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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원서를 제출하다

by 산들바람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는 속담이 맞는 듯하다.

비록 집에 콕 처박혀 눈에 띄지 않더라도 딸아이가 그 지역에 거주하는 것만으로도 보복의 대상이었는데 같은 서울 하늘이라도 30KM 이상의 물리적 거리를 극복하기보다 다른 타깃을 만들어 괴롭히는 게 낫다고 판단했는가 보다.


이곳에 이사 왔어도 아이의 사춘기가 끝난 것은 아니고, 폭행사건의 정신적 후유증에서 완전하게 벗어난 것도 아니지만 분명한 건 회복의 시간을 지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엄마, 이거 봐!!"


"무슨 일이야?"


"나 때렸던 애 중에 박*영 걔네 언니도 엄청 맞았나 봐. 그래서 걔네 엄마가 폭행당한 사진이랑 사연을 페이스북에 올리고 난리 났어"


"뭐라고? 아니 왜? 누구한테?"


"나도 잘 모르겠어.. 이거 봐봐"


지난 사건의 주동자 중 한 학생은 쌍둥이었다. 그런데 쌍둥이 언니가 자신의 동생과 함께 속해 있는 일진 무리들에게 무슨 잘못을 했는지 폭행을 당한 모양인데 얼굴 한쪽은 피멍이 들었고, 눈은 퉁퉁 부어있다.

그 엄마는 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리며 울분을 토하고 다른 학부모들은 사건을 공론화시키자, 아는 기자에게 연락을 해 보겠다는 둥 수십 개의 댓글이 달려있었다.

그러자 그 지역에 살고 있는 딸아이 친구들은 '무슨 소릴 하는 거냐, 이 쌍둥이 동생은 내 친구를 이보다 더 심하게 두들겨 패고도 지금 글 올린 엄마가 제대로 된 사과조차 하지 않았다'라고 댓글을 남기자 지난날의 가해자이며 지금은 피해자가 된 학생의 엄마는 딸아이 친구들의 글을 보이는 대로 삭제하고 있단다.

삭제당하기 전, 또는 미처 삭제하지 못한 글을 확인한 부모들은 이게 사실이냐며 설왕설래하는 중 급기야 당사자인 우리 딸이 본인임을 밝히고 지난 사건에 대해 서술하는 글을 올리게 되었다.

그러자 쌍둥이 자매의 역성을 들던 학부모들은 기가 차다는 반응이 주를 이루었고, 그중 어느 학부모가 우리 딸도 흡사한 일을 당했는데 혹시 어머니 연락처를 알 수 있느냐며 내 연락처를 물어왔단다. 아이는 내 허락을 받고 연락처를 알려주었다.

만 하루가 지나지 않아 그 어머니에게서 연락을 받았고, 만나서 긴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며 그날 우리 동네를 급하게 찾아왔다.

자신의 딸은 우리 딸아이를 폭행했던 박*영과 김*서를 비롯한 17명에게 2020년 10월에 1차 폭행을, 2021년 4월에는 김*서를 뺀 박*영 무리 28명에게 2차 폭행을 당했다는 것이다.

역시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이들이 메시지를 보내오며 접근한 뒤 괜한 꼬투리를 잡아 때릴 구실을 찾는 것이 똑같은 수법이었다.

1차 사건 때만 해도 그냥 넘어갔지만 두 번째 폭행은 도저히 참을 수 없어 한 명, 한 명을 다 찾아내어 학폭위는 물론 민사소송까지 진행하겠다는데 그 소송 비용이 만만치가 않다고 했다.

2차 사건이 있을 당시엔 재빠르게 CCTV 증거보존을 신청하여 비용을 지불하고 휴대폰으로 저장해 두었다며 영상을 내게 보여준다.

학생이 무릎을 꿇고 앉았고, 수십 명이 빙 둘러 서 있으며 촬영을 하고, 주도적인 폭행을 저지르는 등 딸아이의 사건과 너무나도 흡사한 장면이었다.

나는 순간 두 눈을 질끈 감고는 죄송하지만 더 이상 폭행장면을 볼 수 없을 것 같다고 했다. 지난날의 분노와 공포가 쓰나미처럼 몰려오는 듯했다.

그 어머니는 폭행에 단순 가담한 화면 속 아이들까지 한 명씩 알아내는 과정에서 이 사건이 단순한 학교폭력만이 아님을 알게 되었단다.

그중 한 아이가 보내준 일진 무리의 메시지를 확보할 수 있었는데 이들은 약 70여 명쯤 되는 중, 고등학생들이 가입되어 있었으며 그들은 어른들의 조직폭력배 세력과도 맞먹는 조직체계를 갖추고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두목의 정체를 아는 이가 별로 없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우리 아이에게 연락하고, 폭행을 했던 이들도 모두 명령을 받아 행동을 했을 뿐, 윗선에서 지시를 내리는 황모군이 어디서 살며 나이는 몇 살인지 제대로 알려지지 앓은 상태에서 메시지로 지시를 내릴 뿐이라 했다.

이들 조직 중 폭행에 가담시킬 이들을 지목할 때는 철저히 촉법에 해당하는 나이인지 아닌지 생일까지 정확하게 따져 인원을 구성하여 지시를 내린다는 것이다.

그리고 상벌도 확실했다. 메시지 내용 중 우리 아이를 폭행했던 김*서는 함께 때렸던 쌍둥이 동생 박*영보다 윗계급으로 보였고, 다른 여러 폭행 사건에서도 혁혁한 공로가 인정되었는지 '너는 이번에 빠져라! 지금 이 메시지 방에서 나가'라고 지시하니 '네'라고 대답하며 퇴장하는 내용도 볼 수 있었다.

자신의 딸이 우리 딸과 유사한 폭행을 당했다며 나를 찾아온 어머니의 증거 사진 중에는 남녀 학생이 뿌연 담배 연기가 자욱한 곳에서 춤을 추고 있는 사진을 나에게도 전송해 주었다.

또한 1차 사건의 가해자는 민사소송이 진행 중인 지금도 여전히 헛소문을 내며 딸아이의 명예를 훼손하고 있다고 했다. 그 어머니도 자신의 딸로부터 왜곡된 소문에 대해 전해 들었다며 나에게 사실관계를 정확히 물어보기도 했다.

그리고 모처에 사무실을 임대해 불법 복권과 사행성 오락으로 수익을 얻는 범죄를 저지르고 있는데 아무 연관도 없는 일반 학생들을 위협하여 인증번호를 따 내고, 그 학생 명의로 벌어들인 돈을 갈취하여 법적 책임을 면하는 수법이란다. 이들은 성남의 성인 조직폭력배와도 연관되어 있을 수 있다는 정황을 포착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사실을 경찰에 신고해 봤지만 전혀 수사를 할 의지가 없어 보였다.

결국, 나는 이러한 내용을 '그것이 알고 싶다' 제작진에게 제보했고, 제작진의 연락을 기다려 보기로 했다.

피해 학생의 어머니는 나와 우리 딸에게 각각 탄원서를 작성해 달라는 부탁에 딸아이도 기꺼이 동참하기로 했다.

아래는 딸아이의 탄원서를 지명과 이름을 일부 수정하여 첨부한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박*영, 김*서로부터 2020년 10월 13일 폭행을 당했던 최*인 학생입니다.


그 사건이 있었던 그날부터 지금까지 정신적인 후유증이 너무 커서 힘겹게 살아오고 있었는데 2021년 4월 4일 반성도 없이 김*은 학생을 폭행한 박*영, 김*서의 행동에 그 학생들을 엄벌에 처해 달라는 탄원서를 작성합니다.


지난 5월 11일경 박*영의 쌍둥이 자매인 박**이 폭행을 당했을 당시 박*영과 박*영 부모님의 내로남불 태도로 인해 너무나 화가 나서 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제 사건에 대해 제 친구들이 그 글에 반박했고, 그 당시에는 박*영의 실명을 거론한 적도 없는데 조금 지나지 않아 갑자기 박*영이 제 게시글에 등판하여 박*영의 친구들과 함께 저에 대해 거짓 소문과 욕설을 하였습니다. 제 사건을 공론화시키기 위해 쓴 글이 상대방의 물타기와 욕설로 인해 핀트를 잃었고, 그 후에 반박 댓글이 달리고, 제가 쓴 글이 공유되자 글을 내려달라고 요청하기도 하였습니다. 이것 또한 피해자 기만행위와 2차 가해 행위입니다.


언행불일치로 박*영 학생은 절 게시글로 욕하는 시간에 저의 페이스북 메시지로는 사과를 하였고 게시글에 태그 된 김*서 학생도 입을 꾹 닫는 태도 등 사과가 없는 태도로 피해자를 기만했다는 확실한 입장을 밝힙니다.


"다 끝난 일이다"라는 말을 하며 박*영 학생 그리고 박*영 부모님이 사건을 덮기 위해 둘 다 개인 sns 플랫폼들로 가해에 대한 잘못은커녕 거짓말로 죄 없는 저를 욕먹게 했습니다. 또 죄책감도 없이 자신들이 타격이 되니 모든 사건을 은폐하려는 박*영과 부모님은 엄벌에 처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저를 때린 후에도 2차 가해는 정말 많았습니다. 김*서 학생이 저와 제 친구들이 놀고 있던 놀이터에 약 30명이 함께 들이닥쳐 저를 찾으라거나 아이들을 잡아 욕설을 하였습니다. 저는 그때 집에 빨리 가서 *서를 직접적으로 보지 못했지만 *서와 *서 무리들의 협박으로 저에게도 전화 연락이 계속 왔습니다.


김*서 학생은 페이스북 단체 메시지에서 저와 제 친구, 또 따른 피해자 학생에게 부모님 욕과 성적인 욕설을 가리지 않고 하였습니다.


가해자들의 친구들과 선배들이 20명 정도 다시 모여 친구들을 때리려 하자 친구들은 모두 뿔뿔이 도망갔고 전 택시를 타고 경기도 하남시로 도망을 갔습니다. 그나마 안전한 저는 경찰에 신고했지만 경찰은 이를 믿어주지 않았고, 장소를 쓱 보고는 애들이 여기 없다고 거짓말을 하였습니다. 숨어서 그 모습을 모두 지켜보았고, 그때 당시 경찰은 왔었고, 가해한 아이들은 있었습니다. 경찰은 떠나게 되고 아이들은 결국 붙잡혀 한 명은 지하주차장으로 끌려가고, 다른 한 명은 뺨을 맞고 돈을 갈취당했습니다.


이게 모두 박*영 학생, 김*서 학생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을 자발적으로 하는 사람은 절대 없습니다 이건 집단입니다.

심지어 *영 학생과 ** 학생, 그리고 그 아이들의 어머니가 사건을 은폐할 시기에 김*은 학생을 저와 똑같은 방식으로 폭행했다는 사실까지 알았습니다.

정말 반성이라곤 눈곱만치도 찾아보기 힘든 모습입니다.


제 친구가 저를 돕기 위해 박*영의 위법행위 기록을 찾아보니 조건만남으로 돈을 벌어 그 돈으로 허벅지에 문신을 했습니다. 미성년자 문신은 불법입니다.

그리고 전 작년 박*영의 선배와 친구인 보*중학교 박*현(2학년), 김*훈(유급)에게 정말 조건 만남 알바 제의를 요구받은 적이 있었고 전 그 제의를 무시했습니다. 그 아이들이 충분히 조건 만남을 못 할 이유는 없습니다.

김*서 학생 또한 절 때리고 나서 남자 친구가 있음에도 다른 남자아이들과 성관계를 가진 걸로 알고 있고, 김*서가 인정하는 내용을 본 적이 있습니다.

이 외에 너무너무너무 많은 피해가 있었고, 증거는 너무너무너무 많이 넘칩니다. 더 깊게 수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처벌 수위가 너무나 낮습니다. 그저 교내봉사 정도의 처벌은 느끼는 것 없이 피해자들을 또 가해할 생각만 할 것입니다. 오히려 이렇게 쉬워 빠진 일들은 가해자의 자랑일 뿐입니다.

이 학생들이 올바른 길로 갈 수 있도록 처벌 수위를 높여야 합니다.

억울하게 폭행당했던 저와 또 다른 피해자인 김*은 학생의 억울함을 위해서라도 박*영과 김*서는 엄한 처벌을 받아야 합니다.

오죽하면 그 피해 사실을 듣고, 15살인 제가 이렇게 탄원서를 쓰겠습니까?

부족한 글인 줄 알지만 제 마음의 뜻을 전달드리기 위해 지금까지 피해자 김*은 학생을 위한 탄원서였습니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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