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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년필 Mar 11. 2024

엄마와 딸

결국 엄마 탓을 하는 수 밖에는 없다

나는 엄마와 사이가 썩 좋지 않다.


극E성향의 엄마와 극 I 성향의 나.

예전에는 mbti라는개념이 없어서 나는 아빠를 닮았나보다 정도로만 생각했었다. 밖으로 나도는 엄마와 집에 있는 아빠를 보면 나는 아빠와 같았으니까.

엄마는 옷을 사러 가도 자기 옷만 사온다.

내가 학교 근처에서 자취할 때, 나는 복숭아를 잘 먹지 않는다고 수십번 이야기를 해도 늘 복숭아를 사왔었다.(엄마가 복숭아를 좋아한다.)

방과 후 집에 가도 엄마는 없었다.

밥은 아빠가 더 자주 차려줬던 것 같다.

엄마랑 집 밖에 나가면 한 걸음 가고 동네 아줌마랑 수다, 한 걸음 가다가 동네 아저씨랑 수다. 원하는 목적지에 제 시간에 도착한 적이 없고 나는 옆에서 하릴없이 대기하고 있는 것이 너무 싫었다.


사춘기 시절 엄마라고 부르지도 않았다.

아줌마라고 불렀다.

아줌마가 나에 대해 뭘 아냐며 소리를 질렀었다.


그렇게 반목하다가 대학교에 들어간 후, 친구의 연습을 돕기 위해 방문했던 사이코드라마동아리에서 엄마 역을 맡은 선배와 큰 소리로 소리지르고 울면서 그간 쌓였던 응어리가 조금 사라진 것 같았다. 그 이후 엄마는 엄마의 삶이 있는 것이라고 인정하기로 했다. 그렇게 화해아닌 용서아닌 무언가가 내 속에서 이루어졌다.


엄마는 내가 초등학생이었을 때부터 집에 없었다. 몇 년 전 난임으로 상담을 받을 때 상담사가 나보고 불쌍하고 안타깝다고 했다. 엄마에게 어린 나이에 버림받았다고. 나는 그런식으로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내가 버림받았다고 생각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외가쪽 사촌언니들은 나에게 엄마가 동생만 편애한다고 했다. 그것도 이상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 적이 없다. 그건 동생은 엄마아빠에게 도움을 청했고, 엄마아빠가 해주기를 바랐고, 나는 도움을 거절하고 혼자 무언가 해보려했기 때문에. 동생과 나의 성향에 따라 벌어진 결과일 뿐이다. 편애같은 것이 아니다.


나는 버림받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부모님의 탓을 최대한 하지 않으려 노력하는 편이다.


어제는 아빠의 팔순잔치날이었다.

원래 가족끼리만 조촐하게 하려고 했는데 어쩌다보니 수도권에 있는 친지들을 다 부르게 되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그래도 형식을 갖춰서 열심히 행사를 치뤄보자는 마음으로 이것저것 준비하면서 이미지파일로 초대장도 간단하게 만들었었다. 14명 자리를 예약하고 우리 팀만 앉을 수 있는 공간을 부탁해두었다. 막상 가게에 가보니 초대하지 않은 손님들이 있었다. 엄마의 손님들로 그 초대장이 어떠한 경위를 통해 엄마의 지인들에게 전해진 모양이었다. 그러나 그 중에는 사촌동생과 사이가 썩 좋지 않은 사람이 있었고 사촌동생과 그 가족들은 동석을 거부했다.


그래서 자리를 별도로 마련하고 주인공인 아빠는 식전행사를 간단히 마치고 엄마의 지인들이 있는 테이블에서 식사를 했다.

주인공 없이 식사를 마친 셈이다.


그러고 집에 돌아와서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가. 나는 맞는 선택을 한 것인가. 합쳤어야하나?


그러다가 결국 엄마 탓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이건 다 엄마가 처신을 잘못한 것이라고. 가족 모임의 사이즈를 키운것도. 엄마의 친구들이 불쑥 찾아온것도. 다 엄마 때문이야.

그렇게 되뇌고 나니 이상하게도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엄마와 딸의 관계는 참 이상해.

내가 편하기 위해서는 엄마 탓을 할 수밖에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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