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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바라기 Feb 03. 2024

야나할머니네 꽁맨두

꽁맨두 아니고 꿩만두

"니네는 낼 집에 사람이 있나? 없나?"


친정엄마의 전화였다.


"집에 사람 있는지는 왜 물어보오? 엄마 우리 집에 마실 오실라고?"


내가 농을 던지자 엄마가 웃으며 말씀하셨다.


"그래. 아침 일찍 먹고 마실갈라 그란다."


"나는 내일 집에 없지만 엄마 오셔서 잘 놀다 가셔"


"니 낼 집에 없다고? 택배가 낼 들어갈 거라고 했는데 만두 다 녹아서 들러붙음 어쩌나?"


"내가 미촤. 허리 환자가 다리도 아프고 손가락도 아프다믄서 만두는 왜 해갖고 부치시"


"겨울에 일도 안 하고 놀민놀민 해서 부치믄 니들이 맛있게 먹잖나. 쪼맨치씩만 부칬어. 한집에 딱 오십 개씩 똑같이"


"아이고야 넷 집에 오십 개씩이면 이백 개인데 그게 놀민놀민이야? 나야 맛있는 만두 먹어서 좋지만 엄마 진짜 진짜 다시는 보내지 마"




오늘 저녁은?

엄마는 겨울철엔 꼭 닭 뼈까지 갈아서 넣은 만두를 빚으신다. 정말 밤을 꼴딱 새워 빚으시는 집념의 우리 엄마. 명절 때도 우리가 친정에 갈 때면 한 봉다리씩 싸주시고 경로당에 가셔서 동네분들하고도 종종 나눠 드시는데, 솜씨 좋고 손 빠른 엄마 덕분에 가장 큰 수혜자는 늘 나였다.


엄마의 예고 없는 택배가 온다는 그날 나는 시어머니의 간병으로 집을 비우게 됐고 집을 나서기 전 두 아이들에게 담당자가 누구라고 할 것도 없이 무조건 택배가 도착하는 그 순간 발견하는 즉시 안에 내용물들을 확인하고 냉장실과 냉동실로 옮겨 담으라고 신신당부를 했고 택배는 다행히도 운동을 다녀오던 큰 아이의 눈에 일찍 띄어 뽀얀 만두와 메밀전병, 식혜, 매운 닭발, 그리고 삶은 시래기까지 각자의 위치에서 조신하게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 저녁은 떡만둣국이야"


"어제 장모님이 보내 주신 거 먹으려고?"


"응 곰국도 있으니 끓일까 하고"


"장모님 이번에도 닭만두 하셨다나?"


"아마도"


"엄마 저는 물만두도 넣어주심 안될까요?"


"안될 거 뭐 있어. 더 넣고 싶은 거 있음 다 말해봐 내가 다 넣어줄게"


나의 장난기를 눈치챈 남편이 조용히 말했다.


"떡만둣국에 아무거나 막 넣고 그러는 거 아니야. 파 넣는 건 잊지 말고"




"할머이 그 뻘건기 뭐여?"


"뭐긴. 꽁괴기 짜들은 기지"


"꽁이 어서 났대?"


"어서 나긴 니 애비가 산에서 총 쏴서 시 마리나 잡아왔잖나"


"그걸로 뭐 해 먹을 건데?"


"뭐 해묵긴. 꽁맨두 해 먹지"


"할머이 꽁만두는 맛있어?"


"그라믄 맛있다 말고. 니 꽁 대신 닭이라고 그 말 못 들어봤나?"


하지만 내입엔 만두는 늘 매웠기 때문에 그리 반가운 얘기는 아니었다.




어디가 개울인지 어디가 인지 구분할 수도 없이 동네 전체에 눈이 어마무시하게 쌓였날.

밤 새 우리 집 뒤꼍과 옆집의 뒤꼍부터 이 집 저 집 주변을 어슬렁 거리며 지나간 엄청나게 큰 발자국 때문에 아침부터 동네가 들썩했다. 아침 군불을 지피고 쇠죽을 끓이러, 아침밥을 지으러 나가셨던 온 동네 어른들이 눈 위에 각인된 정체불명의 커다란 발자국 때문에 충격에 빠지셨고 내가 봐도 발자국 크기는 정말 막냇동생의 머리만큼이나 컸다. 옆집 할아버지는 산에서 범이 내려온 거라고 하셨고 할머니도 산에서 본 짐승 발자국이라고 하셨는데 아빠는 발을 내디딘 모양새가 범 발자국은 아닌 거 같다고 했지만 그분들 대비 다는 이유로 의견이 강력히 전달되진 못했다.


아침을 드신 동네분들이 한 분 두 분 다시 우리 집 마당에 모이셨고 뒤꼍에 발자국을 들여다보며 연신 줄담배를 피시며 혀를 차셨고, 존재는 모르지만 이것이 또 언제 나타나 가축이나 사람에게 해코지라도 하면 어쩌냐고, 지서에서 조사를 나와 누구 발자국인지 밝혀내야 하지 않겠냐고 의견을 모았지만 무릎까지 푹 빠지게 온 폭설에다 강물까지 꽁꽁 얼어 차를 실어 나르는 배도 뜨지 못해 꼼짝달싹도 하지 못하는 상황이라는 답답한 소식만 날아왔다. 점점 시간이 흐르며 그 커다란 발자국은 어른들의 뜨거운 눈총과 더불어 유난히도 낮게 뜬 겨울 햇살에 스멀스멀 형체가 둔해지더니 모양을 잃어갔결국엔 땅속으로 도망가 버렸다.




그 일이 있은 후 동네 아저씨들은 사냥을 하시겠다고 신고한 총을 빌려 오셨고 그중엔 우리 아빠도 포함되셨다. 아빠는 당신이 군대 있을 때 사격 솜씨가 얼마나 대단했는지를 자랑하시면서 총을 닦으셨는데 혹여나 막냇동생이 쇠로 된 총알을 집어 먹을까 잘 지켜보라는 당부를 잊지 않으셨다. 엄마는 좁은 동네서 총소리 울리면 사람들 놀라고 사고 난다고 극구 말리셨지만 아빠는 걱정 말라시며 동이 트면 포수가 되어 산에 다녀오시는 것이 일상이 되셨고 신기하게도 점점 아빠의 포대 배낭엔 토끼, . 산비둘기가 담겨 있었는데 제일 소름 끼친 일은 시커멓고 털이 굉장히 거친 못생긴 멧돼지를 끌고 오신 일이었다.


아빠와 함께 먼 산 부터 돼지를 끌고 온 동네 아저씨는 어찌나 돼지가 무거운지 내복까지 흠뻑 젖으셨다고 했고 그 못생긴 돼지는 해체 작업도 한참이나 걸렸는데 너무 고약한 냄새가 나서 나는 도랑가엔 얼씬도 하지 않았다.




아빠가 멧돼지를 잡았다는 거품 소문은 삽시간에 이웃동네까지 소문이 났고 집에 오신 어른들은 멧돼지와 마주치지 않은 아버지는 운이 대통이라 모두 입을 모았다. 정말 운 없는 돼지는 총알 받이가 아닌 토끼 다니는 길목에 설치해 둔 올무에 걸린 것이었는데 아빠랑 동네 아저씨도 처음엔 발견하고 엄청 무서우셨다고 했다.

 대단한 사건으로 우리 집 기마솥은 밤 새 절절 끓었고 갑자기 부엌은 돼지 코스 요리 전문 식당으로 변경, 할머니는 주방장, 엄마는 요리사가 되었다.




오늘은 아빠가 총으로 세 마리나 잡아온, 유난히도 붉은빛을 내는 꿩고기에다 엄마는 잘게 썬 김치와 당면, 두부를 으깨 소를 만드셨고 반죽을 끝낸 밀가루 덩어리를 가래떡처럼 밀고 인절미처럼 뚝뚝 잘라 손바닥으로 꾹꾹 눌러준 뒤 균형을 맞춰가며 밀어주면 금세 동그란 만두피가 만들어졌는데 엄마는 마치 먼 시내에 있는 멍텅구리 빵집의 직원처럼 신기하게 피를 순식간에 밀었고 또 할머니와 언니는 그 옆에서 선수처럼 만두를 빚었다.


들러붙어 터지지 말라고 하얗게 밀가루 분을 뒤집어쓴 만두는 미리 밀가루를 뿌려 놓은 오봉상 여러 개를 동그랗게 빼곡히 채워 갔고 만두소가 줄어드는 것이 보여 얼추 마무리가 되어 간다 싶을 즈음 할머니는 "우리 집에 저녁 잡수러 오시래요"라는 심부름을 내게 시키셨다. 나는 집집마다 대문 옆에 버티고 있는 문지기 견 선생들과의 전투를 위해 긴 작대기를 한 개 들고 옆집부터 차례차례 온 동네를 한 바퀴 돌고 오면 그제야 깽깽거리고 컹컹거리던 개 짖던 소리가 잠잠해지는 대신 우리 집엔 무수히 많은 발자국들이 찾아 왔고 밤이 늦도록 하하, 허허 웃음소리가 흘러넘쳤는데 나는 이미 꿈나라 여행을 하고 있었다.




'꿩 대신 닭'


그 말의 의미를 알게 된 것은 고등학생이 되어서였다.

그때 우리 동네에 유 씨 아저씨는 밭농사를 접으시고 밭에다 엄청나게 큰 하우스를 지어 장끼와 까투리들을 가둬놓고 기르셨는데 이 녀석들이 겁이 어찌나 많은지 나는 근처 밭에서 밭일을 하고 있었을 뿐인데 나의 재채기 소리에 놀라 우르르 날아다니며 난리를 쳤고 나는 괜한 오해를 사는 것 같아 여간 거슬리는 게 아니었다.

그렇게 추수가 끝난 밭에서 떨어진 수수를 줍던 나는 쌓아둔 수숫단 구석에서 엄청 멋진 깃털을 가진 장끼와 마주하게 되었는데 이 녀석이 작은 눈알만 왔다 갔다 굴리면서 도망도 가지 못하고 계속 웅크리고 있는 것이었다. 나는 작업하던 자루를 비우고 살금살금 다가가 녀석을 안아 눈을 가린 뒤 유 씨 아저씨네 마당에 들어섰고 아저씨는 장끼를 이리저리 살펴보시더니


"주운 사람이 임자여. 집에 갖고 가서 무 넣고 지져 먹어라"


하며 장끼를 도로 내어 주셨다.


나는 생각지도 못한 전개에 쿵쾅거리는 맘을 진정시키며 장끼가 담긴 자루를 조심조심 들고 왔고 집까지 걸어오면서 닭장에서 꿩을 키우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꿩은 집에 도착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기운 없이 쓰러졌고 아빠는 그 멋진 깃털을 다 뽑아 버리고 내장도 정리해 바가지에 담아 엄마에게 가져다 드리라 내어 주셨다.

그날 저녁 밥상엔 묘한 향을 내는 작게 토막이 쳐진 꿩 전골이 올라왔는데 나는 유씨네 아저씨네 집에서부터 줄곧 '병든 꿩은 아니겠지?' 의심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평상시도 입이 짧은 내가 젓가락도 대지 않고 뭉그적거리는 것을 본 아빠는 한 덩어리를 집어 내 밥그릇 위에 올려 주시며 먹어보라 하셨는데 내가 인상을 쓰자 마치 속을 꿰뚫어 보신 것처럼 병든 꿩 아니라고, 며칠 전 장사꾼이 와서 더 이상 알을 낳지 못하는 꿩들을 사갔는데 일일이 그물로 잡아야 하는 작업 속에 겁이 유난히도 많은 저희들끼리 우르르 날아다니고 몰려다니면서 부딪혀 부리가 깨지고 날개가 부러지는 사고에 오늘 우리 집에 온 아이도 양쪽 날개가 다 부러져 있었기에 뒀어도 오래 못 살았을 거라 하시면서 먹어보라 하셔서 나는 살짝 먹어보았다.

향이 낯설긴 했지만 소한 맛에 쫄깃한 식감도 좋고 예전에 먹었토끼전골 같은 맛이 났는데 정말 정말 안타까운 건 꿩고기 양이 너무 적어 진짜 입맛만 버렸다는 것이었다.




"잔 봐봐라 나 만두 하나도 안 터트리고 완전한 형체로 끓여냈음"


"음 그게 너의 실력일까 장모님 능력일까?"


"아빠 따지긴. 그냥 아무 말 말고 은혜로 먹어 은혜로"


나는 둘째 아이에게 엄지 척을 해 주었다.


만두를 베어 물으니 엄마의 닭만두에서 어린 시절 먹었던 꿩만두 맛이 난다.

긴긴 겨울날 어깨도 결리고 허리도 아프고 다리 저린 것을 참고 몇 시간이나 빚었던 뽀얗던 만두. 그리고 그 만두를 나누던 동네 어른들과 우리 가족들. 엄마는 여전히 그 나눔 실천을 하고 계시고 나는 그 수혜자로 살고 있다. 나도 나중에 꿩 대신 닭이라고 이렇게 닭을 갈아 넣은, 온갖 재료들을 채를 썰고 물기를 제거한 공을 들여 만두를 빚어 아이들에게 먹일 수 있을까?

아무래도 그냥 물만두를 끓여 주는 것이 낫겠다 싶다.


추신 : 호랑이거나 산짐승일지도 모른다고 추측했던 그 범인은 윗동네에 사는 도사견이었다. 도시에서 아들이 키우던 도사견을 부모님 댁에 맡겼는데 힘이 센 개가 목줄을 끊고 달아났다가 쌓인 눈에 홀려 방향을 잃고 이 동네 저 동네 쏘다니다가 발자국만 찍고 달아났고, 그 과정 중에 열심히 집을 지키며 짖던 몇 가구의 개를 공격해 결국엔 아들이 다시 데리고 갔다는 소문이 있었지만 그게 사실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확실한 건 그때 누가 개고기를 먹었다는 얘기는 듣지 못했다.

! 그리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한 가지! 나는 자연인이다에서 맛있게 먹는 걸로 나오는 멧돼지 요리들. 사실 그거 다 뻥이다. 멧돼지 고기를 한돈 맛으로 상상하면 클난다. 맛도 향도 진짜 별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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