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낭송하며 맨발로 걸으며 '당신'을 만난다
“하루 종일 나는 당신 생각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나는 당신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이 길은 끝이 있습니까 죽음 속에 우리는 허리까지 잠겨 있습니다 나도 당신도 두렵기만 합니다 이 길은 끝이 있습니까 ----”
< 거울 / 이성복 >
오래전 일이다. 무등산 장원봉을 오르다 깻재에서 잠깐 숨을 고르고 있을 때, 그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비쩍 마른 몸매, 수심이 가득한 주름진 얼굴의 그가 갑자기 말을 건넸다. ‘하루 두어 시간씩 매일 무등산을 오르내린다. 우울증을 앓은 지 오래되었다. 그래서 그냥 누구에게나 이렇게 말을 붙인다.’ 혼잣말처럼 늘어놓는다. 50대 초반에 실업자가 되어 8년째 직장을 못 구했단다.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이 무얼까. 사업 실패로 우울증을 겪다 재기한 사업가 친구 얘기가 생각났다. ‘거울을 가지고 다녀라. 자주 얼굴을 비쳐 보며 웃어보라.’라고 말해주었다. 그 이후 나도 가끔 스마트 폰 카메라에 내 얼굴을 비쳐 본다. 잘 웃지 않는 노인이 나타난다.
오늘은 <거울> 시를 암송하며, 폰 거울이 아닌 ‘마음속 거울’에 나를 비쳐 본다. 누군가는 ‘지울 수 없는 당신은 운명’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나에게 ‘당신’은 ‘마음속 거울에 비친 나의 얼굴’이다. 맨발로 걸으며 마음속 ‘당신’을 만난다. “(----) 하루 종일 나는 당신 생각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거울처럼 당신은 나를 보고 계십니다 < 거울 / 이성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