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는 매일 코를 골며 주무시는데 당신은 절대 코를 골지 않는다고, 내가 맨날 거짓뿌렁 한다고 우기신다.
"할머이 눈 떠봐 가요무대 나와"
"가요무대 벌씨 한다고?"
나도 할머니를 따라 지직 거리며 흔들리는 작은 화면을 보고 있는데 어느새 할머니는 또 코를 골고 계시길래 슬그머니 텔레비전을 껐다.
"이 마한, 내 듣고 있는데 와 끄나?"
"히히 할머이 안 자고 진짜 듣고 있었네?"
나는 할머니 옆에 누워 할머니가 음정 박자 다 초월하신 잃어버린 30년, 울고 넘는 박달재, 시골영감 노래를 듣다가 스르르 잠이 들었다.
저녁을 먹고 시어머니께 안부 전화를 드렸는데 뭘 하시냐고 여쭈니 가요무대 보고 주무시려고 기다리고 계신다는 답을 듣고 나는 오늘이, 겨우 월요일이라는 것에 상심했다. 시어머니와 할머니는 기대하며 기다리시는 월요일 밤. 그리고 나에겐 아직도 먼 토요일.
드디어 집안일을 마치고텔레비전채널을 돌리다진행 중인 가요무대에서 멈췄고아는노래가 나오길래즉석 노래방을 열었다.
[육십 세에 저 세상에서
날 데리러 오거든
아직은 젊어서 못 간다고 전해라
칠십 세에 저 세상에서
날 데리러 오거든
할 일이 아직 남아 못 간다고 전해라
팔십 세에 저 세상에서
날 데리러 오거든
아직은 쓸만해서 못 간다고 전해라
구십 세에 저 세상에서
날 데리러 오거든
알아서 갈 테니 재촉 말라 전해라
백 세에 저 세상에서
날 데리러 오거든
좋은 날 좋은 시에 간다고 전해라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오
아리랑 고개를 또 넘어간다]
"엄마 구전가요도 아니고 무슨 창법이야?"
"이 노랜 이렇게 타령조로 불러야 제 맛이야.이 노래 웃기다 생각했었는데 오늘가사를자세히 보니 웃을 일이 아녀 뭔가 심오해.이 가수야말로 진짜 백세 시대 산증인가수다.오늘 가요무대 진짜재밌네.
"엄마도가요무대가 재밌어지면 저기 방청석에 앉아 있는 할아줌아들처럼 방청 신청하는 거 아냐? 엄마 절대 그러지는 마. 근데한 가지 확실한 건 지금 나오는 저 가수 한복 완전 엄마 스타일이네"
"이거 왜 이러셩, 나름 애국자야. 저 댑따 큰 무궁화 안 보임?"
요 며칠 나의 옷 구매를 위해 작은 아이를 졸라 세 번이나 의류 매장에 갔지만 의견 차이로 허탕을 쳤고아이는 그런 나의 취향과 옷맵시에 대한 지적과 불만으로나는기가 죽어 있는 상황이었기에무궁화로 강하게 어필하였으나 다시 화면을 쳐다보니 헙! 죄송한 말이지만 진짜 북한 방송 보는 줄 알았다. 흐헉! 아이 눈에 보이는 나의 패션 감각이 저렇게나 대범(?) 하단 말인가?
오늘따라 재밌어진 가요무대.
나는 어린 시절 할머니방구들장에 배를 대고 엎드려 두 손으로 턱을 받치고 텔레비전을 보던 그 자세로 전기장판에 엎드려 세월 따라 변한 연예인들을 확인하며 가요무대를 즐기고있었고 그런 내가 웃기는지 작은 아이가같은 자세로 내 흉내를 내고 있었다.
잠시 후, 몇 곡의 노래부르다 보니어깨도 결리고 허리도 묵직하게 아파왔다. 역시 사람은 바른 자세가 중요한 걸 또 깨달았다.
그리고 참 신기한 일.
노래를 듣고 있다 보면 노래를 듣던 그 시절의 나로 그 감정으로 데려다 놓는 마법이 있다. 졸리는 눈을 부릅뜨며 할머니 옆에 엎드려 텔레비전을 보려고 애썼던 그 밤의 풍경이 바로 어제일처럼 노래로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