쫓기듯 그곳을 떠나왔다.

by 산들바람

사건 가해자들의 처벌이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모두 촉법소년인지라 형사상 처벌은 유야무야 되고 말았다. 그나마 학폭위에 오르며 처벌을 받긴 했지만 대부분 사과문과 정학처분 일주일 등이 최고 수위의 처벌이다.

각 학교에 다니는 가해학생들의 사과문은 형식적인 것에 불과했다. 어떤 학교에서는 사과문의 틀을 미리 만들어서 빈칸을 채우는 형식이었는데 예를 들어 '나( )는 (발을 걸어 넘어뜨려서) ( )에게 사과합니다' 이런 식이다.

학교에서는 학생들이 진정으로 피해자에게 사과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하고 마는 것이고, 양심의 무게를 한결 덜어주는 그 사과문을 작성하며 피해자의 심정을 감히 견주어 볼 수 있었을까?

그런 사과문은 더욱 기분을 상하게 한다.

직접 작성한 편지 중엔 진심으로 사과하는 듯한 내용으로 인해 깜빡 속을 뻔한 글도 있었지만 그들의 2차 가해는 계속되고 있었고 우리 가족은 평범한 자유와 일상을 잃어버린 날들이 계속되고 있다.


우리는 결국 이곳을 떠나야겠다.

마음껏 숨 쉬고 동네 한 바퀴를 돌아다닐 수도 없는 이 짓을 언제까지 하란 말인가... 아직 어린 딸아이에게는 너무나 가혹한 형벌일 수밖에 없는 것을...

당연한 일상을 되찾고 싶었다.


'나도 교복 입고 학교 다니고 싶어...'


아이의 한 마디에 가슴이 무너져 내리듯 한다.

우리가 이사 오기 전 동네, 같은 서울이지만 끝에서 끝으로의 이동이다. 아이가 이전 살던 친구들에게 지금까지 일어난 사건들에 대해 이야기하자 모두들 그런 이상한 동네 있지 말고 얼른 전학 오면 안 되느냐 했단다.

결국 부동산에 가서 집을 알아보았는데 꽤 학군이 좋은 지역이라 내년 3월 새 학년 전엔 이사가 힘들단다. 하지만 3월, 새 학년을 시작하고 며칠 지나서라도 이사를 하겠다고 했다. 하루라도 공포스러운 이곳을 벗어나고 싶었기 때문이다.

다른 세 명의 아이들에게는 너무도 미안하지만 고통받는 동생과 누나, 언니를 위해 싫은 내색 한 번 하지 않으니 얼마나 고마운 일일까...

하지만 이사를 가더라도 친구들이 다니는 학교로 배정받을 수 있을는지도 미지수이다. 워낙 과밀학군이라 2월 초부터 빈자리를 알아보았어도 자리가 없다는 연락을 받았기 때문이다.


아파트 앞 정들었던 산책로를 쳐다보니 가슴 한편이 뻥 뚫린 듯하다.

왜가리가 유유히 노닐고, 가을이면 청둥오리들이 터를 잡고 새끼를 낳아 엄마 오리를 따라 자맥질하던 정겹던 산책로... 다른 이들은 아무 일 없는 듯 웃고 이야기하며 그 길을 걷는데 왜 우리에겐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한 없이 평화로운 이곳과는 달리 왜 우리 아이에겐 이런 비극이 연달아 일어나야 했을까...

우린 여기서 오래오래 살겠다고 했었는데... 이년 반을 살다 말고 우리가 떠나왔던 그곳으로 쫓기듯 다시 돌아가야 한다.

다행히 중학교 3학년인 큰 아들은 빈자리가 많이 남아 있었다. 이쯤 되면 외국으로 유학을 가는 학생들이 많기 때문이란다. 셋째는 특수반이 있어야만 하는데 다른 학교에 배정된 것을 교육청에 탄원서를 제출해 같은 형제자매가 다닐 수 있도록 선처한 것이 받아들여져 같은 학교 1학년 특수반에 배정될 수 있었지만 이번 이사의 주인공인 둘째 아이는 아직 학교에 가지 못하고 집에만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마음대로 길을 걸을 수 있고, 옛 친구들을 만나 재잘대며 떡볶이도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 무서운 아이들이 혹시라도 소문을 듣고 이곳까지 찾아와 보복을 하는 것은 아닌지 아이도 가족들도 걱정이 많다. 이사 온 지 몇 날 안되어 협박성 문자가 또 전송되었기 때문이다.

딸아이의 옛 친구들은 우리가 지켜주겠다고 한단다.


이삿짐센터에 짐 내리는 것을 지켜보는 것은 팽개치고 무작정 교육청부터 찾아가 사정을 이야기하자 편의를 봐주고는 싶지만 학교 배정을 기다리는 다른 학생들도 있는데 특혜를 줄 수는 없으니 매일매일 하루에 몇 번씩 빈자리가 났는지 전화를 해 보라는 이야기만 한다.

며칠이 지나 학교에 직접 찾아가 읍소하니 위장전입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실사를 하겠다며 나와 함께 집으로 와서 확인과정을 거쳤다. 다시 학교에 가서 여러 서류를 작성한 후 집으로 가려는데 교문 밖까지 배웅하며 힌트를 주신다.


'어머니, 20분쯤 지나 교육청에 전화 한 번 해 보세요!! 저는 이 말씀만 드릴 수 있어요'


그쯤 지나 교육청에 전화를 하자 두 자리 중 한 자리가 우리 아이 차지가 되었다. 관련 서류를 빨리 제출하지 않으면 무효가 되니 정신없이 서류를 팩스로 제출하자 교육청 직원에게 전화가 온다.


'어머니, 어떻게 알고 딱 그 시간에 전화 주셨어요... 어머니 전화 오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었는데 정말 다행이에요!!!'


다행히 아이는 초등학교 때 같은 학교에 다니던 친구들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거의 반년 동안 가지 못하던 학교를 소원대로 교복을 입고 내일부터 등교할 수 있게 되었다.

학교에 우리 딸이 전학 온다는 사실이 온 교내에 퍼졌는가 보다. 워낙 딸아이는 유명인사였었다.

사춘기가 오기 전 똘똘하고 활기롭던 그 아이는 다른 부모들도 어떻게 자랐는지 궁금해하던 아이였다.

첫 등교 하던 날 복도에 난 창으로 학생들이 새카맣게 모여 구경이 한창이고, 반 아이들도 아이 옆에 붙어 서서 말을 거느라 야단들이었단다.


글을 작성하며 아직도 보관하고 있던 서류봉투 안의 내용물을 꺼내본다.

그곳에서 일어났던 많은 사건들의 증거자료들, 내 외상 진단서들과 학교폭력 위원회에서 수령한 여러 건의 조치결정 통보서, 가해자들의 사과문, 민사소송 계약서 등....

그중 눈길을 끄는 건 어느 가해학생 아버지의 사과문이었다.

한때는 아이의 탄생이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빛나던 순간이었고, 가장 행복을 주는 대상이었다고... 그런데 이러한 끔찍한 폭행 가해자가 된 것에 대해 너무도 죄송스럽다는 글이었다.

그래... 자식..... 내 마음대로, 내 생각대로 잘 안 되는 게 자식 마음이더라...

나도 고분고분한 길을 가지 않은 자식을 길러본 사람이어서 그 심정을 어느 정도 이해는 하겠지만 타인에게 고의적이고 가학적인 피해를 주는 행위는 결코 합리화되면 안 된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지 않은가...

그래서 결국, 우리는 가족은 어마어마한 피해를 입었고, 원치 않은 이사까지 해야 했다.

내 딸의 행복해야 할 인생 한 부분은 그렇게 삭제되고 짓밟히고 말았으니 그 아버지의 손을 기꺼이 잡아 줄 수 없는 내 옹졸함, 아니 공포감을 부디 이해해 주시기를 바랄 뿐이다.


과연 상처 많던 우리 아이는 이곳에서 잘 지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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