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볶이와 엄마

떡볶이를 볼때면

by 모아

어린 시절 엄마는 참 여러 가지 일을 했었던 것 같다.

내가 아주 어릴 때는 언니 오빠들의 과외 선생님이었고

조금 더 자라선 슈퍼마켓 주인이었으며

조금 더 뒤에는 비디오 가게를 했다가

그러다 비디오 대여료가 엄청나게 폭락하던 때에 접어들어서는 식당을 운영했다.

그때까지도 그럭저럭 우린 경제적인 부분은 그냥저냥 살았던 것 같다.

그런데 벌이가 딱히 정상적이지 않았던 아버지가 뭔가를 적극적으로 하지 않고부터인지....

가게를 접어야 했고 엄마는 숙모네 식당 앞 귀퉁이에서


떡볶이 장사를 시작했다.

새벽같이 음식들을 준비해서 마차같이 생긴 이동식 식당(?)을 오픈해 저녁 늦은 시간까지 장사를 했다.

집에 가만히 있어도 추운 겨울 손이 마를 시간도 없이 더 바빠진 엄마는 엉덩이 한번 붙일 새도 없이 찬바람과 마주하고 있었다.

숙모 식당 앞이지만 숙모는 엄마의 분식이 장사가 잘되자 고만하라고 할 수도 없고 매일매일을 찡그린 채 투덜거리기만 하니 들어가서 잠시라도 추위를 피하려는 생각은 호사였다.

딱히 도움이 될진 모르지만 함께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중학생이었던 나는 여동생에게도 학교를 마치면 엄마에게 가서 도와주자고 말을 했다.

동생은 선뜻 대답을 하지 않고 피하기만 했다.

학교를 마치고 나서도 숙제 시험공부 따위를 핑계로 잘 가지 않으려고 했다.

엄마는 그냥 공부하게 놔두라고 했지만 난 괘씸한 생각이 들어 더 오라고 독촉한 것 같다.


비디오 가게를 하던 초등학교 때도 동생은 우리 집이 비디오 가게를 한다는 사실을 숨기려고 친구들을 가게 뒤편 주택가 대문에서 만나곤 했다.

집이 어디냐고 물으면 뒷문 근처 주택가를 가리켰다.

나는 그런 동생을 쥐어박아 줬다.

동생은 공부를 잘했다.

전교 석차 상위권 난 반등 수도 뭐 대략 중간에서 머무는...

그래서 엄마는 동생을 놔두라고 했다.

뭘 하든 그냥 두라고 했다.

분식 틀 뒤에서 바라본 엄마의 하루는 너무 춥고 힘들고 괴로워 보였다.

혼자서는 힘들어 내가 도움이 안 되더라도 나와야 엄마가 화장실이라도 다녀올 수 있었다.

엄마는 손재주가 있어 음식을 잘했다.

손님들은 늘 많았었고 그래서 엄마는 바빴다.

하지만 바빠 봐야 수입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렇게 가게를 정리하고 나면 늘 떡볶이가 남았다.

지칠 대로 지친 엄마에게 저녁을 해달라고 하는 건 무리다.

우린 늘 남은 떡볶이로 허기를 채웠다.

저녁을 하겠다고 나서는 엄마를 붙잡고 떡볶이가 맛있다고 매일매일 먹어도 물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얼마 전 엄마를 만났다.

딸이 사춘기라 엄청 살이 쪘다고 말하니 엄마가 여동생 이야기를 한다.

사춘기 시절 저녁마다 떡볶이만 먹여 애가 살이 쪘었다고

저녁 늦게 맨날 떡볶이만 먹으니 살이 찌더라고

그러면서 또 마음 아파하는 소리를 한다.

같이 먹은 나는 아닌데 동생만 유독 살이 찐 게 보였는지....

살이 아니라 못해준 게 맘에 걸린 거겠지... 엄마는... 늘 얘기를 한다.

단칸방에서 혼자 공부한 여동생

도와주지 못했는데 혼자 의대에 간 동생 이야기를...

이 나이에 질투는... 하지만 엄마 앞에서 난 늘 주눅이 들고 동생은 넘을 수 없는 산 같았다.

지금도 동생은 아주 아주 잘살고

나는 그냥.....

서민이다.

늘 엄마 옆에 있고 싶어 했던 나는 온데간데없고 엄마는 여전히 동생이 아련한가 보다.

난 지금도 엄마 근처에 있다.

동생은 얼마 전 조카와 캐나다 일 년 살기를 마치고 한국에 들어왔다.

통통한 딸이 오늘따라 떡볶이 타령을 한다.

살찐다고 떡볶이 고만 먹으랬더니 오늘은 참을 수가 없다고 한다.

오늘만 오늘만....

요즘 아이들은 집에서 하는 떡볶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괴기한 떡볶이, 귀신들 떡볶이,ㅇㅇ할머니들 떡볶이 등등

집에서 하면 5000원이면 될걸...

나는 또 이런 딸을 위해 배달앱을 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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