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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기쁨 Oct 20. 2022

끝이 보이다

도호쿠 -03

이제부터는 남한보다 위도가 높다. 삿포로까지 시골길의 연속이다. 정말로 곰이 출몰하기에, 배낭에 있는 음식을 모두 뺐다. 센다이와 모리오카 사이, 작은 마을인 이와테현 기타카미시를 지나고 있는데, 1km 전방에서 검은 물체가 움직이는 것이다. 무언가 하고 봤더니 필시 곰이다. 가방을 던지고 뒤로 줄행랑을 쳤다. 10분 정도를 바짝 쫄아 곰이 사라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가방을 다시 챙겨 인가가 있는 쪽으로 다급하게 경로를 수정했다. 시력이 2.0이라 천만다행이었다. 


최단 경로를 보여주는 구글맵의 폐해다. 곰이 나오는 오솔길을 추천해주다니. 곰과 마주친 순간 삶의 끝이 보였다. 인간에게 마지막 순간이야 언젠가 찾아오는 법이겠으나, 이런 식의 결말은 원치 않았다. 용기가 만용으로 바뀌는 건 바라는 바가 아니었기에 최대한 큰길로 나와서 걷기로 마음먹었다. 

▲ 곰을 만났던 오솔길.

오후 4시가 채 안 됐는데도 벌써 날이 어둑어둑 저물기 시작했다. 11월 24일, 처음으로 눈을 보았다. 길 한쪽 응달에 거무튀튀한 먼지를 뒤집어쓴 채 얄팍하게 쌓인 눈더미가 보였다. 한 줌 손으로 양껏 쥐자 얼얼하게 시린 냉기가 느껴졌다. 시원한 게 기분이 좋았다. 눈이 내릴 때면 늘 아이들과 나가 놀곤 했지. 요 하얀 입자는 신기하게 사람을 들뜨게 하는 마력이 있는 듯하다. 충분히 북쪽까지 걸어왔다는 증거이기도 하기 때문일까. 가슴이 뛰었다. 


들뜬 맘은 잠시, 오늘도 몸뚱이와 몸뚱이만 한 짐가방을 놓을 장소를 찾아야만 했다. 모리오카 인근 도로 가운데에 운전자들을 위한 온천 휴게소가 있었다. 나른한 기운을 맥주로 풀고 적당한 모포 위에서 잠이 들었다. 새벽녘 옆자리 아저씨의 코 고는 소리에 눈꺼풀이 반사적으로 뜨였다. 오늘은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차량 통행이 잦은 여기서는 운이 좋다면 같은 방향으로 가는 차를 얻어 탈 수 있을성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예상적중! 정확히 북쪽은 아니었지만, 아키타라는 도시까지 가는 나마하게 씨와 동승하게 되었다. 나마하게 씨는 나긋나긋한 목소리에 부드러운 인상이었다. 그러면서 유머러스하기까지 해서, 그의 차를 얻어 타는 내내 지루할 새가 없었다. 


그는 아키타에 왔으면 일본 3대 우동 중 하나인 이나니와 우동을 먹어봐야만 한다고 강조했다. 가느다란 굵기에 찰기를 겸한 면발은 달금한 소스를 듬뿍 빨아들여, 부드럽게 목구멍 너머로 넘어가는 맛이 일품이란다. 그래서 먹어봤냐고? 아쉽게도 아니다. 사누끼에서 질릴 대로 질려버린 그 당시 나에게 우동은 이제 그만했으면 하는 음식에 불과했다. 시간이 지난 지금은 최고의 우동을 먹어 볼 기회를 놓쳤다는 사실이 참 아쉽다. 이 글을 읽는 이 중에 아키타를 방문할 기회가 생긴다면, 꼭 이나니와 우동을 먹어보고 후기를 들려줬으면 한다.

▲ 아키타에서 만난 나마하게 씨.

나마하게 씨는 야쿠자를 만나서 무지막지한 대접을 받았다는 내 이야기를 잠자코 듣더니, 자신도 호텔에서 자게 해주겠다고 선언했다. 저번에 료 씨도 그렇고, 아무래도 야쿠자 스토리는 일본인들에게 모종의 경쟁심리(?)를 불러일으키는 모양이었다. 내가 야쿠자보다 못 해주면 안 되지 뭐 이런 것일까…. 


나는 극구 만류했지만 이미 결심을 굳힌 나마하게씨의 선택을 바꾸지는 못했다. 그도 전의 두목님과 똑같이 잔돈을 남겨주며 호탕하게 웃었다. 야쿠자와는 다른 멋짐이었다. 


돈을 벌어야 하는 이유는, 남에게 후하게 베풀기 위해서구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럴 때 사람은 제일 멋져 보이기 때문이다. 여행 내내 받기만 했던 나도 언젠가 내게 닿는 모든 이에게 머물 방 하나, 푸짐한 식사 한 끼 정도는 넉넉히 베풀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밖은 추웠지만, 호텔 안은 따듯했다. 조식을 든든하게 먹고 다시금 가방을 멨다. 북해도로 가기 위한 항구도시 아오모리를 향하는 길. 아키타 시내를 가로질러 나아가는 도중에 독특한 포스터가 눈에 띄었다. 7명의 여자가 손으로 하트모양을 하고 있고, 중앙에는 ‘아키타 미인’이라고 써진, 무려 아키타 시에서 홍보용으로 내붙인 광고 전단이었다. 그러고 보니 어렴풋이 기억이 떠올랐다. 일본 3대 미인 중 아키타 미인도 있다고 나마하게 씨가 말했던 것도 같았다. 거참 일본은 3대 ~ 라는 식으로 순위 매기기를 좋아하는구나. 그러면서도 21세기에 이런 시대착오적인 문구를 대놓고 홍보하는 것도 가능하구나 하고 살짝 충격을 느꼈다. 

▲ 아키타 시에서 마주한 홍보 포스터.

일본은 여성 인권이 상당히 낙후되어있는 나라다. 유교 문화권에 속한 나라들이 으레 그렇기도 하지만, 일본은 유별나게 그 정도가 심해 보였다. WEF (세계 경제 포럼)에서 조사한 국가별 성평등 지수를 보면, 153개국 중 일본은 121위, 한국은 108위에 속한다.* 성평등 지수는 국민이 사회에서 느끼는 성차별 정도를 소득, 대우, 인식 등의 분야에서 점수를 매겨 순위화한 지표다. 경제력은 세계 10위권 안에 너끈히 드는 두 나라가 성평등 지수에서 최하위권에 머문다는 사실은 재고해볼 만하다. 


*WEF (World Economic Forum), Global Gender Gap Report 2020. p.9. 


일본에선 여성을 지칭할 때 ‘もの (물건)’라는 표현을 쓰는 것을 심심찮게 마주할 수 있다. 한국에서도 “넌 내꺼야!”라며 장난스럽게 말할 때도 있긴 하다. 하지만 오랫동안 여성을 상품화시키고 물건처럼 취급해왔던 일본의 과거사를 생각해보면 저런 표현을 쓰는 것이 우연은 아닌 것처럼 느껴지곤 한다. 직장 내에서 월경 중인 여성에게 ‘생리 배지’라는 것을 착용하게 한다든지, 술자리에서 여성이 반드시 술을 따라야 한다는 등의 어처구니없는 사회 풍조는 아쉽게도 현재 진행 중이다. 직장 내에서는 물론이고 일상에서조차 성희롱을 자주 당한다는 걸 일본 여성분들과 대화해보면 알 수 있었다. 


인간은 모두 평등하다. 인종, 성별, 외모, 나이, 국적, 학력, 재력, 지위의 고하 등으로 인해 사람 간에 상하 관계가 생기는 것은 명백히 부당한 처사다. 지금은 당연해 보이는 평등의 논리가 제대로 세상에 나온 건 길어봐야 300년 정도밖에 안 된다. 따라서 지속적으로 차별이나 혐오를 불러일으키는 사고를 경계해야 함과 동시에 사회에 산재해있는 불평등을 제거하기 위해 모두가 애써야만 한다. 차별하면, 반드시 차별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일본 3대 미인이라는 말은 개개인의 개별성은 무시한 채로 한 지역의 집단을 일반화시킨다는 점에서 극단적인 성향을 띤다. 더 나아가, 여성을 마치 상품의 한 종류인 양 평가의 대상으로 전락시킨다는 점에서 성차별적인 문구다. 이런 포스터가 공공연히 거리에 홍보목적으로 붙여져 있다는 것은 충분히 지탄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너무 지나친 반응이 아니냐는 의문을 가질 수도 있겠으나, 변화는 불편함을 느끼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변화는 또한, 인식의 개선으로부터 비롯한다.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왔던 것들의 기저에 차별과 혐오의 가능성이 내포되어 있다면 바꿔야 함이 마땅하다. 과거의 불평등이 당연시되고, 묵과되었다고 해서, 지금 통용되는 것은 아닌 것처럼 말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어느새 아키타 북쪽 상명한 하늘과 추수를 끝내 훤한 논밭에 닿았다. 전답 건너편에는 층고가 낮은 일본식 목조 가옥이 가지런히 도열해 있었다. 산뜻한 새털구름이 하늘의 고고함을 일러주었고 볕은 두터웠지만 따끔하지 않았다. 억새가 하늬바람에 쓸려 부드럽게 고개를 숙였다. 산을 넘고 들을 지나 수평선 전의 마지막 지평선을 걸었다. 혼슈(本州)에서의 여정은 아오모리까지가 마지막이었다. 아오모리시에 도착하면 페리를 타고 북해도, 즉 홋카이도로 넘어간다. 그다음 삿포로를 거쳐 일본 열도의 최북단, 왓카나이의 소야곶에 도착하면 도전 달성이다. 끝이 없을 것만 같았는데, 끝이 보였다. 쌓인 눈과 냉랭한 대기가 거의 다 왔다는 사실을 증명이라도 해주는 것만 같았다. 

▲ 아키타의 가을하늘.

짐작하건대, 인간의 삶도 길을 걷는 일과 닮은 부분이 많을 것이다. 지치고 고된 여로 속의 시간은 영속할 듯 보이지만, 언젠가 반드시 끝은 다가온다. 남쪽의 열기를 한껏 느끼며 시작의 열정을 간직한 채 달리듯 걷던 여행의 초반은 지금의 내 나이 스물의 모습과 꼭 맞아떨어지겠지. 반면, 현실의 고단함을 잔뜩 겪어 내고 완숙해지는 때 역시 찾아올 것이다. 마치 끝을 앞두고 서늘한 길가를 차분하게 걸어 나가는 지금처럼 말이다. 이제야 조금 세상을 알겠다는 자신감이 느껴질 때쯤이면 여행기의 지면이 부족해질지도 모른다. 그러고 나면 죽음이라는 길동무와 함께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써야 하는 순간 또한 다가올 것이다. 


끝이 다가왔을 때, 나는 무얼 하고 있을까? 아마도 지금처럼 그저 최선을 다하고 있지 않을까 싶다. 그저, 저 멀리 닿을 듯 말 듯한 수평선을 향해 다시 한걸음 내딛는 그때의 내가 조금이나마 더 나은 사람이 되어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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