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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년필 Dec 29. 2022

공감이 필요해

나 원한다 문과갬성

상사 A는 아이 둘의 엄마다. 하루는 A가 나에게 말했다. 유치원 선생님이 전화를 해서는 집에서 아이에 대한 교육이 잘 이루어지고 있는지 물었다고. 4살 아들이 다른 친구들에 비해 혼자 양말을 신거나 외투를 입는데 어려워한다는 이야기였다. A는 아이가 12월 생이라 다른 친구들에 비해 발달이 느릴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 나는 A에게 그 유치원 선생은 선생님 자격이 없다고, 아이들 챙겨달라고 유치원을 보낸 것인데 손이 많이 간다고 부모에게 전화하는 것은 이상하다고 이야기했다. 당장 유치원을 옮겨야 한다는 이야기도 했다. A는 늦은 시간까지 아이들 돌보아주는 유치원이 흔하지 않다며 본인이 을의 입장에 있다고 했다. 그리고 '만년필씨는 내 감정선을 콕콕 건드리면서 극단적으로 이야기한다.'라고 말했다. 살짝 화가 난 듯도 보였다. 


이런 일이 나에게는 흔하게 일어난다. 고민을 이야기할 때 남자는 해답을 제시해주려고 하지만 여자는 공감을 원한다는데, 나는 (여자지만) 해답을 제시하고자 하는 편이다. 개인적으로 정의 내려보자면 '공감'이란 상대방이 처한 상황을 나의 일처럼 느끼고 감정을 함께 공유하는 것이다. 나는 직접 겪지 못한 것에 깊은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 직접 겪었더라도 지나간 일에는 또 강한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 나는 주위 사람들에게 공감하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있다.(특히 남편에게) 1대 1 대화를 어려워하며 단체 속에서 화두를 던져두고 다른 사람들이 해당 화제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듣는 편이다.


최근 들어 (무엇으로라도) 성공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공감'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계기는 부평구 문화재단에서 진행했던 글쓰기 수업의 강사님이다. 직업 작가로 이미 책을 여러 권 발간했는데 3개월 간 강사님을 주 1회 보면서 느낀 바, 강사님은 공감의 귀재였다. 수강생이 적어온 글을 소개하면서 그 안에서 공감하는 내용을 하나 이상씩은 꼭 찾아내는 분이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면 세상만사에 감정을 느끼는 듯이 보였다. 감각이 사방으로 열려있어 다양한 감정을 느끼는 사람이 작가가 되기에 적합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편이 글감도 더 많을 것이다.


개그우먼 장도연을 보면서도 느꼈다. 장도연은 요즘 개그무대보다 스튜디오에서 앉아서 MC나 패널로 활약하고 있다. 물론 입담이 좋지만 그것보다 더 큰 장점은 공감에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TV프로그램에서 풍자라는 트랜스젠더 유튜버가 커밍아웃과 관계된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데 그 이야기에 격한 공감을 보이고 눈물을 훔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나에게는 흥미로운 이야기일 뿐 안쓰럽다거나 안타까운 마음은 전혀 들지 않았다. 억대 수입을 올리며 나보다 잘 살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내가 상처받지 않기 위해 보호하는 장치로 감정을 억누르는 것이라는 생각도 한다. 해결할 수 없는 문제로 괴로워하는 상황을 보고 같이 괴로워하지 않기 위함인 것은 아닐까. 눈물 쏙 빼는 신파영화를 싫어하고, 한국근현대 문학의 암울함을 외면하며, 타지에 홀로 있는 큰고모와 요양병원에서 숨 죽어가고 있는 치매 걸린 작은 고모에게서 애써 눈 돌리는 것처럼. 짧은 생 밝고 긍정적인 것만 보다가 가고 싶다.


상사 A는 한 달간 병가를 냈다. 얼마 전 받았던 대장내시경 결과가 좋지 않았다고 한다. 도려낸 용종에서 암세포가 발견되었다. 그나마 극초기라 용종을 떼어낼 때 암세포가 대부분 제거되었지만 예방적으로 수술을 더 받는다는 것 같다. A는 말했다. '건강검진을 받기 전 일상으로는 도저히 돌아갈 수가 없다고.' 나는 제대로 된 위로도 해주지 못했다.


A가 돌아오기 전까지 공감하는 연습을 많이 해둬야겠다. 팍팍한 세상에 필요한 것은 도움의 손길보다 따뜻한 공감인 것 같다. 제일 하기 어렵고 딱히 타인에게 바라지도 않지만 그래도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 같다. 그리고 좋은 작가가 되기 위해서는 너무나도 필요한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나 원한다 문과갬성. 나도 전공 문과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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