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별바라기 Dec 02. 2023

야나할머니와 쎄쎄쎄

동동 동대문을 열어라

"우리 저녁 뭐 먹을까아?"


"맛있는 거"


"그러니까 맛있는 게 뭐냐고?"


"부드럽고 달콤하고 따뜻하고 바삭하고"


"그게 뭔디?"


"아마도 치킨?"


"고뤠? 치킨 먹을 사람 요기 요기 붙어라 안 붙으면 땡이다"


"오빠 치킨 먹을 거지 빨리 와서 붙어"


"나, 나, 나 나도 치킨"


방에 있던 남편이 어린아이처럼 뛰어와 손을 잡았고 어느새 네 식구의 손가락 탑이 쌓여 있었다.




한참의 시간이 지나 반가운 벨소리와 함께 치킨이 배달되었고 식탁에 둘러앉았다.


"근데 신기하지? 내가 어렸을 때도 요기 요기 붙어라 하고 놀았는데 너희들도 그걸 알아듣잖아"


"엄마랑 아빠가 가르쳐 준거잖아. 우리 어릴 때 날 요기 요기 붙어라 해놓고선"


"잉? 우리가? 너희들이 친구들한테 배워온 거 아니고?"


"학년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긴 지만 비슷비슷했던 거 같아요. 안내면 진거 가위바위보! 그것도 학년이 바뀔 때마다 그 뒤에 개미똥구멍부터 줄줄줄 뭐가 계속 따라붙고 외울게 많아졌었거든요."


"생각 안 나? 너 어렸을 때 아빠 퇴근하고 오면 쎄쎄쎄 무한 반복하다 잠들었잖아. 동동 동대문을 열어라도 그렇고"


", 기억 저는 동대문에서 문을 닫는다에서 잡히려고 일부러 천천히 걷고 그랬는데. 벌칙으로 아빠가 턱수염 공격이나 간질간질해 주셨잖아요."


"어 아빠 얘기 듣고 보니 갑자기 쎄쎄쎄가 하고 싶어졌어. 아빠 치킨 그만 먹고 이리 와봐"


"노노, 먹던 닭이나 다 먹고 하면 안 될까?"


"아빠 이런 건  받았을 때 해야 해 미루면 못해 귀찮아져"


남편과 작은 아이의 손은 처음엔 맞지 않고 삐그덕 거리며 서로 웃기 바빴지만 몇 번을 거치고 나니 웃음기는 빠지고 손이 보이지도 않는 속도로 진지하게 진행되었다.




"할머이 뭐 해?"


"뭐 하긴 놀지"


"아무것도 없는데 뭘 하고 놀아?"


"이래 가마이 있는기 노는 기지. 와 내하고 놀아줄라고?"


"할머이 심심해 뭐 재밌는 거 없을까?"


"니 동상이랑 마큼 이리 와본나. 내 노리 갈촤 줄게"


나와 동생들은 반짝이는 눈으로 할머니 앞에 모여 앉았다.


"쎄쎄쎄 아침 바람 찬 바람에

울고 가는 저 기러기

우리 선생 계실 적에

엽서 한 장 써주세요

한 장 말고 두 장이요

두 장 말고 세 장이요

구리 구리 멍텅 구리 가위 바위 보"


"할머이 근데 노래가 쫌 이상한 거 같애"


"히히 이상하나? 할미가 노래를 못해서 그래"


그렇게 할머니가 알려준 쎄쎄쎄는 어마무시 강력한 중독성을 가지고 있었다. 동생들과 나는 시간이 날 때마다 마주 앉아 손을 붙잡고 쎄쎄쎄를 하며 놀았고, 노랫말이 길어 첨엔 다 외우지도 못하고 음만 흥얼거리다 우리 맘대로 개사도 하고 그렇게 불렀는데 우리의 엉망진창 음정, 박자, 가사는 엄마가 다시 가르쳐 주셔서 누가 들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수정되었다. 그리고 우리의 놀이 속도를 따라오지 못하던 꼬꼬마 막냇동생은 가만히 잠자코 있다가 마지막 부분에서만 목청 껏 보만 외치며 매번 주먹만 내밀었다.




"푸른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에

계수나무 한 나무 토끼 한 마리

돛대도 아니 달고 삿대도 없이

가기도 잘도 간다 서쪽 나라로"


열심히 아침바람 찬바람을 외치던 부녀는 어느새 곡명을 바꿔 쎄쎄쎄를 하고 있고 한 번도 어긋나지 않고 곡을 끝내고서 둘 다 시간이 엄청 지났음에도 몸이 기억하고 있다고 신기해하며 양손을 마주치며 웃고 있었다.


부녀가 노는 모습을 보며 노래를 듣고 있으려니 음정박자 도통 맞지 않던 할머니와 손바닥과 손등을 마주치며 쎄쎄쎄를 하던 어린 시절이 떠오르고, 더운 여름 말고 추운 겨울에 더 열심히 손을 움직여 놀았던 덕분에 손도 덜 시리고 동상도 덜 걸렸던 것도 생각이 났다.




쎄쎄쎄 푸른하늘 은하수, 동동 동대문은 할머니가 우리들에게, 엄마가 우리들에게, 우리 부부가 아이들에게 전해 주던 대대손손 놀이였다. 시간이 흘러 우리 아이들도 부모가 되면 그다음 세대 아이들과 그렇게 놀아 수 있을까? 질문을 던지고 보니  요즘 어린아이들의 양육 문화와 놀이 문화가 떠올라 이미 이별이 진행 중이란 생각이 들어 섭섭한 맘이 쿡 박혔다.


며칠 전부터 오늘이 올해 들어 최저 기온이라 추위에 대비하라던 기상캐스터의 당부 때문일까? 유독 따숩던 할머니 손이, 따숩던 할머니 방이 너무도 간절하게 그리운 오늘이다.

음정, 박자 다 엉망이었지만 가사만큼은 정확했던 할머니 노랫소리가 귓가에 맴돌고 그 시절 조금은 젊으셨던 할머니 모습을 한 그날 밤으로 나는 추억여행을 간다. 간 김에 구들장에 좀 지지고도 와야겠다. ^^;

작가의 이전글 야나할머니와 찰밥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