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에토프 Aug 08. 2021

좀 힘든 아이 인건 아시죠?

예민한 아이의 정글에서 살아남기-1

첫째가 입학을 앞두고 있던 2월.

주변에 초등학생을 둔 학부모들과는 딱히 교류가 없던 나는 엄청난 불안에 떨고 있었다. 1학년이 몇 교시 수업을 하고 몇 시에 끝나는지 조차 몰랐다. 급하게  둘째 친구 엄마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커피 한잔을 사고 나서야 나는 안심할 수 있었다.

언니도 아들, 딸을 키우고 있었는데, 아들은 장난꾸러기에 존재감이 확실한 스타일이었다. 시험일도 모르고 학교에 갔지만, 시험은 잘 치르는 똑똑한 아이이기도 했다. 언니에게 이것저것 물을 것도 없었다. 물을 것도 아는 게 있어야 묻는 것이다. 언니는 일단, 엄마든 아이든 최대한 있는 듯 없는 듯 지내라고 했다. 학교는 정글이라고 했. 예민한 아이라는 걸 미리 말하면 선생님이 선입을 가지고 볼 수 있으니 미리 말하는 건 좋지 않은 것 같다고 했다. 언니도 역시 학습을 위한 학원은 보내지 않았고, 4학년인 아들이 피아노가 배우고 싶다고 해서 피아노 학원만 보내는 중이었다. 나와 비슷한 육아관을 가지고 있는 언니와 얘기를 하니 많이 안심이 되었다.



입학식이 끝나고, 일주일 간은 아이와 함께 등교하는 것이 가능했다. 교실에 가는 것을 도와주는데, 첫째가 이틀 뒤, 이제는 괜찮다며, 교실에 혼자 가겠다고 했다. 일주일 정도 지났을까. 나는 아이가 학교에 관해 별말을 하지 않아 잘 지내는 줄 알았다.



선생님께 전화가 왔다.

"만복이가 별말 안 하던가요? 저희 반에 철수라는 아이가 있는데, 굉장히 예민한 친구예요. 근데 그 아이랑 만복이가 앞뒤 번호라 부딪히는 일이 좀 있었거든요. 식당에서 급식을 먹는데 만복이가 자리에서 일어나다가 철수 다리를 쳐서 철수가 굉장히 불쾌해했어요. 그리고 만복이가 때린 건 아니고 어깨에  손을 얹기만 해도 철수가 스킨십을 너무 싫어해서 일단 친구가 싫어하니까 조심해줬으면 한다고 일러두고. 만복이에게 친구들 앞에서 사과하라고 시켰더니, 안 할 줄 알았는데, 철수에게 사과를 하더라고요. 그래서 일마무리됐는데, 철수 어머님이 통화를 원하셔서요. 번호를 알려드려도 될까요?"



여기에는 여러 가지 잘못된 포인트가 있었다.

나는 일단 흥분이 돼서 알겠다고 하고, 머리를 굴렸으나 답이 나오지 않았다. 도움을 받았던 언니에게 연락을 했다. 일주일 만에 전화가 왔노라고. 상대 아이 엄마가 통화를 원한다고.

언니는 그런 일은 보통 선생님선에서 긋는 게 맞는 건데, 그래도 큰일은 아닌 거 같다며 일단 통화해보라고 했다. 떨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철수 엄마와 대화를 했다.


"안녕하세요 철수 엄마예요. 대충 얘기는 들으셨죠, 호호호. 아니 제가 아이를 늦게 낳아서 나이가 좀 많아요. 그리고 저희 애는 또 굉장히 예민해서 위염 걸려서 학교 못 간 날도 있고 굉장히 힘들어했거든요. 계속 만복이 얘기를 해서 제가 아침에 따라 들어가 보니까 체격이 왜소하고 야리야리한 아이가 있는 거예요. 저는 엄청 덩치 큰아이일 줄 알았거든요~제가 철수가 스킨십도 불편해하고 그러니까 조심해달라고 그랬더니 알겠다고 대답도 잘하더라고요. 같은 동네고 하니까 놀이터에서 만나서 같이 놀기도 하고 친하게 지내자고 전화번호 받은 거예요~"


어디서부터 하나하나 짚어가며 틀렸는지 설명할 틈도 없었고, 아이는 내게 아무런 정보도 주지 않아 해명할 수도 없었다.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평소 만복이는 친구들이 때려도 참는 아이였다. 친구들이 자기랑 안 놀아줄까 봐 싸우지 않는 아이다. 두 통화를 끝내고 하나하나 짚어가며 화가 나기 시작했다. 


"만복아 엄마가 화난 게 아니고, 네가 엄마한테 학교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설명을 해줘야 엄마가 너를 지켜줄  있어. 철수 다리를 어쩌다가 찬 거야?"


"식당 의자가 가까이 붙어 있어서 밥 다 먹고 나오다가 모르고 찼는데, 철수가 화가 많이 났어"


"그래서 사과한 거야?"


""


"철수랑 선생님이랑 셋만 있었어?"


"아니, 아이들 다 보고 있었는데 교실에서 미안하다고 했어."


정글이 이런 거구나 싶었다.

모르고 친 건데 굳이 아이들 다 있는 곳에서 사과를 시킬 필요가 있었을까. 보통 이런 일들은 따로 불러내어 마무리짓는다고 들었다. 사과를 안 할 줄 알았는데 라는 표현은, 선생님은 대체 만복이를 어떻게 본 걸까? 철수 엄마는 또 뭔가? 덩치 큰 아이고 자기 아들을 괴롭히는 줄 알았는데 얼굴이 하얀 마른 아이가 알겠다고 대답까지 차분하게 잘하니까 놀랐다고? 머리가 멍해져서 한동안 너무 힘들었다. 그런데 만복이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친구들 앞에서 철수에게 사과한 것도 별일이 아니라고 했다. 평소에도 동생이랑 오다가다 터치하게 되거나, 의도치 않게 불편하게 만들 때도 네가 모르고 그랬어도, 상대방이 기분 나쁘면 사과하는 것이라고 가르쳤던 내 탓도 있다.



얼마 뒤, 선생님께 또 전화가 왔다.


"만복이가 그림 그리는 거를 싫어하네요. 안 한다고 표현을 강하게 하는 아이는 제 교직생활 동안 처음이라서요. 만복이가 좀 힘든 아이 인건 아시죠?"

힘든 아이라니.. 나 스스로도 힘든 아이인걸 알지만 그 단어가 타인의 입에서 나오는 것은 그다지 기분 좋은 일은 아니다.


"네 키우기 힘들긴 하죠, 아이와 대화해볼게요."



초임일 때 가르친 아이가 내 나이 정도는 됐을법한 연세로 보였던 선생님이다. 이런 아이가 처음이라니.

1학년은 만들고, 그리고, 발표하는 수업이 많다. 놀이식 수업이 대부분인데. 남자아이들은 더러 힘들어하기도 한다. 만복이에게 또 물었다.


"그림 그리기 싫어서 뭐라고 말했어?"

"안 할래요."

"몇 번 그랬어?"

"2번?"


귀찮아서가 아니었다. 그림을 보고 평가를 받는 기분이 싫었던 것이었다. 평소에 관심받는 걸 싫어하는 아이였다.

아는 언니는 만복이가 정말 그랬냐며, 나처럼 놀랐다. 그리고는 멋지다고 했다. 강압적일 수도 있는 교실 분위기일 텐데 안 한다고 표현할 수 있다는 게 좋은 것 같다고 했다. 도 약간은 그렇게 생각했다.  복잡한 마음은 대체 뭘까.


"선생님, 만복이가 평가받는 시선이 무서워서 그리는 게 싫었대요. 그런데, 계속 어르고 달래시면  또 관심받게 되는 거라 악순환이거든요. 다른 아이들 수업도 이어가야 하니까 무시해보세요. 5분, 10 분 나면  금방 어울려서 하게 돼요. 3개월 안에도 학교생활이 어렵다고 판단되면 저도 상담센터 도움을 받을게요."


만복이는 대충 하는 법이 없다.

나는 너무 하기 싫으면 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주지 못했다. 그냥 대충 그려도 괜찮다고 했다. 대충 하는 법이 없는 아이에게.. 대충 그려도 괜찮다고 끄적이기라도 해 달라고.

그리고, 만복이는 충분히 자기가 안전하다고 생각할 때에 움직인다. 보통 5분이면, 무리에 어울린다. 유치원 시절에는, 선생님께서 미리 파악하시고 기다려주신 덕에 큰 어려움이 없었다.


또 전화가 왔다. 주일마다 통화를 한다.


"오늘은 짝이랑 손뼉 치는 놀이시간이 있었는데, 만복이가 안 한다고 해서 영희가 굉장히 속상해했어요. 영희가 수업시간에 적극적인 아이인데 저도 속상하더라고요. 그리고 화가 나면 공룡 흉내를 내고 책상에도 올라가려고 하는데 집에서는 어떤가요?"


영희는 4년을 알고 지낸 동네 친구이기도 하다. 왜 그랬는지 아이에게 묻고 나서야 나는 아이의 행동이 이해됐다. 1학년은 따라 쓰기가 있다. 만복이는 한 글자 쓰는데 50초가 걸린다. 거의 대부분이 쉬는 시간 전에 그것을 끝냈는데 만복이는 정성스럽게 한 글자 한 글자 쓰고 있었다. 영희가 만복이에게 한마디 했단다.

"야, 빨리빨리 좀 써!"

내가 하지 않는 잔소리를 영희가 했다.

"그랬구나, 근데 만복이는 이걸 왜 이렇게 정성스럽게 써?"

"선생님이 대충 쓰거나 너무 빨리 써서 글씨 안 예쁘면 다시 쓰라고 하거든."


사실 FM이다. 선생님은 아이에게 왜 그러는지 듣지 못하신 걸까. 그냥 여유 있게 내버려 두면 1시간 반이 걸려서 3쪽을 완벽하게 써낸다. 솔직히 답답하다. 그래도 대충 쓰는 것이 더 어려운 아이라 입 꾹 닫고 참는다. 저학년 때는 남자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이 속상할 일이 더러 생긴다. 아무래도 여자아이들이 남자아이들보다 빠르고, 똑소리 나다 보니 학교에도 내가 아닌 다른 엄마가 존재하는 것 같을 때도 있다. 나도 사실 어렸을 적 다른 엄마였다...



그리고 아무리 화가 나고 억울해도 집에서는 전혀 난폭한 행동들을 하지 않았다. 화가 나도 울고 있지 물건을 던지거나, 문을 쾅 닫거나, 소리를 빽 지르지도 않는다. 그런 아이가 학교에서만 유독 다른 아이가 되어있었다. 남편은 학교에서만 그렇다고 하면, 선생님이 좋아하지 않을 것 같다고 했다. 그렇지만 영희의 편 선생님에게 더 이상 만복이가 이런 시선으로 보이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어쩌나 그저 아이가 평소대로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는 것 말고는 해결책이 따로 없었다. 유치원 다닐 때도 전혀 그런 적이 없을뿐더러, 오래 알고 지낸 주위 엄마들도 만복이의 변화를 의아해했다. 그러다 불현듯 언니가 해준 말이 생각났다. 나에게 큰 힘이 됐던 언니도 아들이 새 학기마다 긴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는데, 3학년 때가 돼서야 선생님이 알려주셨다고 했다.

 이것도 그런 반응이었을까. 낯가림이 심한 편이라 학교 가는 것이 힘들 줄 알았다. 이는 생각 외로 학교 가기 싫다고 말한 적도 없고, 하교할 때는 신나게 친구 손을 잡고 나오길래 적응이 됐다고 생각했다. 학교에서 매 수업시간이 얼마나 불편했을까. 그런데도 친구가 좋아서 학교에 갔던 아이를 생각하니 마음이 했다.  

다행히도 입학한 지 2개월이 되기 전에 원래의 FM만복이로 돌아와서, 선생님이 전화하시는 일도  없었고, 한 동안은 평온한 학교생활을 이어갔다.

그리고 나는, 폐렴을 앓게 되었다.

학교는 애가 갔는데, 내가 아팠다. 입원은 불가능해서 2주간 2가지 항생제를 털어 넣었다. 의사 선생님이 30대는 거의 안 걸리는데, 그래도 젊어서 빨리 회복한다고 하셨다. 육아 인생 중 가장 피 말렸던 시간이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