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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케터로 시작해서, 서비스 기획자가 되기까지①

어쩌다 보니 서비스 기획자가 되었습니다

by 앨리

1. 대학교 시절, 나의 목표 마케터

학교에 다니는 내내 내가 꿈꿨던 직무는 ‘마케터’였다. 이유는 단순했다. 사용자와 가까이에서 소통하는 것이 좋았고, 내가 만든 브랜드가 성장하는 과정이 가치 있게 느껴졌다.


그중에서도 브랜드 마케터와 그로스 마케터라는 두 가지 역할에 끌렸다. 브랜드 마케터는 회사나 브랜드의 가치를 알리기 위해 톤앤매너를 설정하고, 핵심 메시지를 수립하며, 온라인·오프라인 행사를 기획해 고객에게 브랜드에 대한 호감을 심어주는 일이다. 반면, 그로스 마케터는 데이터를 기반으로 비즈니스의 북극성 지표를 발굴하고, 가설-실험-검증을 반복해 제품의 성장을 직접적으로 이끄는 역할이다. 나는 이 두 가지 모두가 매력적으로 느껴졌고, 그렇게 마케터가 되겠다는 꿈 하나만 품고 대학 4년을 달려왔다.



2. 부족한 준비 , 현실의 벽

학기 중에는 공항철도 홍보·마케팅 서포터즈 활동을 했고, 디지털 마케팅 에이전시에서 인턴을 하며 경험을 쌓았다. 관련 콘퍼런스와 커뮤니티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꿈을 키웠다. 그 과정에서 좋은 성과도 있었고, 관련 전공에서도 상위권 성적을 유지했기에 ‘나는 마케팅에 소질이 있구나!’라고 자신했다.


취업 준비도 철저히 했다. 필요한 어학 점수를 취득하고, 마케팅 콘텐츠 시안을 만들었으며, 브랜드 마케팅에 활용할 수 있을 것 같아 프리미어, 포토샵, 일러스트 자격증까지 따두었다. 하지만 현실은 예상과 달랐다.

졸업과 동시에 코로나가 터졌고, 취업 시장은 급격히 얼어붙었다. 내 나름대로 열심히 준비했지만, 마케팅 직무로의 취업은 쉽지 않았다. 내가 쌓아온 경험들이 상대적으로 작아 보였고, 무엇보다 그 좁은 취업 문을 뚫을 만큼의 스펙과 능력이 부족했다.


SPC, 동원, 삼양, 한샘… 번번이 최종 면접에서 탈락했다. 처음에는 담담하려 했지만 점점 자신감이 떨어졌고, 어느 순간 방 안에만 머무르게 되었다. 그간 쌓아온 토익, 토스, 성적, 자격증, 대외활동 경험들이 한순간에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아마 모든 취준생이 한 번쯤 겪는 감정일 테지만, 그때의 나는 세상이 나를 외면한 듯한 기분이었다.



3. 예상치 못한 기회?

그때, ‘프로다 청년 마케팅 실무 프로젝트’ 광고를 보게 되었다. Seed 투자를 받은 스타트업의 니즈를 기반으로 3개월간 실무 경험을 쌓을 수 있는 기회였다. 스타트업?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었지만, 경험 삼아 도전해보자는 마음으로 지원했고, 운 좋게 최종 선발되었다.


나는 9명의 팀원과 함께 동글(Dongle)이라는 동대문 직거래 플랫폼의 마케팅을 담당하게 되었다. 대표님들은 “일정 예산 내에서 하고 싶은 업무를 경험해 보고, 성과를 낼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부족한 상품 가짓수를 늘리기 위해 도매시장에 직접 나가 옷을 떼어 와서 촬영했고, 기획전을 진행하며 상세 페이지를 개선했다. Facebook과 Google Ads를 활용한 퍼포먼스 마케팅도 진행하며 데이터를 분석했다. 약 3개월 동안 밤을 새우고, 토론하고, 각자 원하는 업무를 맡아가며 유의미한 성과를 만들어 나갔다. 그 결과, 1차 발표에서 꼴찌였던 우리 팀이 프로젝트 종료 시점에는 1등을 차지했다.



4. 스타트업에서 시작된, 나의 첫 커리어

프로젝트가 끝난 후, 대표님이 직접 인터뷰를 요청하셨다. 떨리는 마음으로 회사를 방문했을 때, 갑자기 대표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선아님이 동글에서 함께해 주시면 좋겠어요.

개발자분들도 너무 마음에 들어 하시고, 저희도 선아님이 너무 좋습니다.”


이 말이 내게는 참 의미가 큰 말이었다. 이 날 집에 가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르겠다.

늘 내가 기업을 쫓아가고, 기업은 나를 외면하던 상황에서 처음으로 회사가 나를 원한다는 것이 너무도 행복했다. 게다가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회사에 대한 애정도 생긴 터라, 고민할 필요도 없이 바로 입사를 결정했다.


이 결정에 대해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의아해했다. 그리고 열 명 중 여덟 명은 이렇게 말했다.

“아직 취준 시작한 지 6개월도 안 됐잖아! 적어도 1년 이상은 해봐야 하지 않아? 너무 성급한 결정 같은데?”


하지만, 나는 확실하지 않은 미래를 위해 컴퓨터 앞에서 무작정 시간을 소모하고 싶지 않았다. 물론, 그 시간을 견디며 더 좋은 기회를 잡는 인내심이 있는 사람들도 있지만 나는 그런 인내심이 없는 편이었다. 그렇다면, 차라리 그 시간에 실제 업무를 경험하며 나만의 스토리를 만들어가는 것이 더 의미 있다고 생각했다.


모두가 원하는 대기업에 가고 싶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내가 준비한 것들이 남들보다 조금 부족하거나, 혹은 나를 충분히 어필하지 못했다는 현실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 현실 속에서 나만의 길을 선택한 것이다. 그렇게 나는 스타트업에서 마케터로 첫 커리어를 시작했다. 그리고 동글에서의 경험이 기획자로 커리어를 전향하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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