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토 -04
저녁엔 고베에서 만났던 와타나베 씨와 재회했다. 도쿄로 출장을 온 그는 전부터 도쿄에 도착하면
연락하라고 했었는데, 이번에는 유다이의 아버지
코마이 씨도 함께 만났다.
우리는 직장인들이 자주 가는 선술집에서 회포를 풀었다. 이 순간만큼은 나도 퇴근길에 맥주 한 잔으로 피로를 달래는 샐러리맨이 된 기분이었다. 고베에서의 인연이 도쿄에서까지 계속됐듯이, 다음 만남이 이어지길 기약하며 다음 날을 맞이했다.
예정대로 도쿄에서도 프리허그를 했다. 하라주쿠에서 팻말을 들고 서 있길 십 분째. 역시 도시 사람들은 시골 사람들에 비해 냉담한 편인 것일까. 다가오는 횟수가 꽤 줄었다. 많은 사람이 지나다니는 대로 한복판에서 하염없이 기다리기란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래도 시간이 지나자 다행히도 한분 두분 다가와 주셨다.
젊음의 거리 하라주쿠답게, 행인들이 확실히 어려 보였다. 대학생, 고등학생, 조금 있다가는 유튜브를 하는 초등학생들이 다가와서 나를 방송에 소개하기까지 했다. 조사에 따르면, 한일 양 국민 간의 호감도에서 젊은 사람들이 나이 든 사람들에 비해 상대 국가에 대한 호감도가 더 높다고 한다.
*한국의 경우, 20대는 일본에 대한 호감도를 묻는 질문에 42%가 “좋은 인상”이라고 답했다. 반면 60세 이상에선 26%에 그쳤다. 일본은 20대는 27%, 60세 이상은 13%로 양 국가 모두 젊은 사람들이 비교적 더 상대국에 대해 호감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무래도 아직 과거의 앙금이 가라앉지 않은 어르신들에 비해 젊은이들이 상대적으로 적개심이 적고, 상대국에 대한 문화적 관심이 높아서 그런 게 아닌가 싶다.
*손열, 김세영, 이영현.(2019).위기의 한일관계, 정치가 바뀌어야 한다: <제7회 한일 국민 상호인식조사>결과 및 <제7회 한일미래대화>논의 분석.EAI 이슈브리핑,5.
신세대로 갈수록 호감이 증가한다는 것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양국 간의 관계 개선에 희망이 보인다는 뜻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과거에 난 상처 위에 딱지가 앉고 조금씩 흉터가 치유되어 간다면 화합과 평화가 더는 허울뿐인 이상이 아니리라 믿는다.
앞으로 있을 부단한 이동 전 해두는 사치라는 생각과 더불어 도쿄에서의 마지막 밤을 홀로 축하하기 위해 운치 있는 바에서 한잔하기로 마음먹었다. 아무래도 여정을 거치며 때 타고 해진 가방이 고급스러운 바 분위기에 어울리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아무렴 어떤가. 나는 창가 한쪽에서 위스키를 주문해 홀짝였다. 내일 이동할 경로와 도심을 빠져나가는 길을 찾으며 두 번째 잔을 주문할 즈음, 바텐더 형씨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일본 도보 일주? 이거 진짜야…?”
나는 태연자약하게 그렇다고 대꾸했다. 그러자 단숨에 바텐더 형이 온 바의 손님들에게 내 이야기를 퍼뜨렸고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어느새 중앙 테이블의 가운데 자리에서 여행기를 풀어내는 중이었다.
의도하진 않았지만, 어느 저녁 술자리의 주인공이 되는 기분은 꽤 괜찮았다. 도쿄진(東京人)들은 사뭇 점잖고 사투리가 없어 대화를 알아듣기가 좋았고, 한 형님이 내게 무려 ‘이 자식 술은 내가 모두 산다.’를 선언하면서 분위기는 곱절이 무르익기 시작했다.
세상에서 가장 달콤하고 향긋한 술이 무엇인지 아는가? 바로 공짜 술이다. 나는 한국의 대학가에서 유행하는 권주가를 소개하며 바 안의 일본인들이 한국말로 “마셔라~ 마셔라~♪”를 부르게끔 유도했다. (일본에는 ‘ㅕ’ 발음이 없어서 “마쇼라 마쇼라”에 가까웠지만 말이다.)
눈 깜짝할 새 술집 셔터 내리는 시간이 되었고, 으레 그렇듯 내 잠자리를 모두가 걱정해주었다. 나는 내일 아침 일찍 출발해야 하기에 다시금 공원을 찾았으나 천부당만부당한 소리라며 바텐더 형님이 자기 집에서 묵고 가라며 택시를 불렀다. 바 안의 손님들에게 기쁨을 선물했을까. 오늘도 임무를 완료했다는 기분으로 형님이 부른 차에 탔다.
바텐더 류 형님은 미용사 키오 형님과 동거 중이었는데, 전 세계에서 가장 땅값이 비싼 곳 중 하나인 도쿄 중심가의 복층 원룸에서 하룻밤을 자보는 경험을 하게 됐다. 우리는 편의점에서 맥주를 낙낙하게 사서 집으로 갔다. 키오 형님도 날 굉장히 좋아해주셨고, 몇 캔째인지도 모르게 술잔을 비우다 아침을 맞았다. 두 형님 다 출근하는데도 불구하고 나를 위해 흔쾌히 잠자리를 내주셨단 생각에 가슴 깊이부터 감사함이 샘솟았다. 도쿄의 형님들은 멋졌다. 잘생기고 키도 크고 돈도 잘 버시고. 무엇보다 온정이 근사했다. 나도 나이 들면 형님들처럼 멋진 사람이 돼야지. 숙취를 라면 한 컵과 우롱차 한 병에 털어버리고 북쪽을 향해 길을 나섰다.
사이타마현을 거쳐 우츠노미야시, 센다이로 이어지는 길은 멀고도 험해 보였다. 목표인 삿포로까지는 아직도 1,000km 가까이 남아있었다. 소문에 의하면(소문이 아니라 진짜였다.) 북쪽에는 곰이 나온다는데. 이거 무사할 수 있을까? 앞으로의 여정은 어떻게 될지 기대 반 걱정 반이었다. 그럼에도 발걸음은 가벼웠다. 응원해주시는 분들과 천금과도 바꿀 수 없는 기억이 있기에! 내 삶의 도전은 언제나 To be continued일 것이다.
도쿄의 밤하늘엔 별이 몇 개 없었다. 그러나 그곳에 사는 별들이 빈자리를 채워주었기에 별천지와 다를 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