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보니 서비스 기획자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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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업에서의 시간은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지나갔다. 그리고 그만큼 다양한 업무를 경험할 수 있었다. 초기 스타트업이라 사람 한 명이 세 사람 몫의 역할을 해야 하고, 한 명 한 명이 회사의 핵심이 되는 곳이니 그럴 수 밖에 없는 환경이었다. 덕분에 나는 1년 차 주니어 마케터치고는 꽤 좋은 성과를 내고 있었다.
앱 설치 단가 iOS 35원, Android 25원
CTR 평균 4.8% 이상
인스타그램 계정 팔로워 100명 → 1,500명 급성장
클로젯쉐어, 차이페이 등과 프로모션 협업을 통해 빠르게 사용자 확보
그 외에도 기획전, 도매상 유입 프로모션, 상품 배래이션 확장 등으로 신규 사용자가 계속 증가했고 조금씩 사용자들 사이에서도 바이럴이 생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구매 전환율은 기대만큼 나오지 않았다.
내 머릿속엔 온통 이 생각뿐이었다. 헤비 쇼퍼로서의 내 경험, 사용자 인터뷰 결과 그리고 시장의 반응을 종합해 봐도, 우리 서비스는 충분한 경쟁력을 갖추고 있었다. 다소 예쁘지 않은 앱, 불친절한 도매상인의 정보를 감안하더라도 명확한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합리적인 가격 : 유통 마진을 없애 더 저렴한 가격 제공
빠른 배송 : 동대문 직배송으로 이틀 만에 수령 가능
명확한 고객층 : 가성비를 찾는 2030 소비자와 육아 비용을 절감하려는 엄마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매 전환율의 증가는 더뎠다. 도대체 왜일까?
마케팅이 사용자를 유입시키는 과정이라면, 그 영향력은 유입 이후에는 제한적이다.
사용자가 “Z사, A사의 상품을 유통 마진 없이 저렴하게 제공”이라는 키워드에 끌려 서비스에 들어왔다고 해서, 그 이후의 경험까지 마케팅이 책임질 수는 없었다.
그렇다. 서비스에 ‘머무르고’, 신뢰를 형성하게 만드는 것은 결국 서비스 자체의 역할이었다.
내가 아무리 멋진 카피를 내세우고, 파격적인 프로모션을 진행해도, 사용자가 서비스에 잠깐이라도 머물러 만족감을 느끼지 못하면, 결국 떠나버린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즉, 구매 전환율이 낮다는 건 단순한 인지도 문제가 아닌, 서비스에 대한 신뢰와 경험의 문제일 수도 있었다.
“이 플랫폼에서 구매해도 괜찮을까?”
“이 제품은 믿을 만한 걸까?”
“반품이나 환불은 어떻게 하지?”
이런 의문에 해답을 제공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마케팅을 잘해도 전환율을 높일 수 없을 것이라 판단했다.
도무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도대체 뭐가 문제인지, 그리고 그 문제를 어떻게 파악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어느 회사에서든 업무는 하면서 배우는 것이지만, 마케팅만 하던 내가 서비스를 직접 다룬다는 것 자체가 새로운 과제였다.
다행히도, 500 Korea에서 투자를 받았기 때문에 다양한 교육을 들을 기회가 생겼고, 이를 통해 서비스 고도화에 필요한 요소와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중 가장 중요한 요소는 ‘데이터’였다.
마침, 입사 초반부터 개발자분과 스터디를 하며 GTM(Google Tag Manager)을 익혔고, 원하는 곳에 이벤트를 심어 마케팅 관련 지표를 트래킹하고 있었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더 꼼꼼하게 사용자 행동을 추적하기로 했다. 뿐만 아니라, SQL 클라이언트를 활용해 사용자 데이터를 뽑아보며 나 혼자만의 고군분투를 시작했다.
마케팅을 할 때는 늘 “어떻게 홍보할까? 어떻게 유입을 늘릴까?”가 고민의 중심이었다. 하지만 서비스를 들여다 보고, 그 안에서 고객의 행동을 추적하는 순간부터 고민의 방향이 바뀌고 있었다.
“어떻게 해야 사용자가 이 플랫폼을 믿고 구매할까?”
“어떻게 하면 다시 찾도록 만들 수 있을까?”
그렇게 점차 서비스의 장점으로 사용자를 이끄는 것이 아닌, 사용자가 사비스를 지속해서 사용하게 하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었다.
여담이지만, 당시 같이 일했던 개발자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이런 말을 자주 들었다.
“앨리는 처음부터 천상 기획자였어. 난 그렇게 ‘왜?’라고 질문 많이 하는 사람 처음 봤다.
이 버튼은 왜 여기 있어요? 소셜 로그인은 왜 하나밖에 없어요? 이건 누가 봐도 기획자가 던지는 질문이지!”
그 말을 듣고 나서야 깨달았다. 그 때의 나는 마케터에서 기획자의 사고방식으로 변화하고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