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죽은 자가 우릴 구한다

그 질문에 확실하게 답할수 있다

by 현동 김종남

“청산은 먹이 없어도 만고의 병풍을 그리고 (靑山不墨萬古屛)

유수는 줄이 없어도 천년의 거문고로다 (流水無絃千年琴) ”

< 당송대 선시 (唐宋代 禪詩) >


무등산은 광주의 청산이다. 먹 한 점 없이 그린 병풍으로 천년만년 광주를 품고, 새벽마다 황금빛을 퍼트려 빛고을을 깨운다. 영산강은 광주의 유수다. 거문고 줄 하나 없이 들녘을 울리고 춤추게 한다. 무등 청산과 영산 유수는 충장공과 금남공을 낳아 국난을 물리치게 했고, 오늘에 이르러 작가 한 강을 낳아 노벨 문학상을 품에 안게 했다.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 작가 한 강이 2024년 12월 7일 노벨문학상 수상 강연에서 던진 질문이다. 청산 유수와 더불어 5·18을 겪은 우리는 그 질문에 확실하게 답할 수 있다. 한 강이 말했듯, 인간은 폭력적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존엄하고 연대할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바탈재를 맨발로 걸어 내려온다. ‘무등 청산은 만고의 병풍, 영산 유수는 천년의 거문고.’ 무등산이 그려낸 만고의 병풍 속을 걷는다. 낙엽을 떨어뜨리는 바람이 거문고처럼 소리친다. 거친 흙길에 발바닥이 따끔따끔하다. 고통 속에서 기쁨이 다시 솟는다. “청산은 먹이 없어도 만고의 병풍을 그리고 / 유수는 줄이 없어도 천년의 거문고로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인생은 답이 없는 질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