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쌓인 겨울 길속에도 봄여름은 숨어있다
“새들은 저희들끼리 하늘에 길을 만들고 / 물고기는 너른 바다에서도 길을 잃지 않는데 / 사람들은 길을 두고 길 아닌 길을 가기도 하고 / 길이 있어도 가지 못하는 길이 있다. / 산도 길이고 물도 길인데 / 산과 산 물과 물이 서로 돌아누워 / (---) ”
< 금강산은 길을 묻지 않는다 / 이근배 >
1999년 2월 초 금강산에 갔었다. 남북 화해 바람으로 금강산 길이 열려 있을 때였다. 북측 안내원 김연실은 이렇게 말했다. “돌아가서 금강산을 보았다고 하지 말라, 당신은 겨울의 금강산, 개골산만 본 것이다.” 듣고 보니 금강산은 계절 따라 금강(봄), 봉래(여름), 풍악(가을), 개골(겨울) 등 4개의 이름을 품은 산이었다.
그 말대로라면 난 아직 금강산을 보지 못했다. 구룡폭포마저 꽁꽁 얼어붙은 개골산(皆骨山)만 보았을 뿐이다. 물소리는 사라지고 바람 소리만 가득한 개골산은 나무들마저 앙상하게 뼈를 드러낸 침묵의 일만 이천 봉우리였다. 인생길도 마찬가지다. 길이 있다고 다 가 볼 순 없다. 비 오는 날 태어난 하루살이는 비 오는 길만 보다 끝난다.
그러나, 겨울 길만 걸었다고 겨울 인생이라 말할 수 있을까. 길 없는 사막에도 오아시스는 있고, 눈 쌓인 겨울 길 속에도 봄여름은 숨어 있다. 아파트 안 흙길을 걸으며 묻는다. 지금 난 사는 길을 걷고 있는가.
“그렇구나 / 금강산이 일러주는 길은 하나 / 한 핏줄 칭칭 동여매는 이길 두고 / 우리는 너무도 먼 길을 돌아왔구나 / (---) / 우리가 사는 길 여기 있는데 / 어디서 왔느냐고 어디로 가느냐고 / 이제 금강산은 길을 묻지 않는다 / 길을 묻지 않는다 길을 묻지 않는다 (---) < 금강산은 길을 묻지 않는다 / 이근배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