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여 명이 찾아와 폭행을 저지르고 난 후, 아이는 극도의 공포를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피해자의 할 일은 태산이다. 진술서 작성과 경찰서 참고인 조사, 병원을 오가는 분주한 일상으로 인해 그럴때마다 공포스러운 기억을 되살려야만 한다.
마침 사건 전부터 친정엄마와 큰딸, 막내둥이를 데리고 홍천으로 여행 계획이 있던 터라 이곳으로부터 잠시 떠나 있기로 했다.
그들과 같은 서울 하늘 아래서 극도의 공포를 느끼는 것보다 저들과 떨어져 하루이틀 지나다 보면 아이의 마음이 좀 나아지지 않을까 해서다. 더군다나 그곳은 특정 장소를 제외하고는 와이파이와 통신 연결을 막아둔 의도적인 디지털 디톡스 숙소로 운영하고 있는 곳이었다.
하지만 몸을 피하는 것도 그때뿐, 다시 돌아온 이 동네에선 잠시 멈춰졌던 그날의 기억도, 그 후의 감정도, 앞으로 헤쳐나가야 할 상황도 그대로인 일상이다.
그들은 아이의 sns에 찾아와 하트를 누르는 형식으로 정신적인 압박을 가하고 있었고, 등교를 해야 하는 시기가 다가올수록 학교 앞에 찾아오겠다는 협박을 서슴지 않았다.
잔뜩 겁을 먹었지만 딸아이는 등교를 하겠다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엄마가 따라올 필요도 없다고 했다. 친구들과 우르르 몰려 함께 가기로 했다며 날더러 절대 신경 쓰지 말라고 안심시킨 후 집을 나선다.
아이가 등교 후 걱정스러운 마음에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데 아니나 다를까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는 사시나무 떨듯 떨며 다시 집으로 돌아오고 만다.
다행히 그들을 맞닥뜨리지는 않았지만 막상 밖을 나가고보니 마치 한겨울 칼바람이 온몸을 사정없이 할퀴듯 그날의 공포가 그렇게 몰려오더란다. 도저히 겁이 나서 학교에 갈 수 없어 발길을 되돌릴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그 후, 학교에서는 피해학생 보호조치에 의해 등교를 하지 않아도 출석인정이 되도록 조치를 취했다.
그런 이유로 중학교 1학년 10월 이후로 아이는 학교에 갈 수 없었다.
한편 가해자들 중 주동자 두 명의 엄마가 우리와의 접촉을 시도한다. 사과를 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딸아이와 가족 의견에 따라 우리 집에선 나 대신 남편이 가해자의 부모들과 상대하는 게 낫겠다고 판단해 남편은 단체 채팅방을 만들어 그들의 부모를 초대해 몇 달간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하지만 상대측 아이들은 자신의 잘못을 편집 또는 왜곡해서 알리는지 마치 우리 아이가 먼저 그들을 자극했다는 취지로 이야기하며 그래도 먼저 폭력을 휘둘렀으니 일부 잘못은 인정하겠다는 태도다.
남편은 아이들이 먼저 접근하여 협박한 사실과 그간 괴롭혀온 대화의 캡쳐본을 채팅방에 올리고, 지난 글에 아이가 작성했던 사건개요에 대한 글을 보내자 그걸 또 자신의 아이들에게 확인을 하겠다며 보여주었던 모양이다. 그러자 그 글이 당시 폭행에 직간접적으로 관련했던 사십여 명의 가해자들에게 전달이 되었고, 이름이 거론된 가해자들은 딸아이에게 자신의 이름을 지우지 않으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등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었다.
남편은 가해자 부모들에게 제발 자신의 자녀 말만 믿지 말고 사건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대처해 달라고 말했다. 처음엔 그런 사실이 없다며 딱 잡아떼던 그들도 부모들이 대화를 나누는 중에도 딸아이에게 실시간으로 관련자들에게 협박이 온다며 캡쳐본을 보여주자 많이 당황한 눈치였다.
혹시라도 우리 측에서 금전적 보상을 요구할까 봐서인지 직접 찾아와 무릎을 꿇고 사과를 하겠다는 등의 이야기를 해왔지만 면피성의 성격이 짙을 뿐 정작 그 아이들은 2차 가해를 멈추지 않고 있으며 보복폭행은 그 도를 넘어서고 있다.
피해자인 딸아이와 편을 들던 친구들은 집 앞 편의점도 제대로 못 나가고 집안에만 꼼짝없이 틀어 박혀 있는데 가해자들은 천지사방을 쏘다니며 사건 당시 찍어두었던 폭행영상을 깔깔대며 공유하고 있단다.
자신들이 유리한대로 거짓을 퍼뜨리며 딸아이의 명예를 훼손하며 난도질 해대고, 친구들을 괴롭혀 내 아이에게서 떨어져 나가 완전하게 고립되고, 망쳐지도록 의도하고 있다.
특히 1차 사건에 대한 왜곡된 소문엔 살이 붙고 형태가 바뀌며 점점 더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어려운 가정이라 했고, 나도 자식을 키우며 자식이 내 마음대로 안되더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그 부모를 봐서 참고 참아왔지만 이 철없는 녀석이 아무 말이나 떠들어대는 통에 도저히 참을 수 없던 나는 내 생애 처음으로 변호사 사무실을 찾아가 상담을 받고, 민사소송을 제기하고야 말았다.
어쩌면 친구가 제 부모보다 좋을 그 나이, 혹시라도 가해자들이 동네 어딘가 숨어 자신을 지켜보는 것은 아닐까 겁을 내며 조심스레 친구 집에 놀러 간 어느 날, 그들은 어디서 어떤 정보를 얻는 것인지 오후에 집에 돌아오려고 창문 밖을 내다보니 가해자 무리로 보이는 몇몇이 친구집 앞을 서성이고 있더란다. 공포감을 누르고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아이는 친구 집을 나섰다. 그리고 그들이 은신해 있을 만한 곳을 일부러 찾아갔다고 했다. 그러자 야구방망이를 들고 서 있는 여러 명을 맞닥뜨리게 되었고, 아이는 전속력으로 도망을 오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또 하루는 친구들이 너무 보고 싶어 집 근처 공원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던 그때 주동자를 포함한 가해자 여럿이 그 장소에 다시 나타났다고 했다. 겁에 질린 딸아이는 다급한 마음에 택시를 잡아타고 알지도 못하는 근처 어디론가 피신을 갔다고 했고, 택시를 타고 가면서 경찰에 신고를 한 모양이었다.
친구들은 근처에 숨어 가해자들이 사라지기를 기다리던 중 아이가 신고한 경찰이 공원에 나타났지만 가해자를 눈앞에 떡하니 두고도 의심갈만 한 학생은 없더라며 아무런 조치 없이 철수하는 것을 숨어있던 피해자 학생들은 모두 지켜보았고, 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자 가해학생은 그 자리에 없었다며 잡아뗀다.
경찰의 이러한 태도에 허탈한 감정을 지울 수가 없다. 공권력도 그 무엇도 피해자를 지켜줄 수는 없는 일이었다.
결국, 딸아이의 친구 중 주요 보복대상이 된 두 명의 친구 어머니들이 우리 집에 함께 모여 비상대책을 세우기로 했다.
친구가 보고 싶을 때마다 상황이 되는 엄마들이 데리고 가고, 집 앞까지 데려다주며 단체 채팅방을 통해 아이들이 어떤 상황인지 보고해 주는 일을 하기로 했다.
가끔은 친구 집에서 파자마 파티를 열도록 하고, 주말이면 다른 남자친구들도 데리고 엄마들과 교외로 나가 마음껏 자전거도 타고 달리기도 하며 바람을 쐬게 해 주었다.
가해자들은 동네가 제 것인 양 마음껏 돌아다닐 수 있지만 아무 죄도 없는 피해자인 우리 아이들은 집 앞을 나가는 것도 어렵게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그중 아버지가 목사님인 친구가 있었는데 다른 친구의 어머니는 교회를 다니지 않으니 교회 사모님과는 매일 만나 자녀들을 위해 한 시간씩 간단한 기도회를 하기 시작했다.
이 아이들이 딸아이와 놀지 않으면 피해를 입지 않을 테고 부모들도 웬만해선 우리 아이와 놀지 말라고 할 만도 한데 너무나 고맙게도 내가 미안해할 때마다 그런 말은 절대 하지 말라고 했다. 우리 아이를 가까이서 지켜보며 순수하고 착한 진심을 충분히 느꼈다고 했고, 함께 힘이 되어 이들의 악한 의도를 막아야 한다는 말이 참으로 고맙게 느껴졌다.
아직 성숙함에 이르지 않은 십 대이지만 도대체 가해자들은 왜 이런 일을 벌이는 것일까....
딸아이는 어릴 때부터 다른 이의 눈에 띄는 아이였다.
하는 행동과 생각이 특이하기도 했지만 여럿이 같은 행동을 하더라도 이상하리만치 이 아이만 다른 이들에게 주목되는 것이 단점이기도 장점이기도 한 아이다.
그런데 의도치 않은 사건에 계속 휘말리기까지 하니 지역 일진들 간에 수군거림의 대상이 되었던가보다. 마치 저들 스스로에게 심판의 권한이 주어진 듯 착각하며 그들에게 위협이 될만한 자를 처단해야 한다는 그릇된 사명감으로 이런 일을 벌인 것이 아닐까?
누가 이들에게 이런 당당한 권한과 자신감을 부여했단 말인가....
모든 것이 말도 안되는 일인것만 같다.
경찰서에 신고를 했어도 별 소득도 없다. 이래서 법보다 주먹이 가깝다는 말들을 하는 것일까?
우리 아이는 과연 이곳에서 어떻게 살아남아야 할까? 몇 년이 흘러야 자유롭게 거릴 걸으며 웃을 수 있을까? 왜 그래야 하나? 저들은 저리도 당당한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