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에토프 Aug 05. 2021

우리나라에서 제일 행복한 초등학생

학원에 다니지 않는 아이

-교육에 관한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과 생각으로 작성한 글



첫째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지 3주가 지나고, 공개수업이 있었다. 만복이는 어려서부터 엄마 참여수업을 다른 아이들에 비해서 격하게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다. 기쁜 마음보다 부끄러운 마음이 더 다. 힐끔힐끔 엄마를 찾는 아이도 있고, 좋아서 방방 뛰거나 큰 목소리로 대답하는 아이들도 있고, 아이들마다 다른 모습으로 그날을 즐긴다.

그날도 만복이는 거의 나를 쳐다보지 않았다. 긴장한 채로 모범생처럼 수업만 듣는다. 선생님이 뒤를 돌아 엄마를 찾아보세요 라고 허락하면 그제야 나를 보고 부끄러운 듯 웃는다.

이것저것 묻고 싶지만, 이 아이에겐 낯선 사람들이 자기 영역인 교실에 들어온 것만으로도 긴장감을 주기 때문에 그저 손을 꼭 잡고 얼른 집에 가야 했다.

다른 학부모들은 남아서 반대표 선거도 하고, 처음으로 담임선생님과 함께 할 수 있는 자리라 많이들 남는다.

아이와 손을 꼭 잡고 교실을 나서는데. 아이들이 우릴 부러운 듯 쳐다본다.


"넌 어디가? 난 영어학원 가는데."

"난 집."

"좋겠다~"

건물을 빠져나가다 또 다른 친구를 만났다.


"엄마는 남아서 할 일 있으니까 학원 가면 문자해~~"

"알았어."


"어? 만복이 엄마는 안 남아요?"

"둘째 하원 가야 해서요. 맡아줄 사람도 없고요."


"아줌마, 만복이는 어디 가요?"

"집. 만복이는 아직 학원 안다녀. "

"우와 좋겠다."


집에 가는 길목마다 학원차량을 기다리는 아이들이 만복이를 부러운 듯,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쳐다본다. 단지, 학원을 다니지 않는다는 이유로.


2학년 공개수업 날도 1학년 공개수업 날과 같은 장면이 되풀이됐다.

학원에 가야 하는 친구에게 되려 학원 가고 싶지 않은 마음을 더 크게 만드는 건 아닐까 싶어, 조용히 되도록이면 마주치지 않고 집에 가고 싶었다.


만복이는 고학년, 11살, 4학년이 되었다.

여전히 학원은 다니지 않는다. 새 학년이 되고 국어, 수학, 영어를 25문제씩 평가했는데, 고학년이 주는 압박 때문인지 슬슬 걱정되기는 했다. 다행히 영어만 2문제를 틀렸다.

만복이는 늦잠을 자는 버릇도 없고, 혼자 알아서 시간표를 보고 교과서를 챙기고, 원격수업이 시작되기 10분 전 모든 준비를 마치고 수업에 임한다. 과제는 거의 1등으로 전송하여 제출하는데, 선생님이 매번 대단하다며 칭찬을 해주신다.


내가 아이를 이렇게 키운 걸까, 원래 이런 아이인 걸까.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학원강사였다.

첫 시작은 대학교 4학년, 교육열이 높다면 높은 목동지역에서 수학 단과학원. 원장 선생님과 나 둘 뿐인 조그만 학원이었지만, 그때 많은 것을 느꼈다. 초등 6학년부터, 중학생 수학을 가르쳤고, 자신감이 조금 붙고 나서는 고1 예습도 간간히 가르쳤다. 이곳 아이들은 외국어는 확실히 기본으로 잘했다. 나보다도 토익 성적이 높았다. 아이들은 영어학원숙제때문에 수학 숙제를 할 수 없었다. 한 번은 도대체 얼마나 많길래 이러느냐고, 확인해보았는데 방대한 양이였다. 그날로 내 수업은 한번 풀 때 제대로 알고 넘어가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많이 풀고 익혀야 하는데, 숙제를 해오지 않으니 시간은 정해져 있고, 그렇다고 남겨서 더 시킬 수도 없었다. 나는 시간이 있었지만, 아이들은 시간이 없었다. 한 번은 초등 6학년을 가르치는데 아이가 휴가를 간다고 해서, 보강 시간을 잡아야 했다. , 화, 수, 목, 금 아이의 스케줄을 표로 그렸다. 빈칸이 없었다. 그때의 충격이 내 아이를 키우는 육아관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성인이 되어있을 그 아이는 어떻게 자랐는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내 아이는 이렇게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꼭 교육열이 높은 지역의 특성만은 아니지만, 대게 남이 시켜서 하는 공부는 큰 부작용이 따른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공부니까 열심히 해야지? 이건 괜찮다. 이유를 알고 있으니 말이다.

그저 엄마가 짜준 시간표대로 열심히 공부를 하던 아이는, 자기 생각이 주체적으로 만들어지는 중요한 시기를 놓치게 되고, 시간이 한참 지나 핵폭탄 터지듯 터진다. 그리고 부모는 그동안 들인 비용에 대한 결과가 만족스럽게 나오지 않은 것을 불행이라고 생각한다.  


마지막 직장이었던 곳은, 평범한 동네였다. 특목고 입시를 준비하는 아이들 가르치는 종합학원이었다. 중1부터 꾸려진 반은 중3이 될 때까지 구성원이 거의 바뀌지 않고 그대로 이어진다. 주변 대여섯 학교의 상위권 아이들이 모여있다. 3년간 아이들의 성적은 크게 변화하지는 않았다. 상위권을 잘 유지하고, 특목고 입시에 성공하는 아이들이 많았다. 여기서 일했던 시간을 떠올리면 좋은 기억만 가득하다.

먼저, 아이들은 스스로 공부했다. 시험 3주 전부터는 주말에 자율학습을 진행하는데, 선생님들도 모두 출근해서 언제든 질문에 응했고, 오전 10시부터 오후 10시까지 대부분이 빠지지 않고 나와서 공부했다. 스스로라고 표현하는 것은, 아이들의 표정이 너무나도 밝았기 때문이다. 10시간이 넘는 시간을 학원에서 공부한다는 것이 싫을 만도 한대, 이 아이들은 즐기면서 하고 있었다. 꾀병을 부리는 아이도 없었고, 되려 아이들의 열정에 선생님들도 힘을 내서 가르쳤다.

또 하나는, 질투와 시기가 없었다는 점이다. 여러 학교 상위권 아이들이 모이다 보면 한 학교 전교 1,2,3등이 모이기도 하는데, 질투는 커녕 서로 깨워주고 챙기는 아이들이었다. 목표가 같기 때문일까. 드라마에서처럼 노트를 빼돌리는 일 따위는 일어나지 않았다.


대게의 학원들은 시험을 치르는 주가 되면 다음날 시험과목의 족보를 준비해두고 모의테스트를 치른다.  

첫 직장에서는 다음날이 수학시험인 경우 혼자 마무리하겠다며 오지 않는 아이도 더러 있었다.  적에 대해 강박이 심한 아이들이 주로 그랬다. 위염이 심한 아이도 있었고, 손톱을 물어뜯고, 자기보다 잘하는 아이들을 경계하는 아이도 있었다. 아이는 문제랑 싸우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랑 싸우고 있었고, 그게 너무 눈에 밟혀서 마음이 아팠지만, 내가 어떤 말도 해줄 수 없었다. 나를 보는 눈빛마저도 살벌한 날이 많아서, 수업 중 내 농담에 살짝 입꼬리라도 올라가면 마음이 놓이곤 했다.


학원은 아이가 더 알고 싶고, 공부하고 싶을 때 가는 곳이다.


물론 맞벌이를 해서 아이의 교육을 직접 담당할 수 없고, 아이가 혼자 집에 있는 것보다 학원에 가는 것이 안전하다면 보내는 것이 맞다. 엄마, 아빠 본인들도 과거 수학과 담쌓았는데, 아이를 가르치자니 화딱지가 나서 학원에 보내는 것도 옳은 판단이다. 하지만 무리한 예습이나, 스케줄은 피해야 한다. 아이들도 멍 때릴 시간이 필요하다.



우리 집 아이들은 1, 2학년 때는 국어, 수학 문제집을 한 학기에 한 권씩 풀고,  방학에는 수학 문제집 1권을 복습한다. 되도록이면 얇고, 아주 조금 난이도가 있는 것으로 복습하는 것이 성취감을 주기에 좋다.

3학년 이후로는 과목이 늘어서 학기 중에는 국어, 수학, 사회, 과학을 풀고,  방학에는 전과 마찬가지로 수학 문제집 1권을 복습한다. 주중에 전과목을 복습하는 것이 부담된다면 단원평가일 이틀 전부터 해당 과목만 풀리는 것도 나쁘지 않다. 방학기간 동안 못한 부분을 풀면 마무리된다.


수학 공부는 쌓이고 쌓이는 것이다. 복습을 해서 단단하게 만들어 놓지 않으면, 금방 흔들린다. 예습을 하면 남들보다 앞서있는 거 같지만, 실제 아이들은 자기가 어느 부분을 배우고 있는지 조차도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 나의 경우, 방학이 시작되면 바로 다음 학기 교재로 강의를 시작했다. 아이들은 분명히 기억하지 못한다. 괜찮아~아직 세 번 더 있어라고 안심시켜준다. 그리고 학기가 시작되어, 학교에서 한번 더 배우고, 학원에 와서 똑같은 내용을 듣는다. 3번 들었을 때쯤 이제 조금 알 것 같다는 눈빛을 보낸다. 그리고 시험대비 주간이 되면 그제야 가르치는 내가 안심이 된다. 습은 성적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아이들도 당장 시험이 아니라서 그러는 건지, 예습을 하는 시간엔 듣고는 있지만 다음날이 되면 금방 잊어버리고 해맑게 웃어 보이곤 했다. 설레는 방학이라? 그런가.. 아니면 어차피 다시 배울 거니까 긴장이 없어서 그러는 걸까)


수학을 잘하지 못하는 것 같아서, 불안해서 남들보다 일찍 출발하려고 앞만 본다면, 신발끈이 풀어진 것도 모르고  달리다 넘어지게 될지도 모른다. 복습을 해야 완전한 아이 것으로 남는다. 뒤쳐지는 것이 아니다. 원장 선생님의 신뢰가 있었기에 나는 새로운 시도도 해보았다. 난도가 높은 문제집으로 복습을 하는 특강을 개설했고, 아이들의 반응이 좋아 그 후에도 계속 진행했다. 아이들에게 자신감이 더 붙는 수업이라 나도 뿌듯했다.



내가 수학을 좋아하고, 가르칠 수 있어서 아이를 학원에 보내지 않는 것도 있다. 경제적 여유가 없는 것도 아니라고는 못한다. (주변을 보니, 외동아들에게 사교육비 백만 원은 아무것도 아니더라) 아이가 예민한 것도 한몫한다.


 그렇지만, 나는 아이의 교육에 있어서 불안하지 않다.


아이가 어렸을 적 내가 가르쳐 준 것 이라고는, 어린이집, 유치원에 늦지 않고 등원하는 것, 바르게 앉아 돌아다니지 않고 밥을 먹는 것, 물건을 잃어버리지 않고 잘 챙기는 것, 거의 비슷한 시간에 자고 일어나는 것처럼 일상생활에서 패턴을 잡아주고, 익히는 것이 전부였다. 육아의 궁극적인 목적이 '독립'이라는 오은영 선생님 말씀처럼 아이가 혼자서 해낼 수 있는 힘을 키워주는데 집중했다. 아직 영어학원도 보내지 않는 나를, 이상한 엄마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나를 특이하다고 보는 시선도 있었다. 나의 경험을 말해주어도, 어차피 불안한 엄마들은 학원에 전화를 걸어 상담을 받을 것이다.



나는 아이가 학교에 가기 싫은 날 없이, 학교를 잘 다녀오는 것만으로도 고맙다. 매일 핸드폰 게임을 2 시간하고 그것도 모자라 자기가 캐릭터가 된 것 마냥 집을 누비고 다녀도 그저 웃고 있는 것이 또 고맙다. 문제집 풀자~ 한마디에 군소리 없이 자리에 앉아주는 아이들은 더 고맙다.


나중에 아이가 내 뒤통수를 쳤다고 생각하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내 아이가 행복한지 들여다보는 부모가 많아지길 바란다.


매거진의 이전글 이름의 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