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겨웠던 오늘이 아름다운 꿈으로 변한다
“삼십 대에는 / 마흔이 무서웠다 / 마흔이 되면 세상 끝나는 줄 알았다 / 이윽고 마흔이 되었고 난 슬프게 멀쩡했다 / 쉰이 되니 / 그때가 그리 아름다운 나이였다. // (---) ”
< 그때는 그때의 아름다움을 모른다 / 박우현 >
삼십 대 때 나는 ‘무지개 꿈’을 가졌었다. ‘세상 책 다 읽어보고, 세상을 다 돌아보고, 세상 사람을 다 만나보고 싶다.’ 물론, 송나라 대문호 구양수(歐陽修)의 3대 소원을 베낀 것이다. 열심히 세상을 돌아다녔다. 많은 사람을 만났다. 마흔이 되니 무지개는 사라졌으나 세상은 끝나지 않았다. 대신 열심히 산 세월은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았다.
그런데 우리는 왜 오늘을 추억처럼 즐기지 못할까? 아무리 오늘이 무료하고 고달플지라도 몇 년 지나면 다 추억이 될 텐데. 언론인 김성우는 <<세계의 문학기행>>, <<세계의 미술기행>>등을 쓰며 일찌감치 꿈을 실현해 보였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먼 것은 아름답다. (---) 추억이 아름다운 것은 자꾸만 멀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꿈속에 살아왔던가.”
정말 그렇다. 꿈이 때로는 추억보다 아름답다. 심지어 고통스럽고 힘겨웠던 기억마저도 꿈꾸듯 돌이켜보면 노생지몽(盧生之夢)이 된다. 오늘은 꿈꾸듯 숨 쉬며, 맨발로 걷는다.
“예순이 되니 쉰이 그러리라 / 일흔이 되면 예순이 그러리라. // 죽음 앞에서 / 모든 그때는 절정이다 // 모든 나이는 아름답다 / 다만 그때는 그때의 아름다움을 모를 뿐이다. < 그때는 그때의 아름다움을 모른다 / 박우현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