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밤' (세 번째 동시)

by 산들바람

밤은 예쁘다.

반짝반짝 별이 달려있는

보라색 망토를 걸치고 있다.

보라색 나무에 매달려 있는 작은 별조각 같다.


온 세상을 덮은 포도주 같다.


딸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 8월쯤 썼던 글이다.

어느 날 밤, 잠을 자려고 누웠는데 그날따라 잠이 오지 않더란다.

그러던 중 열린 창문 밖으로 밤하늘을 유심히 살펴보았단다.

밤하늘은 단순히 까맣다고만 생각했는데 그날 가만히 바라본 밤하늘엔 짙은 보랏빛이 엿보이는 신비로움 가득한 세상이었다.

서울의 탁한 하늘에 드문드문 빛나는 별마저도 넓은 망토자락에 박힌 문양인 듯싶을 정도다.


차라리 온 하늘에 포도주를 쏟아놓은 듯하단다.

잠이 오지 않는 그 시간 창문밖으로 내다본 어둠과의 교감 아이가 그 순간 느낀 온 세상이었으며 전부였을지도 모른다.


나도 어린 시절 가만히 밤하늘을 올려다보다 정신을 온통 다 빼앗긴 기억이 있다.

지금보다 훨씬 반짝이는 별이 많았던 내 어린 시절의 밤하늘을 오래도록 바라보다 신비로운 기운에 그대로 몸이 빨려 들어갈 것만 같았던 때도 있었다.

이젠, 사는 게 바쁜 건지 내가 여유가 없는 건지 별 볼 일 없는 도시의 밤하늘을 오래도록 바라본 기억이 아주 먼 오래다.

오늘은 단 몇 분이라도 어릴 적 기억처럼 밤하늘을 가만히 느껴볼 요량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