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칙 배려 미안함
너무 당당히 건널목을 건너길래 하마터면 따라 건널 뻔했다. 멈추지 않고 달리는 차를 보고 깜짝 놀라 신호등을 보니 보행신호가 빨간불이다.
너무 당당히 건너가서 나도 속았다.
오히려 놀라서 멈춘 차에게 손사래를 치며 멈추라는 듯 짜증을 내기까지 한다.
그리고 아무런 말도 없이 죄책감도 없이 당당히 빨간불에 그냥 길을 건너간다.
그냥 쭈욱 걸어오다 멈추지 않고 그냥 걸어서 건너간 것 같다.
큰소리로 라디오를 틀어서 허리춤에 차고 트로트 노래를 듣는다. 쩌렁쩌렁 혼자 좋아서 듣고 싶은 노래를 왜 저렇게 크게 틀어놓고 돌아다니는 건지 이해하기가 참 힘들다.
노인복지관 가까이 버스정류장에 점심시간이 가까워 오면 많은 노인분들이 계신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면서 이쑤시고 침 뱉고 디저트로 나온 요구르트를 정류장에서 드시고 버스 의자 아래 다소곳이 숨겨놓고 가신다.
할아버지는 나오자마자 자판기 커피를 손에 들고 바로 담배에 불을 붙인다. 뻑뻑 연기를 뿜어 댄다. 금연 표시에도 아랑곳 않고 보란 듯이 담배를 피운다.
버스장류장에 앉아더니 할머니가 영상을 크게 틀어놓고 열심히 보고 계신다. 알고 싶지 않은데 알 수밖에 없다. 특정정당을 폄하하는 근거 없는 이야기를 하다가 공산당이라는 이야기를 하다가...
젊은 사람도 춥고 다리가 아픈건 마찬가진데 버스정류장 온열의자 위에 다리를 올리고 찜질을 하고 계신다.
다른 젊은사람이 들어가도 아랑곳 않고 의자를 독차지 하고 있다.
버스를 타려고 보니 바퀴달린 시장바구니가 버스승강장 중간에 버티고 있다. 장바구니 뒤에 줄을 서야 할 지경인데 버스가 와도 주인은 나타나지 않았다.
바스를 탔다.버스 뒷좌석까지 거의 다 찼다 미니스커트를 입은 젊은 여학생이 치마를 댕겨 내리며 마지막으로 앉았나 싶었는데 그 뒤를 60대 아저씨가 뒤따랐다. 잠시 후 갑자기 큰소리가 들린다. 미니스커트를 입은 아가씨 옆자리에 60대 아저씨가 오자 아가씨가 인상을 썼나 보다. 아저씨는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아가씨를 윽박질렀다. 네가 뭔데 나를 꼬라보냐?자리가있는데 앉지도 못하냐? 어디서 배워 먹은 버릇이냐? 아가씨 목소리는 온데간데없고 고래고래 분을 이기지 못한 아저씨는 차가 열정거장을 지나고 아가씨가 내리고 나서 "아니 저런 미친 여자가 있나 안 그래요? 자기 옆에 앉는다고 날 꼬라보잖아..."마지막 말을 하며 멈췄다. 옆사람을 향해 말을 했지만 동조를 원했지만 아무도 간섭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묻지도 않고 버스에 타서 문이 닫히자 어디 어디 가냐고 묻는다. 기사분이 그 근처까지는 간다고 말해 주자 주저리주저리 본인 상황을 설명하다가 거기는 많이 갈어야 해서 안 되겠다고 하더니 다시 문을 열라고 한다 그리고는 미안하다는 말도 없이 내린다.
덕분에 버스는 한참을 서 있어야 했다.
하 한숨이 날 뿐이다.
규칙은 지킬 때 편한 것 같다.
모두가 같이 지킬 때 아무런 문제가 일어나지 않는다. 예외를 만들지 않고 지켜져야 모두가 편하다. 이래서 안 되고 저래서 안되면 안 된다.
해도 되는 것 안되는 것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범위 그 정도는 알아야 미안한 마음도 드는 법이다.
제사상의 규칙은 알면서 사회의 규칙은 알려하지 않고 지키려 하지 않고 교양은 담을 쌓고 오늘도 앉아서 젊은이들을 험담한다. 며느리가 올해 제사부터는 미리 가서 음식 하는 건 못한다고 했다고 노발대발 화를 내고 있다. 이해라는 건 눈곱만큼도 하지 않고 자식들의 도리만 바란다.
김장철이 돌아왔다. 필요 없다는 김치를 왜 굳이 저렇게나 많이 담는 건지 김장하는 날이라고 며느리를 불렀단다. 누구는 아들에게 전화해서 며느리를 불렀다고도 한다.그런데 며느리가 올해 저희는 김치 필요 없어요 하고 말했다고 또 노발대발 며느리 험담에 정신이 없다.
매일매일 노인복지관 앞 버스정류장은 그런 어르신들의 욕심들로 분주해 보였다.
서울 여행중 늦은 아침을 먹었다.
낯선 곳 낯선 사람들을 한참 구경하다 퇴식구를 찾았다. 어디에 어떻게 버려야 할지 고민하는데 한분이 오셔서 설명을 해주신다 그냥 두고 가시면 제가 치워드린다 한다. 하지만 보통 모든 게 셀프인 이런 곳에서 그럴 수는 없어 다시 물어보고 직접 버렸다. 친절히 안내해 준 분이 감사해 인사를 드리려고 고개를 들어보니 연세가 많으신 어르신 이셨다.
맛있게 드셨어요? 감사합니다. 하시는 스텝분은 연세가 지긋하신 할머니 직원분이셨다.
낯선 곳에서 만난 기분 좋은 친절함이 하루 종일 마음을 따뜻하게 해 주었다.
그 연세에도 그런 친절을 베풀 수 있는 넓은 마음과 배려하는 마음 그리고 직업정신이 느껴졌다.
푸릇푸릇하던 호박이 익고 잘 늙어서 늙은 호박이 되어야만 노오란 호박죽을 만들 수 있다. 노란 호박죽은, 노란 호박전은 꼭 늙은 호박이 아니면 만들 수 없다.
늙은 호박 속을 긁어 전을 만들고 속을 잘라 죽을 만든다.
아삭아삭 상큼한 초록 채소들과는 식감도 다르고 맛도 다르다.
늙은 호박죽은... 푹 익은 뭉근함에 어울리게 달큰하고 깊은 호박향이 고향집 굴뚝의 연기처럼 푸근하다.
쌀쌀한 초겨울 찬바람에 떨었던 속을 엄마품처럼 따뜻하게 데워준다.
열을 품고 푹푹 익은 노오랗다 못해 누런 호박죽을 한 숟가락 떠본다.
끈적하고 폭닥폭닥 끓어오른 호박죽은 그래서 더 맛이 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