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과 마주친 적 있나요?
같이 살면서도 의식하지 못한다
“어느 날 운명이 찾아와 / 나에게 말을 붙이고 / 내가 네 운명이란다, 그동안 / 내가 마음에 들었니, 라고 묻는다면 / 나는 조용히 그를 끌어안고 / 오래 있을거야, (---) ”
< 서시 / 한강 >
사람들은 그림자와 함께 살면서도 그림자를 의식하지 못한다. 멈춰 서서 차분히 내려다보아야 한다. 우리는 운명과 함께 살고 있으면서도 운명을 의식하지 못한다. 너무 바빠서일까 아니, 회피하기 때문이다. 한강 작품은 운명처럼 어느 날 우리를 찾아왔다.
십여 년 전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를 처음 접했을 때, 차분히 책장을 넘길 수 없었다. 1980년, 그 끔찍했던 기억들이 되살아나 고통스러웠기 때문이다. “어떻게 벌써 분수대에서 물이 나옵니까. 무슨 축제라고 물이 나옵니까. 얼마나 됐다고, 어떻게 벌써 그럴 수 있습니까. (69쪽)”. 일곱 대의 뺨을 맞고 피를 흘렸던 열아홉 살 소녀의 절규다.
한강 작가가 노벨상을 받았다는 소식을 듣고 다시 책을 펼쳤다. 그러나 참사 현장을 보는 듯 너무 리얼한 기록들 ᆢ.한강 작가는 <소년이 온다>를 쓰면서 하루도 눈물 흘리지 않은 날이 없었다고 말했다. 명작은 읽는 고통을 통해 완성된다. “(---) // 떨리는 두 손을 얹을거야. / 거기, / 당신의 뺨에, / 얼룩진. < 서시 / 한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