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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기쁨 Oct 20. 2022

센다이 대관음

도호쿠 -02

센다이 하면 선선하고 청량한 초겨울 감성이 떠오르곤 한다. 널찍한 대로변과 자연 친화적인 조형물들. 서두르지 않아 차분하면서도 세련된 센다이 사람들의 풍모는 그런 도시의 분위기와 어울렸는데, 오사카 사람들과 비교하면 그 차이가 확연히 느껴지는 듯했다. 

▲ 마츠시마와 엔츠인의 절경.


살면서 처음 먹어보는 규탄*우설(牛舌), 소 혀를 규탄이라고 한다. 규탄야끼 등으로 구워서 먹는 것이 일반적이다. 다른 부위에 비해 쫄깃함이 강하고, 감칠맛이 독특한 것이 특징이다. 도, 일본 3경 중 하나로 일컬어지는 마츠시마의 절경도 정말 인상 깊었지만, 무엇보다 기억에 남는 건 사람들과의 추억이다. 머무르게 된 게스트하우스의 주인장은 수더분하고 친화적인 성격의 소유자였다. 주인장과 스태프, 다른 투숙객들까지 모두가 함께 저녁을 먹고 노래방 기계가 딸린 바에서 음주·가무를 벌이는 데까지 걸린 시간이 짐을 풀고 나서 채 10분도 되지 않은 점만 보아도 알만하다. 


▲ 센다이 게스트하우스에서 보냈던 즐거운 밤.

여기서 처음으로 일본의 노래방을 접했는데, 한 곡 하라고 보채는 바람에 얼떨결에 마이크를 잡고 RADWIMPS – 아무것도 아니야 (なんでもないや)를 불렀지만, 결과는 대참사였다.


 구차하게 변론을 첨부하자면, 연습하지 않은 곡을, 취한 상태에서, 일본어로, 후리가나 없이 부르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다는 사실이다. 독자 여러분들도 경험해보신다면 내가 느꼈던 굴욕을 조금이나마 이해해 주실 수 있지 않을까 싶다. ㅠㅠ

다행히 청취자분들의 이해심이 깊었던 덕에, 무던한 호응으로 마무리됐다. 


이 일로, 어느 나라로 여행을 갈 생각이라면 그 나라의 유명한 노래 한 곡쯤은 연습해가는 게 좋다는 교훈을 얻게 되었다. 그렇다. 또 음주에 강하고 가무에 능한 민족이 한국인 아닌가. 기회가 된다면 그 실력을 유감없이 뽐내보자.


마침 2018년 11월 22일은 센다이가 속한 미야기현에 동방신기가 콘서트 투어를 오는 날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평상시보다 숙박료가 곱절로 뛰었고, 예약이 매진되었다. 별안간 널따란 게스트하우스가 북적였다. 20대 누나들부터 30대, 40대 아주머니들까지 연령대가 다양했다. 그녀들은 간만의 콘서트가 너무 기대된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동방신기에 관한 공부도 좀 해놓을 걸 그랬다. 그래도 외지에서 우리나라 그룹이 이토록 인기구나. 문화산업의 저력을 다시금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여행 초반 미야자키에서 만났던 우라노 씨와 재회했다. 어언 두 달 만이었다. 우라노 씨는 정말 여기까지 올 줄 몰랐다며 혀를 내두르는 시늉을 했다. 나는 지금껏 겪었던 이야기보따리를 하나둘 풀었다. 우리는 야키토리 집에서 맥주를 마시고 함께 온천에 몸을 담갔다. 이튿날은 주말이어서, 우라노 씨가 드라이브를 시켜주었다. 

▲ 미야자키에서 만났던 우라노 씨와 센다이에서 재회했다.

우리는 센다이 시내 어디에서든 볼 수 있는 대불상인 센다이 대관음상을 보러 갔다. 100m가 넘는 높이의 순백색 거상을 눈앞에 마주하고 있자면, 정말 이세계(異世界)에 온 것 같은 착각이 일어나는 듯했다. 


일각에선 불상의 자태가 주민들에게 위압감과 이질감을 수시로 주어서 철거 민원이 들어오기도 한단다. 그도 그럴 것이, 센다이에 처음 왔을 때도 어딜 가나 대관음상이 나를 지켜보는 것 같아 묘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경외감을 불러일으키는 대불의 웅장함은 여타 불상들과 비교를 할 수 없을 정도의 대단한 것이었다.


우라노 씨와의 재회는 마치 오랜 친구와 다시 만난 것처럼 가슴 벅찼다. 우리는 또 다음 만남을 기약하며 뜨거운 악수를 했다. 


 이젠 추위가 상당해서 팻말을 들고 프리허그를 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그렇지만 이제 센다이를 넘으면 대도시라곤 삿포로에 도착할 때까지 없을 것이기에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날씨가 추우면 마음의 문도 닫히고 마는 걸까. 아랫지방과 비교하면 확연히 다가와 주시는 분들이 적었다. 나중에 우라노 형님에게 들은 얘기지만, 사람들이 차갑다기보다는 쑥스러움을 많이들 타서 그런 걸 거라고 한다. 그래도 시간이 지나자 한두 명씩 다가와 주시기 시작했다. 어떤 할머니는 1000엔과 함께 응원해주셨다. 돈을 바라고 하는 일이 전혀 아닌데, 매번 돈을 주신다. 머쓱했지만 좋은데 쓰기로 마음먹었다. 

▲ 센다이에서의 프리허그.


그런데 일은 프리허그를 하고 나서 30분 뒤쯤 벌어졌다. 한 극우성향의 할아버지가 나를 경찰에 신고한 모양이다. 두 명의 조사관이 와서 내게 몇 가지 질문들과 함께 여권 제출을 요구했다. 억울한 마음이 앞섰다. 사사로운 이익이나 소란을 벌이기 위한 목적이 아닌데. 그러나 세상 대부분은 이해관계, 갈등, 경쟁구조로 얽혀있다. 인류애를 아무리 호소한들 다른 편의 시각으론 그저 소음공해에 불과할 수도 있다. 경찰관 두 명은 별다른 문제가 있어 보이진 않으나, 다른 이들에게 폐를 끼치는 것일 수 있으니 그만 마무리하고 돌아가라고 말했다. 나는 크게 시무룩했다. 아까 힘내라며 한 학생이 건네줬던 녹차가 여전히 따듯했다. 한 모금 들이키며 혼잣말로 되뇌었다. 그래, 이 정도 온기면 충분하겠지. 


날씨가 유난히 춥게 느껴졌다. 상록수가 찬 바람에 색이 바래 우수수 떨어졌다. 대관음상이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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