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보니 서비스 기획자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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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처음 서비스 내부를 개선할 때, 구매 고객과 판매 고객 모두의 관점에서 ‘보다 이용하기 편리하다’는 느낌을 주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
1) 판매 고객 : 상품 상세 사이즈 정보
상품 상세 사상품 상세 페이지에서 구매 고객이 가장 많이 클릭하는 요소는 2개였다.
✔ 상세 사이즈 탭
✔ 상품 후기 탭
이 중, 공수를 적게 들이면서도 효과가 낼 수 있는 요소인 ‘상세 사이즈’ 정보를 개선하기로 결정했다.
이 문제는, 구매 고객과 판매 고객의 우선순위 차이에서 발생한 것이었다.
구매 고객에게 상세 사이즈는 매우 중요한 요소지만 판매 고객(특히 도매상)에게는 중요하지 않다. 판매 고객인 도매상의 특성 상 중요한 것은 이미지, 컬러, 디테일 설명이기 때문에 사이즈 정보는 우선순위에서 밀려날 수 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상세 사이즈 정보를 작성하도록 어떻게 유도할 수 있을까?
첫 번째, 상품 업로드 과정에서 ‘상세 사이즈 입력’ 필수화
상품을 업로드할 때, 상세 사이즈를 필수 입력 항목으로 지정했다. 또한, 선택한 카테고리에 따라 적절한 입력 폼을 제공하여 판매 고객이 쉽게 입력할 수 있도록 했다.
두 번째, 판매 고객에게 상세 사이즈 입력의 ‘이점’을 공지
Admin 전체 공지를 통해 판매 고객에게 '상세 사이즈 입력으로 더 많은 구매를 유도할 수 있습니다.' 메시지를 전달했습니다. 여기서 단순한 안내 문구가 아닌
✔ 실제 사용자의 클릭률
✔ 상세 사이즈를 제공하는 판매 고객의 구매율
을 함께 제공하여 데이터를 기반으로 설득하려고 했다.
간단하게 줄자로 측정해서 숫자만 제공되는 표에 넣으면 되기 때문에 걱정했던 만큼 부정적인 VOC는 거의 발생하지 않았다. 아마 편리한 입력 방식과 매출 증가라는 명확한 이점을 제공했기 때문인지, 도매상들도 이 작업을 크게 부담스럽게 느끼지 않았던 것 같다.
이 작업을 통해, 단순히 마케팅적인 접근이 아니라 서비스 내부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을 처음으로 경험할 수 있었다. 그리고 고객의 행동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단순한 요구가 아니라, 그들이 직접 ‘이점’을 체감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는 점을 배웠다.
2) 구매 고객 : 가격 표시 정책
구매 고객 VOC 등 정성적 데이터를 살펴보니, “가격 정보가 보기 불편하다”는 피드백이 지속적으로 쌓이고 있었다. 왜 불편할까? 너무 많은 가격과 할인 정보를 한 영역에서 제공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 시중가
• 동글가
• 시중가 대비 할인율
• 할인가
• 동글가 대비 할인율
물론, 타 커머스에서도 상태값 뱃지, 할인율, 금액, 프로모션 쿠폰 아이콘 등 다양한 정보가 노출된다. 하지만 동글에서의 가격 표시 정책이 유독 불편하게 느껴진 이유는, 이 모든 정보가 동일한 색상과 포맷으로 노출되어서였을 것이다.
나는 매일 이 서비스를 들여다보며 직접 기획하는 사람이기에 익숙했지만, 구매 고객의 시선에서는 오히려 정보가 과다해 혼란을 줄 수 있다는 점을 깨달았다. 이에 따라, 가격 표시 정책을 새롭게 정립했고, 그 결과 상품의 클릭률이 증가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가끔 서비스를 이용하다 보면,
“아, 그냥 맨 앞에서 바로 보여주지! 왜 꼭 클릭해서 들어가서 봐야 해?” 라는 생각을 자주 했었다.
나는 어떤 서비스를 사용 할 때마다 한 번에 많은 정보를 제공받기를 원했고, 추가적인 정보를 얻기 위해 별도의 액션을 요구하는 것이 불친절하다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이 경험을 통해, 정보를 많이 제공하는 것이 항상 좋은 것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모든 정보를 동일한 색상과 포맷으로 노출하면? 오히려 정보 과부하를 유발하고, 사용자가 어떤 정보를 가장 먼저 봐야 하는지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워진다. 결국, 핵심은 정보를 많이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사용자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정보를 직관적으로 전달하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이 작업을 마친 후, 나는 마케팅과 기획 중 어느 쪽으로 커리어를 쌓아갈지 깊이 고민하게 됐다. 생각 이상으로 모든 과정이 재미있었고, 그만큼 몰입도도 높았다. 대학교를 입학하던 시점부터 마케터 외에 다른 직업은 고려해 본 적이 없었기에, 이 상황 자체가 나에게는 다소 당황스러웠다.
마케터가 되기 위해 대학교 4년 동안 대외 활동, 자격증, 컨퍼런스 참여, 외부 교육을 참여하며 준비해왔다. 수많은 자소서를 쓰고, 면접을 보고 떨어지면서 실패도 경험하고 수 많은 딜레마도 경험했다. 마케팅 원론부터 시작해 관련된 책도 여러 권 읽었다. 그렇게 쌓아온 약 4년 반이라는 시간을 모두 뒤로하고 새로운 길을 선택하기엔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그 때, 아빠가 내게 이런 말을 해주었다.
“왜 마케터라는 직업을 하고 싶었는지 다시 생각해봐. 4년이 아까워서 버텼다가, 10년 뒤에는 즐겁지 않을 수도 있어. 10년 뒤에도 네가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직업을 선택해야 해.”
이 말을 듣고,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 고민하기 시작했다.
아빠의 말을 듣고, 나는 다시 한 번 “처음에 왜 마케터가 되고 싶었을까?”라는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 내가 마케팅이라는 직업을 선택했던 이유를 하나씩 정리해보기 시작했다.
1) ‘나’라는 사용자 유형
나는 귀찮음을 많이 느끼는 고객 중 한 명이다. 그렇지만 동시에 눈이 높고, 까다로운 고객이기도 하다.
그래서 뭔가 원하는 게 생기면 이런 생각이 먼저 떠올랐었다.
“내 입맛에 딱 맞는 서비스를 누가 대신 찾아주면 좋겠다... 이런 건 아직 없나?"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마다, 어느새 그런 서비스나 상품이 내 SNS, 내가 방문하는 웹사이트에 보이기 시작했다. 관련 콘텐츠를 많이 검색하고 소비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마케팅에 노출되었던 것이다.그리고 그때마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와, 진짜 안 살 수가 없네? 안 쓸 수가 없네? 어떻게 내 취향을 이렇게 잘 알지?”
이런 경험들이 쌓여, 막연하게 많은 사람들의 니즈에 맞는 상품을 딱 맞는 시점에 보여주는 직업을 생각하게 됐고, 그렇게 마케팅에 관심을 갖게 됐었다. 아마도 나는 서비스/상품과 고객을 ‘소개팅’해주는 주선자 같은 역할을 하고 싶었던 것 같다. 불특정 다수의 취향을 파악해서 딱 맞는 걸 소개해주는 일이 흥미롭게 느껴졌다.
2) 소통과 피드백을 즐기는 성향
나는 방법에 상관없이 타인과 소통하고, 생각을 교류하는 과정을 좋아했다. 그리고 타인의 피드백이 성장의 거름이 되고, 시야를 넓히는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해왔다.
마케팅을 공부하면서 가장 매력적이라고 느꼈던 부분 중 하나는, 내가 하는 일에 즉각적인 피드백이 보인다는 점이었다. 우리는 재미있는 광고나 파격적인 브랜드 콘텐츠를 서로 공유하고, 매력적인 프로모션이 뜨면 실시간으로 참여하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마케터는 예상치 못한 피드백을 받으며, 그에 맞춰 다음 전략을 수립하고, 더 나은 성과를 위해 끊임없이 개선해야 한다. 이런 빠른 실행과 반복적인 개선 과정이 나의 성향과 잘 맞는다고 느꼈다.
3) 창작과 분석, 두 가지를 모두 좋아했던 나
무엇보다도, 나는 새로운 것을 고민하고 적용하는 과정을 두려워하기보다는 오히려 즐겼다. 어떤 걸 창작하는 것에 흥미를 느꼈고, 재능도 있는 편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미술, 글쓰기를 좋아해 수상을 놓친 적이 없었다.
하지만 마케터는 단순히 ‘창의력’만으로 할 수 있는 직업이 아니었다. 내가 진행한 프로모션의 결과를 분석하고, 효과를 수치적으로 증명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나는 수학을 잘하는 편이었고, 수치적인 데이터를 다루거나 정리하는 일도 즐겼다.
즉, 단순한 감(感)만으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데이터를 기반으로 사용자의 반응을 분석하고 최적의 전략을 찾아가는 과정에 흥미를 많이 느꼈다.
4) 꼭 마케터여야만 하는가?
아니었다. 마케터로서의 고민과 경험들은 기획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었다. 짧은 기간 동안 마케팅과 기획을 모두 경험해본 결과, 나는 오히려 기획이 마케팅보다 더 직관적이고, 명확한 결과를 확인할 수 있는 분야라고 생각했다. 꼭 마케터가 아니어도 됐던 것이다.
1) 사용자의 이상형을 꿈꾸다
나는 마케터를 주선자라고 생각한다. A라는 서비스의 매력을 최대한 살리고, A가 가지고 있는 장점을 필요한 사용자에게 소개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주선자가 아니라, 직접 '소개팅의 대상’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소개팅을 받고, 연애를 할 때를 생각해보자. 나의 작은 행동이나 변화가 관계를 변화시키고, 상대방의 태도를 바꾸기도 한다. 나는 이 과정이 서비스를 고도화하고 개선하는 것과 닮아 있다고 느꼈다. 단지 버튼 하나를 개선했을 뿐인데, 이 작은 변화가 사용자 경험에 다양한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이런 것이 너무 매력적으로 다가왔고, 모든 사람이 다시 찾고 싶어지는 서비스를 만들고 싶어졌다.
바로, 모두의 이상형이 될 수 있는 서비스 말이다
2) 가까운 곳에서 발견한 나의 미래 사용자, 그리고 문제점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그렇다면 모든 사람이 다시 찾고 싶어지는 서비스는 뭘까? 에 도달했다.
내 입장에서 이건 너무나도 간단했다. 왜냐? 일상에서 ‘소개팅’에 실패하는 사례를 너무 많이 봤기 때문이다.
아무리 강력한 메시지로 유입을 늘려도, 서비스 자체가 기대를 충족하지 못해 사용자가 떠나는 것을 말이다.
나는 그래도 디지털에 익숙한 세대이기 때문에, 까다롭고 귀찮음을 많이 느껴도 툴툴거리면서 다른 서비스들을 찾아보며 시도해본다. 하지만, ‘사각지대’의 사용자들은 그러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우리 부모님은 누군가 ‘좋다!’라고 추천하면 그 서비스를 사용해보는데 특정 구간에서 어려움을 겪으면, 이를 거의 해결하지 못하고 불편한 경험만 남긴채 결국 아날로그 방식을 선택한다. 디지털 시대가 급격히 발전한 지난 10년 동안,이미 아날로그 방식이 익숙한 기성세대에게는 새로운 것들이 학습의 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이처럼 누군가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것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쉽게 넘기 어려운 문턱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3) 모두를 위한 서비스, 모두의 이상형, 이게 가능할까?
마케팅을 통해 아무리 유입을 늘려도, 결국 서비스에 접근하지 못하는 ‘사각지대’의 사용자들이 존재한다.
그렇다면, 그들까지 고려한 서비스라면?
그들마저도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는 서비스라면?
더 많은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머무르고, 진정한 의미의 ‘모두를 위한 서비스’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이 질문이, 내가 기획자로서 고민하고 싶은 가장 큰 화두가 되었다.
사실, 그들에게도 더 편리하고 다양한 삶을 경험할 수 있는 세상은 이미 열려 있다. 단지 그 문턱을 넘기가 쉽지 않을 뿐이다. 그렇다면, 나는 이 문턱을 낮출 수 있는 서비스를 만들자고 생각했다. 그게 모두에게 필요한 서비스, 모두에게 매력적인 서비스의 기본 조건이 될 수 있다 판단했다.
그리고 나는 기획자로서 목표를 세웠다.
"모든 이가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는 서비스"
아무리 혁신적인 기술이 등장해도 내가 접근할 수 없다면, 그것은 나에게 ‘필요 없는 기술’일 뿐이다.
첫 만남에서 호의적인 태도가 가장 좋은 매력인 것처럼, 서비스도 누구나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자 많은 사용자들을 머무르게 하는 핵심 요소가 될 수 있다고 확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