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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내게 힘을 주는 슈퍼파워 고양이

by 산들바람

딸아이가 사건 이후, 더욱 우울감에 빠져든다.

그러지 않아도 사춘기가 찾아오며 여러 차례 자살시도와 자해를 일삼아왔는데 의도치 않은 엄청난 사건을 여러 차례 겪은 데다 2차 가해와 보복으로 인해 밖을 제대로 나가지도, 학교에도 못 가는 상황이니 당연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그러던 어느 날 딸아이가 고양이를 기르자고 했다.

반려동물이 있다면 마음의 상처가 치유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아서인가 보다.

강아지는 매번 산책을 시켜야 하니 자신은 그럴 처지가 못 되고, 고양이보다 훨씬 높은 텐션의 강아지는 지금 자신의 감정상태로서는 감당하기 힘들거라 생각해 선택한 결정이었다.

평소 남편은 강아지는 좋아하지만 고양이는 왠지 정이 안 간다는 이야기를 매번 해왔었는데 딸아이의 말이라니 기꺼이 허락을 해 주었다.

강아지든 고양이든 모든 동물을 무서워하는 첫째도 안쓰럽기 그지없는 동생을 위해 굳은 결심을 했다고 한다.

고양이가 절망에 빠진 우리 딸을 살리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나는 당장 지역 맘카페에 유기된 고양이를 임시보호하는 이가 있는지 수소문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중 어떤 회원이 자신의 지인중 여러 유기묘를 양육, 또는 임시보호를 하고 있다며 직접 연락처를 알려준다.

당장 연락을 해 보았더니 자신의 교회 사택 창고에 데려다 놓은 아기 고양이 사진을 보여주었고, 아이들 모두 마음에 든다고 하자 교회에 이야기해서 키울 수 있도록 주선을 해 주겠다는 연락을 받았다.

고양이를 데리고 집으로 오겠다는 약속을 잡았다. 또한 우리 집이 고양이를 키우는데 적합한 환경인지 확인차 방문해도 되겠냐는 것이다.

고양이 분양에 대한 서류를 작성하고, 고양이 용품을 준비한 후 , 모두들 기대에 찬 마음으로 아기냥이를 기다리느라 괜히 분주하다.

드디어, 고양이를 무료분양하겠다는 사람이 집으로 찾아왔다.

우리 아이들의 분위기며 집안을 둘러보던 주선자는 고양이를 키우기에 아주 적합한 가정인 것 같다며 마음을 놓는 듯하다.

그리고 기다리고 기다리던 아기고양이를 맞이할 차례다...

그런데..... 고양이 케이지에서 나온 냥이는 우리가 사진에서 보았던 고양이와는 전혀 다르게 생긴 아이다.

게다가 한 마리도 아니고 세 마리나 되는 고양이를 데려왔는데 한 마리는 열 살 된 할머니 고양이라 했고, 또 다른 한 마리는 이빨이 아파 모든 이를 발치해서 사람을 무는 일은 없어 안전할 거라는 등....

딸아이의 깊은 슬픔을 달래주기엔 발랄한 아기 고양기가 적합하다 생각해서 분양 받고자 한거였는데 조용히 잠 자는 시간이 많은 할머니 고양이들이라니....

어안이 벙벙해서 이유를 물으니 사실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교회 창고에 있는 아기 고양이를 데려가는데 아무런 반대가 없었는데 막상 차에 태우려니 교회 사모님이 울며불며 정이 들어 못 보내겠다며 직접 키우겠다고 한단다. 그러니 미안한 마음에 다른 고양이라도 키울 의향이 있는지 집에 있던 고양이들을 몽땅 다 데려왔다나? 자신의 다섯살 아이가 마음에 들어해서 임시보호를 끝내고 집에서 기르기로 한 고양이까지 데리고 왔단다. 잔뜩 기대했던 스타일의 고양이가 아니어서인지 아이들 모두 실망한 표시가 역력하다.

나로서도 입장이 난감한데다 직접 와 준 것은 너무 고맙지만 약속과는 다른 고양이를 직접 키울 마음의 준비가 안 되어 있다고 하자 오히려 자신이 미안하다며 되돌아간다.


모든 동물을 무서워하지만 여동생을 위해 크게 마음을 열었던 아들 녀석은 입이 댓 발이나 나와 금방이라도 눈물이 쏟아질 듯하고, 고양이를 키우자고 제안했던 상처 많은 우리 큰 딸도 속상해 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새로 입양하는 고양이를 보겠다며 우리 집을 찾아온 큰딸아이의 친구들도 실망하며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셋째도 시무룩해 있고, 아직 만 4살인 막내둥이도 닭똥 같은 눈물을 쏟아낸다.

하긴... 어른인 나도 이렇게 속상한데 아이들 마음은 오죽할까... 게다가 고양이를 키우겠다며 잔뜩 사 둔 용품들은 이제 다 어쩌나....

이리저리 머리를 굴리던 중 몇 주 전이던가? 아파트 게시판에 올라왔던 유기묘 사연이 퍼뜩 생각났다.

비 오는 날, 놀이터에서 비를 철철 맞고 있던 아기 고양이를 초등학생인 자신의 아들이 데려왔는데 자신들은 고양이를 키울 형편이 안돼서 급한 마음에 분유를 먹이며 돌보고는 있지만 데려다 키울 수 있는 집에서 연락을 달라던 글을 스치듯 본 기억이 되살아났다.

다시 아파트 카페 게시글을 확인하고 얼른 쪽지를 보내보았다.

직장에서 끝나고 돌아와 데려다주시겠단다.

우리는 또다시 기대에 가득 찬 마음으로 아기 고양이를 기다리고 있었다.

저녁 여덟 시쯤 됐을까? 이제 막 분유를 떼고 물에 불린 사료를 먹는다는 아기 고양이를 목욕을 시켜 데려 왔다며 내려놓고 가셨다.

아이폰 14 케이스에 쏙 들어가는 아주 작은 아기냥이....

핑크빛 볼록한 배를 드러내며 발랑 눕는 모습은 모두를 자지러지게 할 만큼 귀엽기 짝이 없다.

게다가 미모는 경국지색!

짙은 아이라인에 포도송이처럼 땡그란 눈, 분홍빛 코와 입술....

하지만 이런 아기아기한 외모와는 다르게 고양이답지 않은 대범한 성격...

다른 고양이들은 진공청소기 자체를 꺼내기만 해도 도망을 가거나 큰 소리에 놀라 숨어버리는데 이 녀석은 청소기 본체에 올라타 온 집안을 유유히 돌아다닌다.

보통의 고양이들은 산책을 해서는 안된다고 하는데 딸아이가 가해자들의 눈을 피해 잠깐씩 아파트 단지 근처에 나갈 때면 데리고 나가기도 했다.

이제 그만 집으로 돌아가자고 하면 더 놀고 가겠다며 화를 내고 그 귀여운 발로 냥냥펀치를 날리기도 한단다.

함박눈이 펑펑 내리던 날 집 앞 놀이터에 자신의 강아지를 데리고 온 친구를 보더니 쭈그려 앉은 친구와 강아지를 향해 두 발로 선채 원투 펀치를 날리며 번갈아 때리는 아주 터프한 고양이다.

어느날은 침대에 엎드려 책을 읽는 큰아들 앞에 가만히 서 있다가 흘깃 쳐다보니 방을 나간다. 그냥 그러려니 하는데 두세 번을 더 와서 같은 행동을 반복하자 아들이 따라 나가니 숨바꼭질을 하자는 것인지 화장실에 들어가 숨더니 한쪽 눈만 빼꼼 꺼내놓고 있다.

커튼 뒤에 꽁꽁 숨었어도 바르르 떨리는 얇은 꼬리는 버젓이 나와있는 것이 얼마나 귀여운지 모른다.

또 호기심은 얼마나 많은지 화장실에 따라 들어와 변기 속을 빤히 쳐다본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꺅꺅대는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수분 전 변기를 들여다보던 냥이가 퍼뜩 생각나며 아마 이 녀석이 거실에 있는 화장실에도 같은 것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살펴보다 변기에 빠진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에 달려가 보니 아닌 게 아니라 미끄러운 변기 속에서 발버둥을 치며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팔을 뻗어 고양이를 꺼내려하자 이 녀석이 살겠다며 발톱을 꺼내어 나무기둥에 오르듯 팔뚝을 찍으며 올라오는데 이것저것을 가릴 처지가 못되니 핏자국이 나는 팔을 움켜쥘 새도 없이 얼른 고양이를 구조해 냈다. 그날부터 우린 변기 커버를 잘 닫아두어야 한다는 교훈을 얻게 된다.

또 어느 날은 아이들이 탕목욕을 하고 배수를 제대로 하지 않은 것도 모르고 욕조에 뛰어 들었던지 꺅꺅대는 소리에 달려가보니 허우적대고 헤엄을 치는 것을 안아올리거나 종이 숨숨집을 가지고 놀다 그대로 엎어지는 바람에 나오지 못하고 야옹 대는 것을 구해주거나 아이들이 물감 놀이 후 제대로 치우지 않은 것을 가지고 놀다 염색된 발과 입으로 온 집안을 밟고 걸어 다니는 등 장난꾸러기 아이들과 아기고양이가 뒤섞여 집안이 야단법석이다.

외출했던 가족이 돌아오거나 밖을 나갈 때도 꾸벅꾸벅 졸면서도 가족들을 배웅하고 마중하는 일을 빼놓지 않았다.

우리 가족은 이 녀석에게 푹 빠져버렸다.

남편도 무슨 색인지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한가보다. 남편의 얼굴과 머리에 이만큼은 하얀색이고 이만큼은 검정색이라며 양쪽 검지손가락으로 직접 그리며 설명 하려니 웃음이 난다.

마음대로 외출을 하지 못하는 상처많은 딸아이도 이 녀석에게 마음을 모두 내어주었다.

여전히 계속되는 그들의 보복으로 인해 때론 죽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떠오를 때면 이 작은 녀석을 꼭 끌어안고 부모에게도 하지 못하는 자신의 속 이야기를 쏟아내곤 하면서 그 시간을 버텨왔다고 했다.

비록 말 못 하는 아기 고양이지만 우리 가족과 충분히 공감하며 제 몫을 다 하는 것을 보며 모든 것은 다 제 짝이 있는 모양이고 인연이 따로 있는 모양이다.

작지만 우리 가족에게 소소한 즐거움을 나눠주며 엄청난 힘을 발휘하는 너는, 슈퍼파워 고양이!!!

우리는 오랫동안 함께 하자며 굳은 약속을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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