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이 두 번 뿐이라 얼마나 다행 인대요
전 부치는 남자
신혼살림을 차린 지 3개월이 지났다. 나는 남편보다 요리를 잘했고, 남편은 나보다 청소를 잘했다. 그렇다고 남편이 음식을 아예 만들지 못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내가 손이 조금 더 빨라서, 조금 더 입맛에 맞아서 음식은 내 담당이 되었다. 나는 청소에는 소질이 없었다 빠르게는 치우지만, 꼼꼼하지는 못하다. 남편은 청소도 참 멋지게 잘 해냈다. 내 머리카락이 뭉쳐 돌아다녀도 그는 잔소리를 하지 않고, 내 머리카락을 치웠다. 엄마였으면 머리카락 다 잘라버리자고 난리를 쳤을 텐데. 이 남자는 내 머리카락도, 나의 흔적들 모두 소중하다며, 조심스럽게 치우며 다녔다.
나는 출근시간이 늦은 편이지만, 남편의 출근 준비 시간에도 함께 하고 싶어 잠을 포기하고, 일어난다. 남편은 내가 옷을 골라주는 것을 참 좋아한다. 그가 나에게 더 많은 것을 해주지만, 내가 옷을 골라주고, 그의 모습이 마음에 들어 고개를 끄덕이면, 버스정류장으로 달려온 그날처럼 나를 보고 웃어주곤 한다. 아침마다 따뜻한 밥상을 올리는 것도 아닌데, 뭐 대단한 일이라고 그리도 좋아하는지.
남편은 야근이 있는 날을 빼고는 거의 매번 나의 퇴근시간에 학원 앞으로 마중을 나왔다. 집에 혼자 있는 것이 싫다며, 조금이라도 빨리 보고 싶다며 내 눈앞에 나타나 주었다. 연애를 오래 해도 우리는 여전히 뜨겁고, 따뜻했다.
다음 주면, 결혼하고 첫 명절 설이다.
"하연아, 우리는 설 전날 큰댁에 가서 음식 하고, 다음날 차례만 지내고 오면 될 것 같아."
"오빠네 큰댁에 그럼 몇 명이나 모여?"
"스무 명?"
꽤 많았다. 음식 하는 걸 싫어하지는 않았고, 맏며느리인 엄마를 도와 명절 음식은 10년 보고 배웠으니 어려울 것 없다 생각했다.
큰댁에 갈 채비를 하고 있었다.
아버님께서 전화를 하셨다.
"새아가, 큰댁에 가는 건 알고 있지? 결혼하고 첫 명절이라고 누님들이 오신다네. 한복도 입고, 화장도 예쁘게 하고 오너라."
한복도 입고, 화장... 화장을 예쁘게 하라고 하셨다.
"오빠 나 안 예뻐? 화장 안 하면 아파 보여?"
"아니 립밤만 발라도 여전히 예쁘지."
"아버님이 화장도 예쁘게 하고, 한복 입고 오라시네. 고모님들 오신다고."
"하... 아버지 진짜. 내 여자한테 왜 그러신대. 아버지가 하도 그러셔서, 우리 엄마도 꼭 빨간 립스틱은 바르시잖아. 신경 쓰지 말고, 너 하고 싶은 대로 해. 가서 전 부치는데 한복은 불편하지 않겠어?"
"그렇지. 갈아입으면 되잖아."
"내가 불편해서 한복 안 입는다고 했다고 할게, 너만 한복 입고 가는 것도 모양새가 이상하잖아."
"그래 줄래? 입술만 좀 칠하고 가야겠다."
꾸민 듯 안 꾸민 듯 옷을 입고, 얼굴은 안 꾸미고 큰댁에 도착했다. 아버님이 큰아버지를 모시고 서둘러 나오셨다.
"오랜만에 봬요. 잘 계셨죠?"
"그래 그래, 근데 얘가 이렇게 생겼었나? 아, 못생깄다는 게 아니고. 그때는 화장이 진했나 보다. 나는 그때뿐이 못 봤으니."
"신부 화장이 좀 그래요. 성형수술처럼 확 달리지긴 하죠. 하하하."
"화장 안 해도 예뻐서 동욱이가 색시로 찍었는가 보다."
큰아버지와 줄타기 대화를 하는 동안, 아버님은 못마땅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계셨다.
주차를 마치고 남편이 뛰어왔다. 아무래도 눈치 빠른 동욱 씨가 상황 파악이 되었나 보다.
"큰아버지, 안녕하셨죠, 들어가시죠 이제. 아버지, 나도 전 부쳐야 해서 한복 안 입고 왔어요. 나도 영 불편하고. 하연이 혼자 입으면 이상하잖아요. 화장하고 기름 뒤집어쓰면 피부에 좋을 것도 없고요."
"별게 다 이상하고, 불편하다 그러네. 그리고 전을 네가 부칠 것도 아니잖아."
친정에서는 엄마보다 아빠가 부엌에 들어가는 일이 많았다. 생각해보니, 아버님은 물 한잔도, 생선 가시도 다 어머님이 해결해 주셨다. 그런데 이 남자는 어떻게 이렇게 자란 걸까.
"부쳐야죠. 입이 몇 갠데, 여자들만 부쳐요. 일할 수 있는 사람은 해야죠."
남편은 나와 커플 앞치마를 하고 딱 붙어 앉아, 전을 여덟 가지, 6시간 내리 부쳤다. 시어머니의 눈이 점점 10시 10분이 되어가고 있었지만, 내 남편은 아랑곳하지 않고, 같이 음식 준비를 도왔다.
고모님들이 한마디 씩 하셨다.
"야, 아무리 니 와이프가 좋아도 그렇지, 왜 여기 이러고 있어?"
아들이 귀한 집안이라 동욱 씨는 그들 모두의 아들이었다.
어른들은 밖으로 나가고, 젊은 사람들만 모여 앉아있었다. 큰아버지의 첫째 며느리. 나보다는 열 살 많은 그분이 입을 떼셨다.
"나는 자기가 너무 부럽다. 우리 남편은 그렇게 말을 해도 전 한번 안 뒤집는데. 라면 끓여먹는 거 말고는 집에서 손하나도 까딱 안 해."
맞은편에 계시던 둘째 며느리, 그분도 한 마디 하셨다.
"그러니까요, 이 집에서 이런 광경을 볼 수 있을 거라 상상이나 했겠어요. 저는 왜 이렇게 짜증이 나면서도, 좋은지 모르겠네요. 나도 나중에 우리 아들한테 음식 좀 가르칠까 봐요. 시댁이 싫어도, 남편이 내 편이면 여자 하나는 살린 거야. 그렇죠?"
남편이 내 편인 결혼은 나뿐이었나 보다.
너무나도 씁쓸해서, 그분들에게 괜히 미안해서 나는 남편과 조금 더 떨어져 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