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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바라기 May 30. 2024

야나할머니와 박새네

다시는 새를 줍지 않으리, 고마워 여보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맞은 첫 봄.

유난스럽게 처마 밑에 새가 들락거리는 것이 보였다. 멀찌감치 떨어져 보니 할머니가 허리춤에 매고 옥수수나 팥을 심을 때 종자를 담던 작은 다래끼처마 밑 벽에 걸려 있었는데 아무래도 그 속에 뭔가 사연이 있는 것 같아 슬쩍 들여다보니 머리에 회색빛 솜털이 슝슝 나 있는 새끼 새들이 밥그릇보다도 작은 둥지 안에 올망졸망 들어 있었다.


"아빠 할머이 다래끼 안에 새 둥지가 있어"


"니 새끼 깐 거 봤나? 아매 여덟 마린가 그렇지"


"아따매 마이도 품었네"


"어미새가 먹이 물어 나르느라 정신이 없자네"


"아빤 거다 둥지 틀새끼 깐 거 아셨어?"


"둥지 틀 때부터 그래 들락 거리는데 모르나?"


아부지가 당연한 걸 묻냐며 웃으셨다.




"야야 일로 가매이 와 보래이. 내 뭐 비키 줄틴께"


할머니가 엄청 은밀하고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할머이 왜에?"


"니 여 브로끄 안에 함 보래이"


손등으로 콧등을 훔치며 할머니가 벽 옆에 쌓여 있는 벽돌을 가리키셔서 들여다보니 그 작은 구멍 안에 작은 옹기종기 모여있는 새 머리가 보였다. 


"하나 둘 셋넷다섯여섯, 할머이 여섯 마리나 있어"


"여싯마리라고? 마이도 네. 고매 보고 가재이. 어미새 애탄다"


나는 벌떡대는 심장을 진정 시키며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벽돌 더미에서 멀어졌다.




벽돌 속에 박새 부부가 집을 짓고 품어 여섯 마리나 부화시킨 것은 대단한 일이었다. 며칠 전 옆집 재래식 화장실 천장에 집을 지었던 박새 부부의 둥지는 무슨 이유인지 구석에 퍼다 놓은 잿더미 위로 떨어졌고, 재투성이가 된 박새 새끼 세 마리는 비실비실하다 결국 죽어버렸다. 그런데 우리 집 벽돌 속에도 둥지가 있었다니. 희한한 것은 둥지가 있던 것을 모르던 때는 마당에 날아다니는 새가 보이지 않았는데 그 사실을 알고 난 뒤부터는 틈만 나면 열심히 먹이를 물어 나르는 박새 부부가 심심치 않게 보였다. 어느새 나의 일상은 엄마 새의 눈치를 보며 007 작전을 펼쳐 벽돌 안을 들여다 보는 것이었다.




솜털 같던 새끼 새들의 털 색이 짙어지고 굵어지면서 깃털도 났고, 엄마 박새는 내가 자기의 둥지를 매일 같이 들여다보는 것을 눈치채곤 벽 근처만 가도 머리위를 뱅뱅 돌며 큰 소리를 냈다. 나도 그것이 미안하여 어미 새가 먹이를 잡으러 나갈 때만 잽싸게 새끼 새들의 안부를 확인했는데 엄마가 있을 땐 삑삑 소리를 잘만 내던 아기 새들은 엄마가 둥지를 비우면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용수철처럼 고개만 뱅뱅 돌렸다. 나는 쉼 없이 먹이를 물어 나르는 박새 부부를 돕고 싶은 맘에 뽕잎을 따다 밥알과 좁쌀, 애벌레를 잡아 벽돌 앞에 두었지만 뽕잎이 낙엽이 될 때까지 이들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리고 며칠 뒤 나는 텅텅 빈 둥지를 발견했고, 할머니는 새가 다 커서 둥지가 좁아 넓은 뒷산으로 날아갔을 거라고 하셨는데 나는 인사도 못하고 헤어진 박새 가족과 휑한 빈 둥지가 너무 서운해 눈물이 났다.




박새는 박스에

금요일 룰루랄라 퇴근하다 길에 떨어져 있는 새끼 새를 한 마리 발견했다. 털 상태로 봐선 아직 이소할 정도는 아닌 것 같고, 나를 천적으로 여겨 공포를 느꼈는지 노란 부리를 좍좍 벌리고 삑삑 소리를 내며 날개를 파닥거렸는데 날개 속엔 아직도 솜털도 제대로 다 나지 않은 진짜 아기 새였다.


"너 엄마 어딨어?"


나는 우선 주변에 울고 있는 어미 새가 있는지, 보이는 둥지는 없는지 살피며 새끼 새를 지켜봤지만, 새끼 새도 소리를 내지 않고 어미 새의 인기척도 느낄 수 없기에 고민에 빠졌다.


특히나 들고양이와 까치, 까마귀가 둥지를 틀고 사는 이 드센 이 구역에 떨어진 새끼 새라니. 두고 갈 수도 없고 데리고 갈 수도 없고 진짜 진퇴양난이었다. 결국 새끼 새를 집으로 데리고 가기로 맘먹고 가방에 있던 비닐봉지를 꺼내 담고 손바닥 위에 올려두니 따뜻한지 눈을 감고 바짝 엎드려 있었다. 그러다 자동차 경적에 움찔움찔하며 비닐봉지 구석으로 머리를 밀어 넣었고, 나는 입었던 점퍼로 봉투를 가리고 엉거주춤한 자세로 집을 향해 걸었다.




목이 빠져라 고양이

집에 도착하니 작은 아이가 펄쩍 뛰었다.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는 행동에다 집에 있는 고양이와 앵무새 가족들에게 전염병이라도 옮기면 어떡하냐는 속사포 잔소리와 혹시라도 집 안에서 죽으면 어떻게 처리할 거냐며 나를 대책 없는 엄마로 몰았다.


"아니 살리려고 데리고 왔지. 죽이려고 데리고 왔겠어"


"아니 엄마. 엄마도 지금 자신 없는 거잖아. 목소리 떨리는 거 보면, 이 새 이름은 뭔지 알아? 조류독감 옮기는 유해 종은 아니지?"


"느낌상 박새 같긴 한데"


집에 갑자기 등장한 불청객에 고양이는 흥분되어 나만 졸졸 따라다니고, 작은 아이는 그런 고양이를 지키느라 고양이를 따라다니고, 나는 나의 오지랖이 과한 일을 벌였구나! 정신이 멍해졌다.




고양이와 큰 새들로부터 새끼 새를 지키고자 데리고 왔지만, 생명을 지킬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은 이미 바닥이었고, 기분 탓인지 기운이 점점 없어지는 새끼 새에게 급한 대로 계란 노른자를 미지근한 물에 으깨어 먹이니 제법 잘 받아먹었다. 그리고 웅크리고 조용히 잠을 청하길래 부랴부랴 고양이 사료도 불리고 인터넷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미 금요일 오후 6시가 지났고, 그 어떤 기관도 전화 연결은 되지 않고 업무를 종료했다는 안내메시지만 흘러나왔다.


한바탕 잔소리를 퍼부은 작은 아이는 학원 수업을 가고 홀로 집에 있는데, 급한 대로 박스에 넣어둔 새끼 새는 엄마를 찾는 건지 배가 고픈 건지 주기적으로 삑삑 소리를 냈고, 다시 으깬 노른자를 입에 갖다 대니 노란 부리를 좍좍 열고 잘 받아먹었다. 그 모습이 신기한 고양이는 고개가 빠지게 상자 안을 들여다보며 코를 벌렁거리, 종이 침대 위에서 또 잠든 새끼 새를 보며 나는 계속 조류협회를 검색했다.


그러다가 연결된 전화 한 통!

전화를 받아주신 곳은 한국조류보호협회하남시지회 관계자셨다. 나는 급한 대로 도움을 얻고자 내가 살고 있는 지역에 도움을 주실만 한 기관을 여쭈니 시청에서 담당하고 있다시며 먼저 새 종류를 물으셨고, 사실 흔하디 흔한 종이기에 차마 아기 새를 구제해 주십사 말씀드리기도 부끄러운 상황이었다. 하지만 전화를 받아주신 선생님은 지금이라도 새를 데리고 오면 받아주겠다 약조하셨고 나는 퇴근한 남편과 함께 하남시로 향했다.




도착한 곳은 사단법인 한국조류보호협회하남시지회이자 부설기관으로 한강생물보전연구센터가 운영되고 있는 곳이었다. 

늦은 시간에 도착한 우리 부부를 관계자분께서 반갑게 맞아 주시며 아기 새를 살펴봐 주셨다. 아기 새는 추측대로 박새가 맞았고, 계속 졸고 있었는데 보온실에 먼저 구조되어 있던 박새 친구와 밥공기로 된 같은 방을 쓰게 되었다. 그리고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은 새를 구조해 와도 먹이를 자주 먹여야 하는대 부족한 인력과 더 이상 지원되지 않는 국가 예산으로 어려움이 크다시며 데리고 간 박이도 살 확률은 반반이지만 그래도 이렇게 온거 보면 살 운명인가 보다고 말씀하셔서 그나마 위안이 되었다.


선생님은 시간이 늦었지만 먼 길 오셨는데 구조된 새들 모이 급여를 지켜보겠냐고 권하시어 보호실로 들어섰고, 그곳엔 '더 살리자, 아가새돌봄단'이란 자원봉사자들의 손길에 버려지고 다친 새들이 구조되어 보호되며 훈련 중이었는데 소쩍새, 올빼미, 수리부엉이, 독수리, 까치 등 조류도감에서나 볼 수 있는 모든 새를 한눈에 보게 되어 안타까우면서도 너무 신기했다. 특히나 예뻤던 유조는 소쩍새였는데 요 근래 시골에 갔을 때 소쩍소쩍하고 우는 소리를 들었기에 더 반가웠다. 그리고 정말 강렬했던 것은 우리가 흔히 보는 비둘기였는데 나도 여태껏 비둘기 유조는 처음 마주했고 부리만 봐서는 펠리컨인 줄 알았다.




퇴근부터 박이를 하남에 두고 돌아오는 길까지 걸린 다섯 시간이 정신없이 지나갔다.

박이에게 친구랑 오래오래 살아서 미사리 강변도 날아다니고 산에도 날아다니라고 말해주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다시는 길에서 새를 주워도 집에 데리고 가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강한 자연의 힘을 믿어보기로. 그래도 박이를 만난 기념으로 협회를 후원하는 한 시민이 된 날, 나와 살아서 심심할 겨를이 없다고 말하며 기꺼이 동행해 준 남편에게 정말 눈물 나게 고마운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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