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에토프 Aug 03. 2021

이름의 힘

언젠가는 꼭 바꾸리라.

아이가 태어나면 선택하고 결정해야 하는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너무나도 다른 제품이 많아서 유모차, 젖병, 장난감, 기저귀 등 물건 하나 고르는데도 한참이 걸린다. 아이가 태어나서 불려질 이름도 마찬가지다. 남편이나 나는 이름 따라 직업을 갖기도 했고, 인생에 이름이 주는 영향을 간과할 수 없었다.


첫 아이가 태어나고 조리원에 연계된 작명가가 있음에도 아무도 그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길래 나도 그냥 그러려니 무시했다. 마침 시부모님이 다니시는 절에 부탁하신다기에 그러기로 했다. 아이가 태어난 지 한 달이 다 돼가서야 겨우 이름을 받았다. 그런데, 이게 뭐지. 한참을 기다린 이름은 너무 실망스러웠다. 첫째라 무언가 거창한 이름을 기대한 마음도 있었겠지만, 한자만 놓고 보더라도 너무나 쉬운 글자에 뜻도 정확하게 해석하기 어려운 이름이었다. 이걸 짓는데 한 달이나 걸린 걸까. 스님이 이름 짓는 게 귀찮았던 게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찝찝했지만 출생신고기한이 임박했기에 아이 이름은 그렇게 결정되었다. 그 뒤로는 사는 게 바빴는지 첫째 아이의 이름을 바꾸고 싶다는 생각은 한 번도 들지 않았다. 쉬운 글자임에도 이름을 한 두 번 더 발음해줘야 하는 수고로움이 따랐지만. 그냥 그렇게 살았다.


둘째가 태어나고는 그 스님에게 다시 내 아이의 이름을 맡길 수가 없었다. 조리원에 오신 작명가분에게 이름을 받았다. 사주부터 남매간 부모 간의 궁합도 봐주시고, 열개가 넘는 이름을 가지고 오셨다. 첫째가 예민한 탓에, 둘째는 모나지 않고, 밝은 아이였으면 하는 바람으로 이름을 결정했다. 딸아이는 정말 이름 그대로다. 우리 가족 모두를 웃게 해 준다. 덕분에 나는 이름의 힘을 더 믿게 되었다.


그리고 셋째가 태어나고, 부랴부랴 조리원에 들어갔다. 코로나로 조리원에 가는 것이 부담됐지만, 10년이 지난 나의 몸상태가 좋지 않아서 막상 애를 낳고 보니 선택사항이 아니라 필수였다. 마침 자리가 있어서 예약도 없이 이틀 뒤에 조리원에 입소했다. 첫째 둘째를 봐주셨던 신생아실 선생님도 그대로 계셨다. 도착하자마자 원장님께 예전에 작명하시던 분 아직도 계시냐고 물었다. 

여전히 부드럽고 차분하고 나긋나긋한 목소리셨다. 통화를 하는 동안 어찌나 반갑던지, 둘째 이름 잘 지은 것 같다고 감사하다고 인사도 드렸다. 셋째 이름도 부탁드리고 얼마 뒤.


"산모님~ 아이 이름은 다 지었는데, 혹시 첫째 아이 이름을 바꿔주실 생각은 없으신가요?"


내 찝찝함의 기억을, 그간 있었던 일을 말씀드렸다.


"아이가 자기중심적인 것이 심하지 않나요? 나중에 이게 좀 사람들 관계를 힘들게 해요. 둘째 셋째도 잘 지었으니, 첫째도 고려해보세요."


 "음.. 저도 바꾸고 싶은 생각은 있는데 아이도 그 이름으로 9년을 살았으니까 아이랑 남편이랑 상의해보고 다시 연락드릴게요."


하루라도 빨리 바꾸고 싶었지만 가뜩이나 예민한 아이가 자기 이름에 대한 권리를 주장할 수도 있으니, 아이의 의견도 물어야 했다. 아이의 의견을 묻기도 전에 없던 일이 되긴 했지만.


"다 돈 벌려고 그러는 거야. 됐어, 안 한다고 해."


"그래도 내 자식이 잘 산다는데 못 할 이유는 없잖아. 당신도 첫째가 그런 것 때문에 마음에 안 들어했잖아."


정작 아이와 성격차이로 부딪히는 건 남편이었다.


"부모님이 받아오신 이름인데 어떻게 바꾸냐."


그랬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이거였다.

본인의 부모님께서 어렵고 소중하게 받아오신 첫 손자의 이름을, 이제 와서 그런 이유로 우리가 바꿀 권리는 없다는 것.


왜 내 배 아파 낳은 내 자식인데?


그렇게 그저 시부모님께는 말을 꺼내는 거 조차 결사반대하여 입도 뻥긋 못하고 접었다.


나중에 이를 알게 된 친정엄마는

"나도 좀 어감이 맘에 안 들긴 했어. 네가 낳은 앤 데 왜 눈치를 봐~바꿔."

애초에 단호하게 나오는 남편과 싸울 수가 없었다. 아이 낳은 지 열흘. 가장 호르몬 전쟁이 왕성한 시기였기에, 이걸 지금 터뜨린다면 나는 우느라 한마디도 못할게 뻔했기 때문이다.



"첫째 아이의 이름은 바꿀 수가 없을 것 같아요. 남편이 효자라 안될 것 같네요. 다음에라도 바꾸게 된다면 꼭 다시 연락드릴게요."

 이틀 뒤, 작명하는 분이 셋째 아이의 이름을 가지고 조리원에 오셨다. 10년이 지나서일까 머리도 하얘지고, 손에도 주름이 늘었다. 고운 글씨와 부드러운 목소리는 그대로 셨다.


아이의 사주와 가족 간의 궁합을 간단히 봐주시고, 엄마가 따뜻한 사람이라 애들 잘 키울 거라고 응원도 해주셨다. 그리고, 기저귀라도 하나 사 와야 했는데 미안하시다며, 3만 원이 든 봉투를 주셨다.


속으로 그저 상술이라고 믿었던 남편에게 쌍욕을 했다. 그리고 다짐했다. 시험이라도 한번 실패하는 날엔 바로 달려가 이름을 바꿔 줄 테다.



그렇게 세 아이는 성만 같을 뿐 이름에서는 전혀 어떤 사이인지 알 수 없는, 그런 이름으로 살고 있습니다. 요즘엔 작명앱이 있더라구요. 첫째 아이의 이름을 기입해보니 매우나쁨이 뜨긴하더라구요. 능력은 있으나 운이 닿지않아 집에서 티비나 보고있는 백수로 표현이 되어있어 눈이 뒤집혔......
가족간, 형제, 자매, 남매간  궁합은 나오지 않지만 아이 이름 짓는데는 꽤 도움이 될 겁니다. 무료로 이용하려면 열심히 조합하셔야 한다는 점.




매거진의 이전글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