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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기쁨 Oct 20. 2022

준비

한국 - 00

고등학생 때부터 간직하던 세계 일주의 꿈은 시간이 갈수록 선명하게 자리 잡았다. 

대학에 진학해 첫 학기를 마친 뒤 2018년 여름. 방학이 되자 일본 도보 일주 계획을 구체적으로 세웠다. 처음으로 아르바이트란 걸 해봤다. 낯에는 쇼핑몰, 밤에는 편의점에서 일했다. 주7일 쉼 없이 하루에 4시간씩 자며 이를 악물고 일하자 수중에 800만 원이라는 돈이 모였다. 


내가 다니는 대학은 1학년 때 휴학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등록금을 온전히 내고 2학기는 무단결석해야만 일본 일주를 다녀올 수 있었다. 책임이 많이 따르는 결정이었기에 대단히 불안했다. 심지어 일본을 걸어서 일주한다는 게 될지 안 될지조차 모르는 상황에서 내가 망설이지 않았다고 한다면 거짓말이겠다. 


해외여행을 자주 가본 것도 아니고, 체력이 좋은 편도 아니다. 미래가 보장된 것도 아니고 리스크는 크기만 한 시기에 용기를 불어넣어 준 것은 인터넷 블로그와 SNS에서 본 다른 여행자들의 이야기였다. 79만 원으로 시작해 7년에 달하는 기간 동안 세계를 여행한 권용인 형님이나 자전거로 일본과 남미를 일주한 김민형 사진작가님처럼 위대한 도전을 실현하신 분들을 보자 나도 할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을 얻었다. 


첫 번째 도보 여행지로 일본을 골랐던 이유가 뭐냐는 질문을 많이 들었다. 우선 일본은 치안이 우리나라 수준으로 안전했고, 한국과 그리 멀지 않았기 때문에 도중에 포기하게 되는 상황이 오더라도 한국으로 돌아오기 쉬웠다. 


개인적으로 일본에 관한 관심 역시 있었지만, 무엇보다 일본을 걸어서 여행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한 계기는 한일관계였다. 어렸을 때부터 난 사회와 어른들로부터 일본을 향한 미움을 느끼며 자랐다. 역사를 배우고 그들의 만행을 알게 된 이후부터 나 역시 그러한 혐오에 동참했고, 일종의 명분을 가진 채 색안경을 끼고 일본을 바라보곤 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막연한 증오의 확산과 다툼의 연쇄는 양측에 어떤 좋은 영향도 가져오지 못한다는 사실을 느꼈다. 그때부터 일본 커뮤니티나 웹사이트 등지를 찾아보면서, 그들의 주장과 한국을 향한 시선은 어떠한지 알아보곤 했다. 한국 언론이 바쁘게 퍼 나르는 일본 누리꾼들의 반응은 전체의 의견과 상당히 동떨어져 있었다. 극우적 성향을 지닌 이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일본인은 한국의 역사적, 정치적 주장에 무지하거나 무관심한 게 대부분이었다. 


전체주의 성향이 강했던 일본 지도층의 특질을 고려한다면, 그들이 받은 왜곡된 교육이나 정보가 납득이 갔다. 또, 우리가 받은 교육에도 편파적인 시선이 녹아있을 수밖에 없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막연히 일본을 싸잡아 욕하고 국가주의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은 양국의 미래에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자기 잘못을 모르는 사람에게 그저 사과하라고 반복해서 요구하는 것 역시 효과적이지 못하다. 무엇을 잘못했고, 그 때문에 받은 피해가 무엇인지 알려주는 것이 먼저다. 그런 뒤 서로 화해하고 앞으로의 관계에 대해 논의하는 것이야말로 성숙하고 발전적인 대화인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국가적 단위로 범위가 확장되면 몇 가지 걸림돌이 생긴다. 우선 국민은 한정된 매체로만 외국을 접할 수 있다. 최근에는 각종 SNS와 전 세계적 통신 수단을 통해 다소 그 한계가 완화됐지만, 기본적으로 뉴스 같은 각종 대중매체에서 정보는 언론과 기자들을 거쳐 도달하게 된다. 그러한 과정에서 정치적 의도가 어쩔 수 없이 포함되고, 진실보다는 자극적인 화제가 더 자주 사람들에게 도달한다. 그러다 보면 양국의 화합과 이해는 갈수록 멀어지고 만다. 


인간은 네 편 내 편 가르기를 좋아한다. 흑백논리는 세 살배기 아이 때부터 형성되는 본능이다. 축구 경기도 응원하는 팀이 있어야 재미있다. 그런 와중에 하물며 명분까지 있다면 외국을 적대적으로 규정하고 과격하게 헐뜯는 행위도 정당화될 여지가 충분한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사고방식이 퍼져 일반적인 것이 돼 버리면 전체주의와 이기주의가 다시금 사회를 잠식시키고 만다. 그렇게 인류가 그토록 막고자 했던 전쟁과 다툼이 다시금 모습을 비추고 말지도 모르는 일이다.


한국과 일본은 수십 세기 동안 서로 돕기도, 싸우기도 여러 번 반복하다 한쪽이 한쪽을 지배하기까지 했던 사이다. 필연적으로 다양한 공통점을 가지고 있고, 협력할 때에 더욱 커다란 시너지를 낼 수 있는 관계기도 하다. 역사와 정치적 관계는 우리가 태어나기도 이전에 이미 자리 잡혀 있는 과거의 흔적이다. 따라서 선뜻 화해하고 넘어갈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국민끼리 으르렁대고 악감정을 가질 이유는 없다. 최대한 많은 이들이 서로를 이해하고 포용할 수 있는 자세를 가질 때 비로소 문제해결의 실마리가 보일 것이다.


난 그저 한 명의 힘없고 작은 개인이지만, 한일관계를 개선하는 데에 무언가 역할을 하고 싶었다. 그리고 이웃 나라 일본을 직접 두 눈으로 보고, 두 발로 걸으면서 사람들의 생각과 마음을 오롯이 느껴보고 싶었다.    

 

무언가를 바꾸기 위해선 대상을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

등록금을 제하고 여행에 필요한 준비물을 사고 나자 수중에 600만 원 정도가 남았다. 그렇게 일본행 티켓을 끊었다. 

▲ 일본일주를 위해 챙겼던 준비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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