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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일생을 한 글자로 쓰라면

우리가 남길 것은 이름뿐이다

by 현동 김종남

“상형문자다 // 장대비가 일궈놓고 간 땡볕 / 한 마지기의 고요 / 속에 달팽이 한 마리가 / 그어놓은 필생의 일 획 (---) ” < 일생은 / 복효근 >


처음 한자를 배울 때, 해(日), 달(月), 사람(人), 나무(木)처럼 사물 생김새를 본떠 만든 상형문자(象刑文字)는 재미있었다. 18획이나 되는 ‘거북 귀(龜)’자도 거북 형상을 떠올리면 자연스럽게 외워졌다. 뜻과 뜻을 합쳐 새 뜻을 만든 회의문자(會意文字)는 더 재미있다. 해와 달을 합치면 밝을 명(明), 사람과 나무가 합쳐지면 쉴 휴(休).


‘달팽이 한 마리가 그어놓은 필생의 일 획’처럼, 내 일생의 일 획은 무엇일까. ‘호랑이는 죽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라는 말처럼, 우리가 남길 것은 이름뿐이다. 40대 들어 현동(玄童)이란 새로운 이름을 얻었다. ‘먹 잉크의 동자(童子)가 되라’며 스승님이 지어주신 호(號)이다. 내 일생 한 글자는 ‘아이 동(童)’자일 것 같다.

어리석은 아이처럼 간절히 묻고, 항상 배우고, 배운 것을 몸으로 실천하며 살고 있는가. 맨발로 흙길을 걸으며 마음속 동자에게 되풀이 묻는다.

“ 달팽이가 사라진 그 자리에 / 그것의 발음기호, 짧은 새소리 // 내일도 해는 뜰 것이다 < 일생은 / 복효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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