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미꽃은 대머리
친정에 농사일을 도우러 다녀왔다. 그러다 만난 산소에 핀 할미꽃
"와 대박! 할미꽃이네. 한 동안 안 피더만 올핸 어케 폈네"
나의 호들갑에 산소 주변으로 식구들이 하나 둘 모여들었다.
"이게 할미꽃이야?"
"엥? 형부 할미꽃 몰라?"
"몰라. 태어나서 첨 봐"
"역시 평야지대 주민은 다르네. 할미꽃을 모르다니. 설마 당신도 할미꽃 모르는 건 아니지?"
"나? 나는 할미꽃 본 적 있지. 그런데 할미꽃이 민들레 같이 이렇게 생겼었나?"
"아니 당신이 보고 있는 부분은 꽃잎이 떨어지고 쇠어가는 중이고 본디 이 튤립처럼 생긴 빨간 게 할미꽃이야. 우린 쇤걸 대머리 꽃이라 불렀어. 이걸로 인형 놀이도 하고 그랬다. 나중에 민들레처럼 하얗게 변해"
할머니가 도랑서 씻어온 기다란 약초를 채반에 널고 계셨다.
"할머이 이거 황기지?"
"용하기도 행기씩이나 알고"
"이거 닭 쌂아 먹을 때 넣는 거잖아"
나는 우쭐거리며 대답했다.
"다시 잘 들이다보래이 행긴지 아닌지"
할머니가 이렇게 말씀하시는 걸 보면 황기는 아니란 얘기다.
"마치본나. 니 마치믄 내 배곤 주지"
퀴즈도 퀴즈지만 상금이 백 원이라니! 나의 심장은 벌떡 거렸지만 암만 들여다 보고 냄새를 맡아봐도
결코, 절대 알아낼 수 없는 뿌렁지였다.
"이거 이름이 모냐믄 할미꽃 뿌랭지여"
"에? 이게 할미꽃 뿌리라고? 그럼 할머이 이걸 다 누구 묘에서 파 왔어?"
가뜩이나 큰 눈을 더 크게 뜨며 묻자 할머니가 웃으셨다.
어릴 적 봄이 되면 할미꽃은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는 꽃이었다. 하지만 할미꽃을 가장 쉽게 만날 수 있는 곳은 산소 무덤가였고, 우리는 모두 할미꽃에 산소 주인의 영혼이 담겨 있다고 믿고 귀하게 대했다. 눈썰매나 잔디 썰매를 기가 막히게 탈 수 있는 곳도 산소가였지만 귀신 붙는다고 근처엔 가지도 않았고, 산소를 향해 손가락질하면 또 산소 귀신이 노해 따라온다고 해서 산소를 가리킬 땐 손이 아닌 발이나 턱을 썼었다. 순진하다 못해 조금은 모자란 것 같던 나와 동네 아이들을 돌아보며 피식 웃음이 나고, 인형 놀이를 하려고 산소가 아닌 양지바른 곳에 핀 할미꽃을 따러 봄마다 산에 오르던 기억도 떠올랐다.
고향 마을엔 토종 꽃들이 사라지고 점점 새로운 모종들이 심기고 핀다. 나는 이번에 꽃잔디가 자주색이 아닌 다른 색이 있다는 것을 처음 보고 충격에 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