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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들바람 Dec 05. 2023

그와 나의 뜨거운 혁명

내가 그를 처음 만난 건 새로 옮긴 교회에서다.

항상 하얀 케인을 짚고 다니거나 누군가의 팔꿈치를 잡고 다니던 그는 시각장애인이었다.

가끔 교회에서 만나면 가볍게 웃으며 인사를 나눌 정도의 관계였을 뿐이다.


그러던 어느 날 그의 샵에서 파트타임으로 아르바이트할 사람을 구한다며 아는 사람이 있으면 소개해 달라는 연락을 받았고, 그간 여러 사람들이 물어보긴 했지만 막상 두 달이 지나도록 일할 사람을 구하지 못했다고 했다.

처음 사람을 구한다던 때는 나와 전혀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간 나는 시간이 비었고, 오후 두 시까지의 일이라 시간을 활용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선뜻 내가 일을 해 보겠다며 생각지도 않았던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일에서만큼은 까칠하고, 정확한 그 남자는 배려할 줄 도, 다른 이들을 웃게 할 줄도, 다른 이가 그를 함부로 대하지 않게 하는 단호함도, 모든 일에 있어 능숙함도 순수함도 공존하는...

내가 어렴풋이 가졌던 장애인에 대한 미지와 무지의 편견을 버리는데 충분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어느 날부턴가 그 사람이 남자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물론 그 역시 나를 마음에 두고 있음이 분명히 느껴질 만큼 선명했다.


날이 갈수록 그와 나는 점점 더 애틋해졌고, 둘이서 산책을 하거나 연극을 보는 등 함께 하는 둘만의 시간이 잦아졌지만 결코 서로의 속마음을 말하지는 못했다.

그는 각자의 처한 상황과 자신의 장애 때문에 그의 마음을 애써 누르며 절제하고 있었고, 나는 그가 마음껏 다가오기를 원했지만 절대로 나에게 더 가까이 다가오지 않으리라 작정한 것처럼, 나에게서 멀어지려는듯 의식적으로 안간힘을 쓸 때면 나는 혼자 길을 걸으면서도 바보처럼 울곤 했다.


그의 눈이 되어주고 싶었지만 그것은 동정도 연민도 아닌 오롯한 사랑이었다.

이전에 사귀던 이성과의 감정과는 확연히 달랐다.

그를 위해서라면 내 인생을 다 걸어도 좋다는 확신이 들었다.

출근 후 조용한 공간에서 무릎을 꿇고 간절히 하는 기도는 일상이 되어버렸다.

'하나님, 저 사람 저한테 주세요.....'


몇 달이 지나던 어느 날 조개처럼 입을 꽉 다문 그를 뒤에서 살포시 안아주었다.

내 손을 포개어 잡는 그의 손은 크고 따뜻했다.

불현듯 돌아서 나를 안는 그에게서 나를 놓치지 않겠다는 굳은 결단이 느껴진다.

가만히 내려앉은 그의 뺨과 입술은 보드랍고, 뜨겁다 못해 고귀한 생기마저 가득 느껴져 차라리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다.  


누군가에게 나의 깊은 마음을 모두 꺼내어주며 사랑해 본 적이 없었던 나는 이제 막 첫사랑을 시작한 풋풋한 소녀처럼 구름 위에 떠 있는 듯 하루하루가 너무나 행복하다.

아... 서로가 진심을 다 하여 가득 사랑하는 마음은 이토록 애틋한 것이구나..

다른 이들이 왜 그리 함께 있지 못해 안달하며 부모님께 허락을 구하지도 않고 급하게 살림을 차리는 것인지 도통 이해 할 수 없던 일들이 이해가 되는 순간들이었다.

그 또한 나를 데리고 어디라도 도망가고 싶을 만큼 뜨거운 가슴을 느끼고 있다는 고백을 했다.


나는 나의 눈으로 사랑스러운 그를 담을 수 있지만 그는 나를 볼 수 없기에 온기 가득한 두 손으로 내 얼굴을 가만가만 쓰다듬어 본다.

눈을 떠 그를 느끼는 나보다 더 소중히, 더 자세히, 눈, 코, 입술의 주름 하나하나까지 세어보는 듯 조심스러운 손끝의 예민한 촉각을 곤두세워 그의 가슴에 나를 소중히 담는다.

그러나... 내 얼굴을 한 번이라도 볼 수 있다면 좋겠다며 절절한 울음을 터뜨리고 이내 나도 울어버리고 만다.


그에게 많은 세상을 보여주고 싶어 손을 잡아끌어 이곳저곳을 향한다.

공중에 있어 만져 볼 수 없는 풍경을 설명하고 손에 닿는 것은 그를 끌어 느껴보게 한다.

세상에 나열되어 있는 수 없는 사물과 상황이 지극히도 주관적인 나의 언어와 행동으로 그에게 이입된다는 것이 때로는 막중한 책임감도, 신기함도 느껴진다.   

우리는 약속했다.

우리나라에 있는 모든 산과 공원을 다 둘러보자며...


언젠가는 그와 함께 떠난 목포의 외딴섬인 외달도에서 '교회'라고  허름한 시골집을 보았다.

당장이라도 부서질듯한 낡은 철문을 열고 들어가니 가정집처럼 마당과 창고가 자리해 있다.

현관문인 듯 한 손잡이를 당겨보니 쉽게 문이 열리고 이 작은 섬에서는 아무도 오지 않을 것 같은 조용한 예배당이 자리해 있다.

둘은 예배당 앞자리에 앉아 고개를 숙이고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어깨를 들썩이며 소리 내어 엉엉 었다.

그러고는 누르면 다시는 올라오지 않는 건반이 몇 개나 되는 낡은 풍금 의자에 앉아 그는 울면서 찬송가를 연주했고, 나는 옆에 앉아 작은 소리로 겨우겨우 찬송가를 따라 불렀다.

파도가 연신 하얀 거품을 만들어내며 철썩거리는 소리에도 둘은 울며 걷는다.

낙엽이 가득한 공원길을 자박자박 걸으며 인적 없는 벤치에 앉아 입을 맞추는 우리는 이제 막 연애를 시작한 뜨거운 연인이다.  


어느 날 그는 그의 부모님이 함께 앉아 계신 자리에서 우리 부모 앞에 무릎을 꿇고 간절히 허락을 구한다.

비록 눈은 멀어 한 치 앞도 볼 수 없지만 양가 부모님들 실망시키지 않고 나에게 믿음을 주며 최선을 다 해 열심히 살아가겠노라 하는 고백은 마치 자신에게 하는 다짐인 듯하다.

다른이에게는 결코 눈물을 보이지 않을 것 같던 그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리며 눈이 벌게져 금방이라도 눈물 방울이 흘러내릴 듯하다.


나를 만난 얼마 동안은 그도 나도 아주 울보가 되었나 보다.


결국 불같이 뜨거운 우리를 아무도 막을 수 없었고, 우리는 4월 19일.

우리 둘만의 혁명을 일으켰다.


함께 살아오는 동안 많은 일들이 우릴 할퀴고 지나갔고, 사랑하며 이겨나갔다.

그래도 대부분은 어떻게든 웃는 날이 더 많았다.


우리의 뜨겁던 혁명은 꽤나 성공적이었던지 2남 2녀의 아이들이 우리 둘의 사랑을 먹으며 이 모양 저 모양대로 잘 자라고 있다.


앞으로도 우리 앞에 다가올 수 없이 많은 인생의 염려와 고난 앞에서도 담대할 줄 알며 또한 우리를 찾아올 작은 행복도 벅찬 기쁨으로 함께 웃으며 맞이할 수 있도록...


우리가 그토록 간절한 마음으로 잡았던 뜨거운 두 손을 영원히 놓지 않기를......


연재일인 어제 글을 올렸으나 제가 설정을 잘못하는 바람에 연재가 안되었다는 안내를 받고 기존 글은 삭제 후 같은 글을 다시 올립니다...


이런 실수 하시는 작가님들도 계신지요...

저는 참 바보인가봅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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