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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가 서로에게 울타리

by 산들바람

나는 2남 2녀의 자녀를 두었다.

그중 셋째는 경도의 지적장애를 가진 아들 녀석이다. 말하자면 성인이 되어도 약 10~12세의 시각으로 이 세상을 살아간다고 이해하면 될 듯하다.

같은 처지의 친구들은 어릴 때부터 미술 감각, 언어감각, 통합 감각 등등 혹시라도 잠재되어 있는 어떤 가능성이라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조바심에 여러 센터를 다니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나는 둘째 딸이 사춘기가 오기 전까지 셋째를 센터에 보내지 않았다. 혹시라도 전문가의 손길이 닿지 않아 그들과의 사이에서도 뒤처지는 것은 아닐까.. 또는 내가 너무 무심한 것은 아닐까 고민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가족을 통해 그 역할을 어느 정도 충분히 해 내고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었다.

어쩌면 자연스럽게 얻어지는 물리적, 정서적 보상이 더 많을지도 모른다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요즘은 보통 아이 하나, 둘 낳고 마는데 우리 집은 네 남매나 있으니 저들끼리 웬만한 자급자족이 자연스레 가능한 결과라 할 수 있겠다.

더군다나 늦둥이를 제외한 삼 남매는 연연년생이니 힘든 일도 많은 대신 또 그만큼 수월할 때도 많다.


첫째 아들은 운동신경이 좋았다. 축구도 달음박질도 제법 잘해서 운동회가 열리면 계주선수로 나가거나 축구부에 들어가 활동하기도 했으니 하교 후엔 밖에 나가 노는 게 하루의 주된 일과다.

셋째는 자연히 두 살 터울 형과 함께 여기저기 쏘다니기 일쑤다.

달리기가 서툴러 넘어지는 일이 잦아도, 형과 함께 축구도 하고, 지하탈출 놀이, 오징어 게임을 하기 위해선 어떻게든 일어나 아득바득 따라붙는 수밖에 없었다. 자연스레 신체 활동을 하게 되는 것이다.

집에 들어와서도 놀이는 끝이 없다.

삼 남매는 보이는 모든 곳이 숨바꼭질과 술래잡기 장소가 된다. 길 가다 남의 집 차가 주차되어 있어도 술래는 거기에 두 손을 포개어 맞대고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를 외치고, 멀건히 서 있는 전봇대에 대고도 가로수에 대고도 숨바꼭질을 하곤 했었다.

집안이라 문제 될 것도 없다. 내가 보기엔 빤한 집안 풍경인데도 아이들은 옷장 안, 커튼뒤, 엄마의 등 뒤 할 것 없이 자신의 몸을 숨길 수 있는 은신처가 되어주었다.

마침내 '다 숨었다!!' 하는 소릴 듣고 방향을 유추해 형과 누나를 찾는 일이 우리 셋째에겐 많이 어려운 일이라 신발을 신고 현관 밖으로 나가는 일도 허다했지만 어쨌든 자연스레 방향감각을 익히는 훈련이 되었다.

그리고 좌탁을 마주 보게 붙여두고, 누나를 따라 색종이도 접어보고, 점토 놀이도 해 본다.

일곱 살 누나는 스케치북을 꺼내 큰 동그라미와 작은 동그라미를 그리고 'big circle, small circle'을 따라서 복창하게 하며 간단한 영어공부도 시키고, 함께 책을 읽기도 했다.

어느 날은 딸아이가 우유갑 육면에 색종이를 둘러 각 면마다 수행해야 하는 지시문을 적어두었다. 그리고 셋째가 그것을 굴려 해당하는 지시문대로 미션 수행을 하는 거다.

설거지를 하면서도 귀는 거실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에게 가 있다. 그러던 중 '엄마를 안아주고 오세요'라는 미션이 있었는가 보다. 셋째가 쪼르르 달려와 설거지하는 나를 살포시 안고 돌아간다. 또 이번엔 '거울 앞에 서서 자신의 모습을 보고 미소 지어 보세요'라고 쓰여 있기도 했다. 아마도 수줍음 많은 셋째는 거울 앞에 서서 몸을 베베 꼬며 싫지 않은 웃음을 웃었을게 뻔하다. 그리고 마지막엔 '이 상자의 뚜껑을 열어보세요'라고 씌었는가 보다. 셋째가 호기심 가득한 마음으로 뚜껑을 열어보니 동생 모르게 언제 그 안에 사탕을 넣어두었는지 둘이서 사탕을 까먹으며 자연럽게 보상과 기쁨을 주고 받는 시간을 만들어낸다.

그 어떤 치료 프로그램보다도 일곱살 누나의 기발하고 창의력 넘치는 아주 훌륭한 놀이였다.


함께 보낸 유치원에서도 누나는 동생을 세심하게 돌보았다.

늦도록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는 남동생을 위해 딸아이는 방과 후 수업도 일부러 같은 것을 신청해 들으며 한 번씩 틈을 내어 남동생을 화장실로 데려가 바지를 내려보았다.

혹시라도 속옷에 그대로 대변을 보았다면 자신이 대처를 할 수 없으니 유치원 선생님을 불러야 하는데 이때 아가씨 선생님보다 대처에 능숙한 나이가 지긋한 선생님을 일부러 모시고 온다고 했다.

교회에서도 항상 동생을 돌보기에 정신이 없는 이 아이는 교회 나들이를 가더라도 맘 편하게 놀아본 기억이 없다고 했다.

한 눈을 팔면 동생이 없어져 걱정되는 마음에 선생님과 함께 찾으러 다니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딸아이가 열 살 무렵 실내 워터파크로 수련회를 갔을 때였다. 특정한 구역에 '신장 제한 구역'이라 들어갈 수 없다는 안내문구가 쓰여 있더란다.

그런데 수영을 할 줄 아는 데다 셋째보다 키가 컸던 누나가 친구들과 노는 그곳에 들어가 놀고 싶었던지 남몰래 그 구역에 들어갔던 모양이다.

딸아이가 힐끗 쳐다보니 누군가 수영장 물속을 올라왔다 내려갔다 하는데 가만 보니 자기 동생이 더란다.

급한 마음에 주위 친구들에게 내 동생이 물에 빠졌으니 구하러 가자는 말에 친구들이 우르르 아이를 뒤따른다. 그리고 딸아이는 행동이 빠릿빠릿한 한 친구를 지목하며 가서 선생님을 불러올 것을 부탁했고, 나머지 친구들에게는 모두 동그랗게 서서 손을 잡고 다리를 한쪽씩 들어 올려 동생이 더 이상 물에 빠지지 못하도록 하자는 제안을 했다. 곧 선생님들이 도착했고, 누나가 기지를 발휘해 목숨을 구할 수 있었던 사건이었다.

그 당시엔 손 많이 가는 동생 때문에 매번 마음껏 놀 수 없어 원망스럽기도 했지만 선생님이 덮어주신 커다란 수건을 감싼 채 물에 빠진 생쥐처럼 덜덜 떨고 있는 모습이 어찌 보면 귀엽기도 하더란다.

버스를 탈 때도 항상 남동생을 안쪽에 앉히고, 자전거도 태워준다. 물론 오르막은 힘드니 내려서 밀으라 했고, 내리막은 위험하니 내려서 걸어오라니 자전거를 타는 시간보다 내려서 있는 시간이 많았지만 누나의 정겨운 마음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을테다.

그러나 이렇게 다정하고 좋던 누나가 사춘기가 되며 너무도 변해버렸다.

누나 방문을 빼초롬 열고 쳐다만 봐도 '뭘 봐!' '나가!!'라며 면박을 주며 이전과는 정말 다른 사람이 되어버렸다. 이제 자신은 도무지 이해할 수도 없는 다른 세계에 가 있는 누나를 보며 한동안 셋째는 혼란스러운 듯했다. 한때는 세상에서 가장 든든한 보호자였던 누나였는데 말이다.

집안이 온통 잿빛이다. 방 안에 틀어박혀 누워만 있으니 한 집에 살아도 얼굴조차 보기 힘들다.

하지만 우리는 2남 2녀, 막내가 곧 그 자리를 채워갔다.

막내딸이 태어나 막 첫돌이 되었을 무렵, 말도 제대로 못 하는 저가 보기에도 셋째 오빠가 딱해 보였던가보다. 엄마한테 혼이 나서 울고 있는 오빠가 안쓰러워 보였던지 자신의 딸랑이가 가득 든 장난감 통을 오빠에게 쓱 내밀어본다. 그래도 훌쩍이고 있으려니 어른스럽게 가만히 등을 쓰다듬어주는 것을 보았다.

'아... 이 녀석도 범상치는 않겠구나 싶으면서도 우리 셋째에게 다행이다' 싶은 생각에 마음이 놓이기도 했다.

그 후로도 오빠가 울면 화장실에 자박자박 걸어가 화장지를 두 칸 떼어와선 한 칸으로는 오빠의 눈물과 콧물을 닦아주고 한 칸은 또 눈물이 나거든 닦으라는 듯 살포시 앞에 두고 간다.

그런데 셋째는 막내에게 그저 도움만 받는 것은 아니었다. 자신이 보기에도 일곱 살 어린 여동생이 얼마나 사랑스럽고 예쁜지 자신이 소중해하는 많은 것들을 양보했다. 담임 선생님 말씀으론 가족 소개를 하는 시간, 여동생 이야기를 하는 셋째의 눈에선 하트가 튀어나올 만큼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이야기하더란다.

물론 지금은 덩치가 커지고, 사춘기에 들어서 예전의 누나의 모습이 슬쩍슬쩍 엿보인다.

물론 작은 아들도 아직 포켓몬카드를 너무나 좋아하지만 저 나름의 늦된 사춘기를 맞아 부조화스러운 나날을 보내는 중이다.


훗날, 아이들이 모두 자라 둥지를 떠나는 날이 오더라도 여전히 서로가 서로에게 울타리가 되어주기를 바라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부모의 마음이다. 자라가며 서로 갈등도, 미움도 있기 마련이지만 해맑던 어린 시절처럼, 함께 했던 즐거운 추억을 떠올리며 서로 데면데면 살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느리게 피어나는 우리 셋째는 다 잊혀진 기억이란다. 하지만 사랑이라는 결정체로 변환되어 온 몸에 박혀, 앞으로 들어서게 될 이 험한 세상에서도 꿋꿋이 잘 살아가길 간절히 소망한다.

나중에 아빠, 엄마가 이 세상을 떠나고 없어도 말이다.


또한 많은 것을 양보하고, 희생했을 둘째야, 얼마전 엄마에게 울며 소리쳤지... '왜 내 마음을 알아주지 않느냐'고..... 하지만 말이지... 때로는 그 마음을 다 알아도 너만을 위해 어찌 할 수 없는 엄마의 자리라는게 있단다. 아마 세월이 더 흐르면 이해하게 되는 날이 올지도 몰라.

엄마는.... 우리 아이들을 키우면서 누군가라도 힘들땐 쉬어 갈 수 있는 큰 나무 그늘이 되어 주기로 했거든....

그래서 그 자리에 서서 움직일 수 없어 그 자리에서 눈물만 흘리고 있는거야.

하지만 약속할게.... 언제든 내 품에 와서 쉴 수 있게 하겠다고,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너의 상처 입은 마음을 어루만져 주겠다고... 너의 영원한 울타리가 되어 주겠다고 말이야.

어느덧 자라 이제 곧 성인이 되는 내 딸이 힘들때면 너의 뒤에서 너를 감싸안고 위로해줄거야!

사랑한다. 내 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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