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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할 수 있는 네가 진정한 승리자!

by 산들바람

민사소송을 진행 중이던 1차 사건이 10개월째 돼서야 마무리되고 있다.

나와 딸은 법원에 직접 출석하지 않았고, 상대 어머니가 변호사 없이 법원에 출석했다고 한다.

자신들이 변호사를 고용하지 않은 것은 변호사비를 지불할 금액으로 어떻게든 합의금을 더 보태야겠다는 생각에서였단다. 자식은 비록 잘못을 저질렀지만 그에 따른 책임을 지겠다는 간절한 마음으로 판결을 받는다고 했다.

그 뜻을 받아들여 앞으로 이 사건에 대해 상대 신원을 밝히지 않는다는 것과 천만 원의 위자료를 받는 것으로 소송을 종결하기로 했다.

사실 신원과 사건발설에 대한 이야기는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라고, 제발 부탁이니 부디 그 녀석이 입을 다물고 살아달라는 얘기 좀 대신 전해 달라고 했다.

그 가정도 형편이 넉넉지 않은 데다 전교에서 1,2등을 다투는 첫째, 둘째가 있으니, 또한 부모님이 깊이 반성한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는 법적 처벌은 하지 않으려 했지만 정신을 못 차리는 그 녀석이 부모가 고생하는 것을 봐야 일이 끝날 모양인지 철없이 떠들어대는 통에 나 또한 이런 독한 마음을 먹게 된 것이다.

대출을 받아야 한다며 3주 뒤 통장으로 합의금이 입금되었다.

무엇보다 이 사건의 원고이며 위자료의 주인인 딸아이에게 이 사실을 이야기했다.


"이 돈, 까짓 거 너 사고 싶은 거 다 사.... 과소비하네 뭐 하네 이런 말은 하지도 않을 거야... 이거 위자료잖아... 이 돈으로 조금이라도 위로가 될 수 있다면... 지난날의 너의 상처를 치유하는데 도움이 된다면 엄마는 아무 상관 안 해...."


"고마워... 엄마, 나도 이제 그 애를 마음속에서 영원히 떠나보낼래... 깨끗하게 용서할 거야...

사람을 미워하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깨닫게 됐어... 약 1년간 증오에 가까운 마음을 누군가에게 품고 살면서 나도 정말 힘들었어... 그리고 생각해 봐, 천만 원이 적은 돈도 아닌데 그 부모들도 이 돈 마련하려고 얼마나 힘들었겠어.... 이제 걔도 정신 차리고 잘 살았으면 좋겠다 그렇지?"


"그래.... 그렇지... 그런데... 이제 2차 소송 들어가자... 적어도 김*서랑 박*영은 민사소송 해야지..."


"엄마, 나 안 할래......"


"왜? 너무 지치고 힘들어서?"


"아니.... 그건 아니야... 하지만 나에겐 1차 사건이 너무 상처가 컸던가봐... 정말 위자료라는 게 위로가 되긴 하는 모양이야... 1차 그 녀석을 용서하고 나니까 그렇게 밉던 2차 사건 걔들도 용서가 되는 것 같아... 물론 걔들이 내가 용서한다고 달라질 애들도 아닌 거 나도 잘 알아. 하지만 다른 사건을 통해서 걔들 지금 벌 받고 있잖아... 이제 나는 걔들도 다 용서하기로 했어...."


"어쩌지?.... 엄마는 아직 용서가 안 됐는데......"


나는 울먹이며 대답했다. 그리고 남편에게 이 사실을 이야기하자 자신도 아쉽지만 가장 소중한 우리 딸아이가 그런 결정을 내렸다면 어쩔 수 없지 않겠냐고 했다. 나도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한다.

지난 글의 다른 사건으로 아이가 탄원서를 제출했던 것이 어느 정도 도움이 되었을까? 그중 박*영이란 아이는 그 사건으로 소년원에 수감되어 있다고 했다.


나는 딸아이와 함께 백화점으로 향한다.

평소라면 생각도 못 해 본 제법 비싼 운동화를 사 달라기에 값을 지불하고, 옷과 목걸이를 구입해 주었다.

아이가 원하는 대로 침대와 책상, 옷장도 구입했다.

그간 고생한 가족에게도 선물을 하고 싶다 해서 아빠와 동생들 옷도 구입한다. 나는 그저 결제만 할 뿐, 이 돈은 순전히 내 딸의 것이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오로지 내 딸을 위로하는 데 다 쓰기로 작정했다.

너의 마음에 그 어떤 부유물도 남기지 않기 위해.....

물론 돈으로 사람의 마음을 위로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는 것이지만 아이는 상대 부모가 힘들게 돈을 마련했을 그 노력을 아는 것 같았고, 미안함을 표현하는 행위를 통해 상처를 치유받는 듯했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그것이 알고 싶다 작가입니다. 지난번에 제보 주셨던 사건에 대해 취재를 하려는데요. 혹시 시간 괜찮으세요?"


'궁금한 이야기Y'와 '그것이 알고 싶다' 팀에 이들 조직에 대한 제보를 했는데 '궁금한 이야기Y'의 작가는 이 사건에 대해 취재를 하고 싶어 했으나 전체 회의결과 이 사건을 취재하지 않는다는 결정이 났다며 자신도 무척이나 안타깝다는 연락을 해 왔다.

대신 '그것이 알고 싶다' 팀에서는 해당 사건에 대해 충분히 파헤쳐볼 만한 것 같다며 취재를 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아이는 이미 제보 당시와는 다르게 그들을 용서한 상태다. 이 사건의 주인공이며 제보자이고 인터뷰 대상자인 딸아이가 이제 그 기억을 떨치고 일상을 되찾겠다는 데 어째야 하나 고민 하다 일단 제작진을 만나보겠다며 우리가 운영하는 사업장으로 약속장소를 잡았다.

'위상현 피디'와 작가, 스텝이 방문해 가녹화를 위해 카메라 설치를 한다.


"죄송합니다. 살인사건 제보가 워낙 많아 취재하느라 시간이 너무 많이 지났네요"


명함을 내밀며 인사를 건네는 피디에게 초창기 학폭의 가해자로 오해받았던 사건부터 이야기하자 잠시 말을 자른다.


"이거 잘못하면 악플에 시달릴 수도 있겠는데요? 물론 저희는 소영이를 믿지만 시청자들은 왜 저렇게 행동했냐는 식의 악플을 많이 달면 따님이 힘들어질 수도 있어요. 오늘 녹화는 미루고 다시 한번 따님의 의견을 물어보시고 연락 주시겠어요?"


그 사건에 대해서라면 이미 수사를 다 마친 상황이다. 경찰이 어설프게 수사한 것을 검사가 다시 한번 조사해 청소년들을 꾀어내 성매매와 불법 사기도박을 하던 주범이 법적 처벌을 받게 된 사건이었고, 딸아이는 어떤 범죄에도 혐의 없이 단순히 좋은 사람으로 알고 순수한 도움을 구했던 사건으로 종결된 사건이지만 시청자들은 실상을 다 알 수 없으며 관점이 다르니 충분히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닌 게 아니라 딸아이는 이미 그들을 용서했기에 방송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우리 가족에게 닥친 개인적인 문제이기도 하지만 이들의 실체를 밝혀 앞으로 피해자가 없었으면 하는 공익의 목적도 있었던 터라 무척 아쉽기도 했고, 내가 너무 이기적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무엇보다 소중한 것은 딸아이라서 아쉽지만 방송을 철회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 사건이 일어난 지도 5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간 아이는 중학교를 제대로 다니지 못하고 2학년 2학기쯤 자퇴를 해 버렸다. 하지만 씩씩한 아이라, 너라서 이만큼 이겨내고 산 것이 아니었을까... 여러 번을 되새기며 기특하다 생각해 왔다.

감사했다.

몇 달 전 딸아이에게 메시지 한 통이 도착했단다.

지인에게 링크를 보내면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그런 내용이었는데 발신자가 지난 폭행 주동자였던 '김*서'라고 하더란다. 아마도 단체문자를 보내며 저도 모르게 보내진 것 같았다.

딸아이는 지난날 자신을 공포에 떨게 했던 그 아이에게 직접 전화를 걸었다.


"누구세요?"


"잘 지냈니? 나한테 단체문자 보냈더라...."


"누구시죠?"


"넌 나를 기억 속에서 완전히 잊었구나.... 나 기억 안 나니?"


"아~~~!!! 너...... 너, 내가 누군지 알고 전화한 거니?"


"그럼, 당연히 알지 어떻게 모를 수가 있겠니?"


"그런데도 나에게 전화를 한다고??"


"응.... 난 오래전, 이미 너를 용서했거든..."


"어떻게 그럴 수 있어? 나라면 그렇게 못했을 것 같은데......"


"뭐 하면서 지내?"


"응.... 마음잡고 공부하기로 해서.... 대학 가려고... 너... 너는?


"나도 대학진학 준비해.. 음악 하려고... 이렇게 통화하니까 나는 한결 마음이 가볍다. 너도 그랬으면 좋겠어, 나는 이미 너를 4년 전 용서했고, 네가 나에 대해 어떤 행위도 하지 않는다면 널 미워하는 마음도, 복수하려는 생각도 없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거든.... 앞으로도 잘 살아라....."


"어... 그... 그래.... 응..... 너도 잘 지내...."


우리 가정을 통째로 흔들어대던 무시무시한 사건들은 그렇게 모두 마무리되었다.

그곳으로 이사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별의별 사건을 다 겪어왔다. 마치 이 집을 떠나지 않으면 너희 가족을 가만두지 않겠다는 어떤 존재가 있는 것처럼 딸아이뿐 아니라 다른 가족에게도 크고 작은 기막힌 일들이 하루가 머다 하고 생겨났었다.

지하철에서 가만히 앉아 잠들어 있던 남편 앞에 선 사람이 돌멩이를 들고 서 있다 발 등 위로 떨어뜨려 뼈에 금이 가는 바람에 몇 달째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거나, 자전거를 타고 갓길에 서 있던 큰 아들을 우회전을 하던 자동차가 사고를 내어 공중제비를 돌며 떨어졌는데도 뺑소니 사고를 내고 도망을 가는 등 허구한 날들을 사건사고를 수습하는데 많은 시간을 보내야만 했던 이상한 동네, 이상한 집이었다.


"나 사실은 그 집에 들어갈 때부터 이상한 기운을 느꼈고, 검은 형체가 현관 앞을 지나는 걸 봤어. 내가 그랬잖아 이사하자마자 도로 이사 가자면서 막 울고 떼쓰고 그랬던 거 기억나지?"


"난 그냥 네가 사춘기라 하도 이상한 생떼를 써 대니 그런 줄만 알았지...."


"사실 그래서 그랬던 건데 그 당시 내 상태를 봐선 그런 말 해도 엄마가 믿어줄 것 같지도 않더라고.... 그리고 당장 이사를 왔는데 그런 얘기한다고 도로 이사를 갈 수 있었겠어?"


예전 글에서도 잠시 언급했지만 워낙 예민한 데다 우리는 느낄 수 없는 영역의 것을 느끼는 아이였다.

이상하고 괴로운 추억이 많은 시절이었지만 가족이라는 힘을 믿으며 서로 위로하고, 위로받으며 지금까지 지나올 수 있었던 듯하다. 사춘기 들어서며 엄마가 가장 싫다던 아이가 그간의 사건을 겪으며 엄마가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가족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가 깨닫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때의 낯설고 불쾌했던 기억들은 너의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이며 어떻게 승화되어 발현될까?

일단, 너는 너만이 유일하게 사용할 수 있는 '용서'라는 무기를 사용함으로써 끔찍했던 그 기억을 평범한 일상으로 변환할 수 있었다.

진정한 사과를 모르는 그들에게 어른이어도 하기 힘들었을 '용서' 할 줄 아는 용기 있는 너는 진정한 승리자다.

그랬으니 네가 이긴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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