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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바라기 Feb 24. 2024

야나할머니와 민해투

내겐 없는 재주

설날 오후 하나 둘 도착한 우리 자매들은 늦은 점심이자 이른 저녁을 먹고 거실의 널따란 전기장판 위에 대자로 누워 등을 지지고 있었다.

불과 한나절 전만 해도 앞치마를 두르고 동분서주하던 모습에서 해제되어 늘어진 모습은 마치 할머니방에 있던 화로  우주선 찜기 안에서 하염없이 늘어지고 있던 허연 인절미 같았는데 그런 우리의 모습을 보신 아부지가 윷놀이라도 하자 제안하시어 남편은 달력 종이 뒷면에다 말판을 그리고 나는 어젯밤 조카들이 땀을 뻘뻘 흘리도록 던지고 놀다 두고 갔다는 윷가락과 포장지가 다른 사탕 개씩을 챙겼다.


아버지가 만드신 윷

사진 속에 있는 이 윷은 막냇동생이 초등학생 때부터 던지고 놀던, 아버지가 산에서 해 온 굵은 싸리나무로 만드신 것인데 지금은 그 시절 막냇동생보다 더 큰 조카들이 해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와 함께 즐기고 있다. 집엔 기계로 만든 윷도 여러 종류 있지만 손에 닿는 느낌과 바닥에 던져질 때 나는 그 특유의 청량감 때문에, 그리고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뒤집힌 것도 아니고 선 것도 아닌 애매한 윷가락에 식구들은 모두 아버지의 윷을 선호했고 진짜 놀라운 것은 윷가락이 특히 어린 조카들이 던질수록 윷이나 모를 여러 차례 나오게 마법을 부리것이었는데 나의 두 아이들도 어린 시절 본인이 던진 윷가락의 마법으로 놀이에서 역전을 할 때마다 신나 만세를 부르며 깡충거리던 시절이 있었다.




한바탕 윷놀이 시간이 지나 목도 축이고 거실 환기도 시키며 기지개를 켜던 나에게 아부지가 말씀하셨다.


"늬는 화투는 안 치제?"


"오~ 아빠 돈 많은갑네. 어디 그럼 지난번 소 판 돈 내가 싹쓸이해 볼까? 여보~ 우리 기름값을 넘어 생활비 벌어갈 수 있겠다. 얼른 판 깔아. 근데 나애당초 글렀고 당신만 믿을게"


나의 말에


"앗싸 오늘 OO 씨 주머니 탈탈 털어보자. 자기야 언니는 일도 걱정 안 해도 되고 형부만 경계하면 돼. 자 빨리 자리들 잡으셔"


늘 아버지를 OO 씨라 애칭 하는 여동생이 제부에게 윙크를 하며 담요를 펼치자


"기름값을 벌어가는 건 괜찮은데 정당하게 해야지 화투를 부부로 치믄 되나?"


아부지가 엄청 수줍게 말씀하셔서 한바탕 웃고 담요 위엔 동양화가 펼쳐지기 시작했다.


두 개는 아버지가 깔아놓으신 ^^


"어이쿠야! 이게 이렇게 맞을 수가 있나?"


아버지가 당신의 추측대로 맞춰지지 않는 화투장에 세장 연거푸 두 번이나 쌓이자 당황해하시며 웃으셨고 곧이어 남편이 똥을 싸는 상황까지 겹치자 모두 배를 잡고 웃었고 동생이 이런 장관은 기록을 남겨야 한다며 사진을 찍기에 나도 따라 찍었다.


"이게 쌍피인지 초단인지 고도리도 구분 못하는 언니가 휘저어놔서 그래"


"나 이제 고도리는 아는데. 새 세 마리잖아"


맞았다. 이 모든 혼란은 나로부터 시작되었는데 나는 실력으론 한 푼도 못 벌고 광을 동전들이 유일했는데 제부가 몇 차례 쓰리고랑 흔들고 하는 주문을 외치는 바람에 나는 담요 밑에 꽁꽁 숨겨 두었던 종잣돈까지 몽땅 잃었다.


"아니 판을 딱 보고 나를 밀어줬어야 이서방이 돈을 안 따는데 아니 짝은 강여사 대체 왜 그런 거야?"


"내가 진짜 담에 올 땐 고스톱 특강이라도 받고 제부돈이랑 아빠 돈을 몽땅 따 주겠어. 제부 담 명절에도 판돈 넉넉히 준비해서 귀국해요."


"짝은 강여사 담에 기대해 보겠어. 이거 뭐 추측불가니 심쫄한 맛은 있네"


"근데 오늘 내가 판을 교란시킨 건 진짜 미안한데 이건 다 할머이한테 민화투만 배워서 그래. 고스톱을 배웠어야 했는데"


"맞다 언니야 생각나나? 우리 할머이 방에서 엄마 몰래 민화투 진짜 많이 했는데"




"할머이 뭐 해?"


"뭐 하긴 지수띠기하지"


"지수띠기가 뭔데?"


"요래요래 깔믄서 오늘 수가 있나 없나 보는 기지"


"할머이 이걸로는 지수띠기 밖에 못해?"


"못하긴. 고스돕도 하고 민해투도 하고. 니 내 민해투 갈촤주래?"


그렇게 엄마의 눈을 피해 시작된 할머니방에서의 동양화 그림전 조기교육. 근데 그때부터 나의 실력은 엉성했다. 분명 그림은 맞추는데 마지막에 점수 내는데서 꼭 막혔고 그런 나를 보며 할머니는 혼자 중얼거리셨다.


"희한 키도. 니는 강가가 아닌갑다."




나는 나중에서야 알았다. 내가 아는 집안의 모든 강가들이 동양화를 맞추는 재주가 특별하고 윷놀이와 카드놀이에도 재주가 좋다는 것을. 하지만 나는 화투고 카드고 떠나 뭔가 다섯 장 이상 들고 있으면 머리가 뱅뱅 돌기 시작하는데 그간 설마설마했던 의심이 답으로 나왔다. 아빠 말대로 나는 진짜로 다리 밑에서 주워온 게 맞았나 보다.




뿌연 백열등 밑에서 아픈 무릎을 쭉 펴고 재수떼기를 하시던 할머니 모습.

그 옆에서 화투장을 잘 섞고 싶어서 주물럭 거리다 죄다 흘리던 나.

똥광이 손에 들어오면 좋아서 어쩔 줄 몰라하던 동생의 표정.

그리고 방패연도 만들어 주시고 팽이와 썰매를 만들어 주셨던 나의 아버지.


세월이 흐르고 흘러도 이 늙어가는 딸네미와 사위들과 놀이를 즐겨주신 다는 것이 너무도 감격스러운 설날이었다. 내겐 절대 없는 강가들만의 재주.

그리고 부모님의 인생 시계추가 빠르게 도는 것이,

나의 인생 시계추도 덩달아 빨라지는 것이, 점점 더 매일매일이 아쉽고 아쉽다. 

고맙고 감사한 나의 가족들.

사랑합니다.


추신: 그날 고를 외치던 제부는 왕창 딴 모든 지폐들은 야식을 만들어 주신 장모님께, 동전들은 장인어른의 저금통에 드렸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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