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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발 걸으며 시 읽는 이유

마음의 병은 물론 몸의 병까지 어루만지는 힘

by 현동 김종남

“심심하고 심심해서 / 왜 사는지 모르겠을 때도 / 위로받기 위해 시를 읽는다. // 등 따숩고 배불러 / 정신이 돼지처럼 무디어 있을 때 / 시의 가시에 찔려 / 정신이 번쩍 나고 싶어 시를 읽는다. (---) ”

< 시를 읽는다 / 박완서 >


살다 보면 시를 읽어야 할 때가 많다. <<한 말씀만 하소서>>를 쓴 소설가 박완서(1931~2011)는 ‘왜 사는지 모르겠을 때, 정신이 돼지처럼 무디어 있을 때’ 시를 읽는다고 말한다. 우리는 언제 시를 읽는가? 시는 외롭고 삶에 지쳐 힘들 때 마음의 병을 치유해주는 명침이나 명약이 된다. 더 나가 몸의 병까지 어루만지는 힘을 지녔다.


얼마 전, 200편이 넘는 시를 암송하는 한 시 암송가에게 물었다. 어떻게 그렇게 많은 시를 외울 수 있었느냐고. 그는 10여 년 전 큰 수술을 받고 급격히 떨어진 기억력을 되살리기 위해 시를 암송하기 시작했다고 했다. 처음에는 시 한 편 외우는 데 보름이 걸렸지만, 지금은 하루에 한 편을 외울 수도 있다고 한다. 덕분에 불면증도 줄었다고 했다.

미당 서정주 선생은 말년에 하루아침에 1천 개씩 산 이름을 외었다. 기억력을 잃지 않기 위해서였다. 나는 몇 개나 시를 암송할 수 있나. 음식을 잘 소화하지 못하는 사람은 먹는 양도 줄여야 한다. 일주일에 한 편씩 외울 시를 고른다. 맨발로 걸으며 시를 외운다. 토막토막 생각나는 만큼 시를 읽는다.


“꽃피고 낙엽 지는 걸 / 되풀이해서 봐온 햇수를 생각하고 / 이제 죽어도 여한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 내년에 뿌릴 꽃씨를 받는 내가 / 측은해서 시를 읽는다. < 시를 읽는다 / 박완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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