행기

"어 비행기 똥 싸고 간다."


산책을 하던 남편이 하늘을 보며 말했다.


"저걸 비행기 똥 싼다고 하는 거야?"


"우리 클 때는 비행기 똥 싼다 했는데 당신네 동네선 뭐라고 했어?"


"우리? 글쎄 뭐 딱히 따로 부른 말은 없었는데 그건 있었지 저렇게 비행기가 날아가다 하늘에다 숫자로 8자를 그리면 그건 전쟁이 난 거라서 피난 가야 한다고"


"전쟁이 나면 그 동네 자체로 안전할 텐데 어디로 가? 그 얘긴 누가 했는데"


"우리 할머이?"




슬마 곡선인가?

6.25 전쟁을 겪으셨던 할머니는 전쟁에 대한 공포가 어마어마하셨다. 어린 자녀를 데리고 중기를 넘어선 임산부의 몸으로 피난길에 올랐던 할머니는 사람 목숨이 파리 목숨 같았다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시며 몸서리를 치셨고 내가 크는 동안에도 전쟁 얘긴 자주 하지 않으셨지만 유독 큰 소리를 내며 날아가는 비행기 소리엔 예민하셨다.


"야야 니 그거 아나? 하늘에 비향기가 팔짜를 그리믄 그건 전쟁이 났다는 소리여"


"에이 할머이도. 동그라미도 아니고 조종사 골 흔들리게 어려운 팔자를 그릴라고"


"이잉 내 말이 참말이라니"


할머니의 단호하고 확신에 찬 목소리에 숫자 8은 내게 강렬하게 각인되었고, 그 후로 비행기가 날아가는 소리가 들리면 무조건 하늘을 살펴보는 습관이 생겼는데 곧게 한 줄로 긋고 가는 비행기 배기가스 흔적과 어쩌다 길게 곡선을 그리고 가는 흔적은 신기하고 재밌기보단 근심에 가까웠다.




짧은 비행기 똥

다행히도 어른이 될 때까지 하늘에 그려진 8자는 보지 못했다.

고등학교 여름방학식날 학교 화단에 잡초 제거를 당하고 있던 우리 반 아이들은 "김일성이 뒤졌댜 곧 전쟁 날 거야"라는 거짓인지 참인지 애매모호한 담임선생님의 중계를 들었고 한 시간도 넘게 칠월 중순의 땡볕 아래 교복치마를 동여 잡고 모기와 싸우며 풀을 뽑는 그 상황에선 차라리 전쟁이 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진짜 김일성은 죽은 게 맞았고 몇 날 며칠 뉴스에서 보도되는 부고 소식을 들으며 불안한 방학을 시작했는데 할머니는 전쟁이 날 거라고 내내 근심하시며 똑같은 뉴스만 뱅뱅 돌려주는 라디오에 온 신경을 바짝 모으고 계셨다. 그런데 평상시 시험철엔 도움 일도 안되던 암기력은 어디서 능력을 끌고 온 것인지 나는 아나운서 같이 뉴스 기사를 줄줄 읊고 있었고 우연인지 몰라도 좁은 동네 하늘 위로 센 소리를 내는 시커먼 비행기가 유독 더 많이 날아다녔는데  할머니는 '쏴아' 하는 소리가 들릴 때마다 내게


"야야 비향기가 팔짜를 그리나 안 그리나 잘 보래이"


근심스러운 목소리로 물어보셨는데 나는 결코 믿고 싶진 않았지만 비행기 소리가 날 때마다 마당으로 나가 하늘을 올려다보고 보고를 드렸다.




나의 코 훌쩍 시절.

학교 다니던 내내 막연히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 노래 불렀고, 통일이 되어야 한다고 6월만 되면 수두룩 빽빽 원고지를 채웠지만 그 어려운 통일은 되지 않았다. 스물한 살의 남동생은 신체검사를 마치고 빡빡머리로 의정부 훈련소로 입대를 당했으며, 온 가족이 오매불망 기다리던 동생의 휴가는 비상에 여러 차례 무산 되기를 반복하며 어른들의 애간장을 녹였고 불안한 뉴스가 나올 때마다 할머니와 부모님은 혹여나 전쟁이 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셨었다. 그렇게 몇 번의 휴가를 거친 동생은 무사히 전역을 했고 그와 동시에 군대와 군인에 대한 나의 모든 관심은 깡그리 사그라지고 없었는데 웬걸, 시간이 지나 내가 낳은 아이가 군대엘 또 다녀왔고 제대병이 아닌 전역병의 상황에 우크라이나를 넘어선 이스라엘 전쟁까지 진행 중인 지금 나는 할머니와 엄마처럼 또다시 전쟁에 대한 염려로 뉴스를 보고 있다.




높이 높이 날아라 우리 비행기

지나간 일요일.

주말을 기다리는 설렘과 소망으로 월화수목금을 버텼으나 나를 무너뜨린 독감으로 나는 토일을 맘껏 누리지 못하고 자리보존하고 누워있었다. 잘 먹고 잘 쉬어야 난다고 하는 감기는 잘 먹고 잘 쉬었지만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내가 약에 취한 건지 잠에 취한 건지 모르게 비몽사몽 한 상태로 있었는데


"쏴아~"


정말 여태껏 태어나서 들은 소리 중에 가장 크고 무서운 소리가 창 밖에서 들려왔고 한 번 지나가고 말겠지 싶었지만 소리가 멀어지는 듯하더니 더 큰 소리를 내며 마치 우리 집 거실로 당장이라도 쳐들어 올 것 같은 가까운 소리로 느껴지면서 귀도 먹먹해지고 그 순간 영화 속 한 장면처럼 시간이 멈춘 것 같은 울렁울렁 묘한 느낌이 들었다.


"우리 전쟁 난 거 아니야?"


겨우 자리에서 일어나 배란다 밖 하늘을 쳐다보며 말하는 나의 소리에 남편과 아이들도 방에서 나왔다.


"뜬금없이 전쟁은. 블랙이글스 연습하나 보네. 근데 이 정도면 정말 낮게 나는 소린데"


남편도 목을 길게 빼고 하늘을 쳐다보았고


"어 어 어 또 소리 난다. 또 오나 봐"


나의 급한 목소리에 아이들도 베란다로 달려 나온 그 찰나 정말 최고의 굉음을 내며 10대도 넘는 비행기가 날아가는데 나는 멋진 것은 둘째치고 온몸에 소름이 돋고 두려움이 느껴졌다.  


"우와 정말 멋있어요"


"근데 너무 낮게 나는 거 아니야? 저러다 견물에 부딪히면 어떡해?"


감탄을 하는 큰 아이와 걱정스러운 작은 아이의 대화를 들으며 나도 우리 옆동네에 새로 지은 고층 아파트에 부딪힘 어쩌나 걱정도 되었다.


"다 간 거지? 휴우, 세상 다 조용하네"




큰고모와 지주도(할머니 발음 제주도)에 다녀오셔서 생전 첫 비향기를 타신 것을 아침저녁으로 자랑하시던 할머니를 이해했던 것은 고등학교 2학년 때 수학여행이었다. 할머니가 말씀하셨던 큰 비행기, 큰 마당, 나름 기대하고 상상했던 것을 느끼고 체험할 새도 없이 후딱 끝나버린 나의  첫 비행은 큰 감흥 없이 지나갔지만 집에 돌아와 할머니와 비행기 얘기를 나눌 수 있는 계기가 되었었다.


오늘도 우리 동네 비행기 길엔 여러 대의 여객기와 헬리콥터가 날아가고 여전히 비행기 똥을 싸고 있는 비행기를 보고선 그 선이 직선인지 곡선인지를 여전히 살피고 있는 나를 보고 피식 웃었다. 반갑고 재밌긴 한데 나는 언제쯤 비행기 똥에 자유로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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