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한 물건

거실에서 자고 싶지 않아요

by 에토프

시댁에 인사를 올리고, 친정에 가려던 참이었는데, 어머님께서 신행여행에서 돌아온 첫날은 시댁에서 자고 가는 것이라 하셨다. 이런 건 누가 정한 건지.

시댁에는 방이 세 개 있다. 안방, 아버님 서재, 그리고 문이 닫혀있어 알 수 없는 방.


"엄마 우리 어디서 자라고? 서재는 둘이 눕기에 좁아. 거실에서 자라는 거야?"


나는 또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저기 하나의 방이 더 있는데, 왜 거실에서 불편하게 시부모님이 드나드시며 눈이 마주칠만한 곳에서 잠을 자야 하는지. 방의 정체가 궁금했지만, 내가 방에 대해 물으면 자고 갈 의사가 있는 것처럼 보일 것 같아 남편이 하는 말에만 귀 기울이고 있었다.


"뭐 어떠니. 너희 누나네도 여기 오면 거실에서 자고 가는데. 매형도 잘만 자다 가는구먼."


남편이 나를 본다.


"엄마 우리 방에서 자고 싶어요. 거실은 불편해. 나랑 하연이랑 잠귀가 밝아서 잘 못 자요. 엄마 새벽 5시면 일어나서 나오시잖아요."


새벽 5시. 아침운동을 나가신다고 했다. 드르륵 중문이 열리는 소리만 들어도 벌떡 일어나는 나였다. 남편의 손을 꼭 잡고, 잘한다 잘한다를 외치고 있었다.

아들 말에는 꼼짝 못 하는 어머님은 우리를 더 붙잡지 않으셨고, 그렇게 우리는 처가로 향했다. 이미 시간이 많이 늦어서 인사만 하고 가려던 참이었다. 엄마는 사위가 피곤해 보였는지 서둘러 집으로 돌려보냈다.


집으로 가는 차 안. 그에게 물었다


"그 방. 시댁에 있던 방 하나 거긴 왜 안되는 거야?"


"거기. 우리보다 소중한 게 들어있어."


"응?"


"경품."


경품. 결혼 전 어머님을 몇 번 보지는 못했지만, 눈도 잘 못 마주치시고, 말도 많이 없으셔서 내향적인 분이신가 보다. 그 정도 말고는 내가 알아낼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우리 엄마는 공짜 좋아해. 경품행사는 다 가고, 당첨운도 좋고. 되니까 신나서 더 가셔."


"냉장고는 왜 그래? 냉동실에 불빛이 안 보이던데. 가득 차 있어. 겁나서 다시 못 열겠더라."


시댁은 재산이 넉넉하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아버님이 퇴직하시고 나오는 연금에, 작은 상가건물도 있어서 월세도 받으셨다. 그런 그 집에 경품으로 들어찬 방과 음식으로 가득 찬 두 대의 냉장고가 있었다.


"나 어렸을 적엔 집이 어려웠거든. 그래서 더 악착같이 모으시는 거야. 차로 20분 거리에 텃밭이 있거든. 거기서 웬만한 건 심어서 수확하셔. 그거 다 냉장고에 보관하시는 거지."


남편의 말을 듣고 나니 이해가 조금 되는 것 같았다. 뒤를 돌아 트렁크를 봤다. 높이 쌓아져 있는 어머님이 싸주신 생필품과 반찬들. 감사하기는 하지만, 너무나도 많았다.


"근데 저거 우리가 다 먹을 수 있을까?"


"일단 받아는 오고, 못 먹은 건 버리자. 엄마는 저거 싸주는 게 기쁜 일 인대 너도 나도 거절하긴 어렵잖아."


남편 말을 따르기로 했다. 거절해도 싸주실 분이었으니까.

집에 와서 짐 정리에만 2시간이 걸렸다. 김치와 비닐에 싸주신 반찬들을 통에 덜어 냉장고에 넣고, 어머님이 주신 생필품을 열어 보았다. 치약, 비누, 기념일이 박힌 수건들. 치약 끄트머리에 작은 숫자가 쓰여있다. 2005.


"오빠, 이거 2005년에 생산된 거라는 거지?"


"그거 화장실 청소할 때 쓰면 돼."


겹겹이 쌓인 수건을 꺼내 펼쳐보았다.


"오빠, 이거 봐."


1998. 6. 26 환갑 기념


지금은 2013년이다.

15년이 된 새 수건이라니. 물을 머금지 못할 것 같은 촉감을 하고 2000년도 아닌 1998년부터 쓰이지 못한 채 꼭 꼭 숨어있었나 보다. 어머님은 수건을 주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수건 같은 건 사지 마라. 집에 백장은 더 있으니까 갖다 써."


나는 호텔 수건을 좋아한다. 도톰하고 모노톤의 수건들이 가지런히 우리 집 욕실에 놓여있다.

남편은 시댁에서 가져온 수건을 세탁기에 넣으며 말했다.


"이건 발 닦을 때 쓰거나, 걸레로 쓰면 돼. 인테리어를 해치면 안 되지."


나는 보기 좋은 것을 좋아한다.

남편은 그런 나를 잘 안다. 고마웠다. 수건으로 돈 아끼라는 말을 하지 않아서. 남편이 내편이라 참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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