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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바라기 May 19. 2024

야나할머와 갈가지

이 모든 감사를 어른들께

부모님의 금혼식을 축하해 드리러 친정집을 방문했는데 두 분이 부부로 사신 시간이 감히 상상되지 않아 그저 신기했고, 일정을 함께 해 준 집안의 막둥이 열  조카는 송곳니가 빠져 귀여움의 최고봉이었다.


"벌써 송곳니를 갈았네"


참외를 먹는 조카를 보며 엄마가 흐뭇한 표정으로 말씀하셨다.


"할머니 저 치과에 가서 이 뽑았어요"


"장하네. 이 뽑는데 안 아팠어?"


"마취할 때 쪼끔요. 의사 선생님이 이렇게 막 흔들었어요"


"요새 들은 치과라도 델고 당기지, 니들 키울 땐 치과가 어디여. 흔들린다 하믄 그냥 막 잡아 뽑고 그거 생각하면 참 미련하게 키웠어"


"엄마 그 시절엔 다 그렇게 컸어. 그래도 나 대문니가 커서 그렇지 나름 건치인이야. 근데 다들 그 노래 생각나? 앞니 빠진 갈가지 앞 도랑에 가지 마라 붕어 새끼 놀린다."


"맞네 우리 이 뺄 때마다 그 노래 엄청 불렀었잖아. 진짜 앞 도랑도  가고. 근데 갈가지가 누구지?"


동생의 질문에 우리는 동시에 눈이 커졌다.




나는 지금도 생생히 기억한다. 첫 앞니가 빠지던 날을.

아침밥상서 동치미에 들어 있는 하얗고 작은 무를 앙하고 물었는데 뿌직 하는 느낌과 함께 먹다 만 무에 피가 묻어 당황한 나는 눈물부터 뚝뚝 떨궜다. 멀쩡히 밥을 먹다 갑자기 우는 나와 입가에 스며 나온 피에 할머니는 혀를 깨물었냐 물으셨지만 엄마는 내 앞니가 흔들린다는 걸 단번에 아시고 혀로 이를 밀어보라 주문하셨다.


"밥 먹고 뽑으면 되겠다. 얼른 마저 먹어"


나는 이미 쭈쭈바 봉지를 뜯다가 아랫니 두 개를 한순간뽑은 경험자였지정식으로 이를 뽑아야 한다는 공포와 갑자기 느껴진 앞니의 통증에 막냇동생보다 더디아침밥을 먹었다.




나는 마루에 앉아 있고 엄마는 가제 손수건을 들고 오셨는데 내내 겁에 붙들려 있던 나는 또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크게 아 해봐"


"아"


엄마가 나의 이를 들여다보는 듯한 정말 잠깐 사이에 이미 나의 작은 이는 엄마 손에 들려있었다.


"피도 안 나네. 그래도 수건 물고 있어"


나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눈으로 손바닥 위에 있는 자갈 같이 작은 이를 신기한 듯 들여다보았다.


"잘 참았네. 얼른 까치한테 줘야지. 까치야 까치야 흔니는 니갖고 새이는 날다오 이렇게 노래하고 떨어지지 않게 지붕 위로 힘껏 던져. 그러면 쁜 새 이가 날 거야"


얼마 전 송곳니가 빠진 언니가 웃으며 말했다.




나는 빠진 를 자랑하려고 아빠랑 할머니를 눈 빠지게 기다리고 있었다.


"할머이 봐봐 나 뭐 달라진 거 없어?"


"이런. 앞니가 빠졌잖나. 니 앞 도랑에 가지마래이"


할머니가 호호 웃으셨다.


"할머이 왜 앞 도랑에 가지 마?"


"왜긴 붕애 시끼가 놀리니 그라지"


나는 할머니 말을 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지붕 위에다 던진 나의 앞니를 까치가 가지러 오는지 계속 지켜보고 있었지만 희한 케도 그날 까치는 오지 않았다.  뒤로 혹여나 지붕 위에서 깍깍깍하고 우는 소리가 나면 이를 가지러 왔다고 믿었고, 정말 신기하게도 울퉁불퉁 빨갛던 잇몸 사이로 젖니보다 두 배나 더 큰 어마무시한 이가 자랐다. 그리고 치과의 도움을 받아가며 지금까지도 아주 잘 쓰고 있다.




"언니도 그 노래 생각나지? 앞니 빠진 갈가지 앞 도랑에 가지 마라 붕어새끼 놀린다. 근데 갈가지가 누구야?"


"글게 노래만 불렀지, 갈가지가 누구지?"


"갈가지가 아마 호랑이 새낄걸"


우리의 대화를 듣고 계시던 아버지가 말씀하셨고 바로 엄마의 대답이 이어졌다.


"어른들이 갈가지를 개호구라고도 불렀지"


"흐헉 호구도 서러운데 개호구라고? 이거 앞니 좀 빠졌다고 붕어가 호랑이를 무시하고 이름도 개호구고 백두산 호랑이 너무 불쌍한 거 아니야?"


동생의 말에 거실에 둘러앉은 우리 가족은 다 같이 웃었다.




언니부터 막냇동생까지 네 남매가 이를 뽑으면 새 이를 달라했던 치아 무덤 지붕은 97년 새집이 증축되면서 사라졌다. 그 지붕이 부서지던 날 사실 지붕에 몇 개의 치아들이 남아 있을까? 궁금하긴 지만 추억할 새도 없이 순식간에 무너졌다. 너무 높아서 온 힘을 팔에 모아 한 번에 던져야 했던, 어디로 떨어졌는지 추측도 못하고 또로록 치아 굴러가던 소리를 듣고야 안심했던 그 지붕이 부서지던 그날엔 어찌나 보이던지. 높기도 했고 낮기도 했던 지붕이 아직도 눈에 훤하게 그려지게 기억할 수 있어서 참 다행이다.




나도 두 아이를 기르며 처음엔 꼬박꼬박 치과에 가서 발치를 하다 잦아진 횟수에 이들에게 스스로 흔들어 뽑아 보라 했고, 덜렁덜렁 겨우 붙어 있는 치아를 엄마처럼 가제 수건으로 잡아 뽑기도 하고 치실을 묶어 잡아당기기도 던 기억이 있다.  특히나 그때마다 의심과 걱정의 눈초리로 질색했던 작은 아이. 엄마의 막무가내 실험 정신에 고생을 한 두 아이에게 미안한 맘이 없다면 정말 불량 엄마겠지?




손주들의 성장과정과 자녀들의 성장과정에 산 증인이 되어주셨던 할머니와 부모님의 사랑이 2024년 어버이날을 즈음하여 쓰는 이 글과 함께 더 큰 감사함과 따뜻함으로 다가온다.

앞니가 유난히 커서 토깽라는 별명이 있던 나였지만 오늘도 거울에 비춰본 나는 가지런한 큰 대문니를 가지고 먹고 잘 살고 있으니 이 모든 감사의 마음을 할머니와 부모님께 전해본다.

감사의 마음 전달은 계좌이체로 실천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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