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년 9월 18일에 작성한 글
가을을 코로 느끼고 있다. 끊임없이 나오는 재채기와 콧물로 여름이 끝났음을 알 수 있다. 환절기마다 나를 괴롭히는 것은 알러지성 비염이다. 나에게 가을은 콧물과 코막힘의 계절이다.
얼마 전 가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놀랐다. ‘남자의 계절’이나 ‘운동회’는 듣기 전까지 나로서는 떠올리지 못한 이미지였다. 심지어 ‘이별’이나 ‘외로움’, ‘쓸쓸함’도. 나에게 가을은 ‘황금빛 논밭’과 ‘허수아비’, ‘추석의 풍요로움’, ‘단풍’, ‘알러지성 비염으로 인한 고통’ 정도의 이미지이다. 사람마다 같은 대상을 보고도 다른 생각을 하는 것이 매우 재미있다. 사람은 자기가 처한 상황 속에서만 생각이 가능한 것 같다. 그렇기에 다른 사람의 생각을 듣는 것은 항상 즐거운 일이다.
나는 여자이기 때문에 가을은 ‘남자의 계절’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남자의 계절이라는 이미지는 남성들이 공통적으로 적은 것이었다. 듣고 나서 생각해보니 트렌치코트와 중절모, 가을의 남자 같은 것들이 가을의 이미지로 떠올랐다.
나는 부모가 아니기 때문에 ‘운동회’가 떠오르지 않았다. 운동회를 경험한 지 너무나 오래되어 가을에 운동회가 열린다는 것 자체를 잊고 있었다. 부모님들은 항상 염두에 두고 있었을 대행사였다.
나는 결혼을 앞두고 들떠있기 때문에 ‘이별’이나 ‘쓸쓸함’을 떠올리지 못했다. 그렇다고 해서 가을의 이미지로 행복을 적지도 않았다. 결혼준비는 스트레스를 유발하기 때문일까.
이렇게나 특색 있는 계절인 ‘가을’을 두고 나는 애매한 계절, 사라지는 계절이라고 적고 있었다. 가을을 홀대한 것에 대해 미안함을 느끼며 한편으로는 사색의 여유도 없이 급하게 살아왔음을 반성했다.
집에 가서 (당시 예비) 신랑에게 ‘가을’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를 3개만 말해보라고 했다. 다른 계절로도 실험을 해보았는데 전부 음식만 이야기했다. 이 사람은 어지간히 먹는 걸 좋아하는구나, 가을의 이미지로 이별이나 쓸쓸함이 나오지 않아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너도 지금 외롭지 않구나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