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서 이야기-1

착한아이컴플렉스

by 에토프

다른 사람들은 현서가 유복한 가정에서 반듯하게 자란 것 같다고들 한다. 현서는 이 말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겠다. 서는 끔씩 유복한 가정에서 자랐으면 어땠을까 상상하곤 했다.



현서가 다섯 살 때쯤, 현서의 아버지는 직장에서 해고되었다. 마음이 여리고, 사람 좋아하고, 거절 못하는 아버지는 매일, 매일 술 약속이 있었다. 현서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현서의 어머니는 술 때문에 발목 잡힐 것 같은 아버지에게 타일러도 보고, 애원도 해보았지만 그는 바뀌지 않았다. 그리고 현서는 자세히는 알지 못했지만, 아버지의 해고가 술 때문이라는 것은 확실히 알았다. 현서의 아버지는 가게를 차리고 싶다며, 이것 저것 배우러 다니느라 바빴다. 생활비를 벌어올 생각은 없었다.


"알아 현서 이제 학교 가면 내가 일하러 나가도 되지. 근데 언니, 나는 내가 이렇게 돈 안 벌고 버텨야 저 사람이 돈 벌 생각을 할 것 같아서 그래. 불안해도 어쩌겠어."


생활비를 벌어오지 않는 아버지와 불안하지만 생활비를 벌어오지 않는 어머니 사이에서 현서는 눈칫밥을 먹으며 자랐다. 현서의 아버지는 친구가 많았던 터라 일이 없을 때도 술자리는 이어졌다. 그는 할 말이 얼마나 많았던지, 술에 취해 들어오는 날마다 거실 한가운데에 앉아, 허공에 대고 자신의 얘기를 해댔다. 현서는 아버지의 목소리에 잠이 깼다. 다시 자려고 해 보지만, 잘 수가 없었다. 현서의 어머니가 그날은 참을 수 없었던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싸움이 시작됐다. 예전처럼 이해만 하고 지내기엔 시간이 너무 흐른 탓일까. 현서는 귀를 막았지만 밖에 들려오는 소리는 너무나도 선명했다. 유리 깨지는 소리도 나고, 둔탁한 소리도 여러 번 났다. 큰소리로 울고 싶지만 팔목으로 입을 막으며 이불속에서 혼자 하염없이 울었다. 두 시간이 지나서야 싸움이 끝이 났는지 조용해졌고, 현관문 닫히는 소리가 났다. 현서는 엄마가 자기만 두고 도망갔을까 봐 무서워서 재빨리 방에서 나왔다. 거실에는 온갖 물건들이 어지럽게 놓여있고, 현서의 어머니는 안방에 앉아 서럽게 울고 있었다.


"엄마, 울지 마..."


아이의 말에 더 크게 울음이 터진다.



한 달에 두세 번은 그렇게 치열한 싸움이 일어났다. 이불속에서 울던 현서는 어느샌가 눈에서 눈물도 나지 않았다. 작은아이의 마음속에서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자라나고 있었다.

또 전쟁이 끝났고, 현관문 닫히는 소리가 났다. 현서는 방문을 열고, 울고 있는 어머니에게 가서 말한다.


"엄마, 이혼해. 왜 아빠랑 살아? 그냥 이혼해."


9살 현서의 입에서 이혼이라는 단어가 나온다. 현서의 어머니는 자신의 가슴을 꽉쥔 주먹으로 세게 두드리며 울부짖는다.




현서가 청소년이 되고서는, 예전처럼 크게 부부싸움이 일어나지는 않았다. 현서의 아버지는 여전히 직장이 자주 바뀌는 불안한 삶을 이어갔고, 대신 현서의 어머니는 현서가 10살이 되던 해부터 음향기기에 들어가는 부품을 만드는 공장에 나가기 시작했다. 현서의 아버지가 술을 거하게 먹고 들어오는 날엔 현서의 어머니는 안방 문을 굳게 잠그고 나오지 않았다. 그가 새벽 2시가 넘도록 집에 오지 않아도, 이제 그에게 전화를 걸어 어디냐고, 언제 올 거냐고 묻지 않는다. 현서의 어머니는 미처 몰랐다. 술주정을 피해 안전한 둥지에 있는 동안, 자신의 아이는 혼자 힘들게 앓고 있었다. 독서실에 갈 돈 마저 아껴야 했던 아이는 남자의 술에 취한 목소리를 들을 때마다, 바들바들 떨리는 손을 진정시키며 입술을 세게 깨물고 공부하려고 안간힘을 썼다.

서도 대학입시를 치러야 하는 시기가 됐다. 영문학과에 지원하기로 했는데, 학교가 문제였다. 다니고 싶었던 학교가 있었지만 학비가 너무나도 비싼 곳이었고, 수석 장학금을 받을 만한 성적은 아녔기에, 부모님 주머니 사정을 생각해서 학비가 제일 싼 곳으로 결정했다. 다행히 집에서 한 시간 이내로 걸리는 곳이었다.


'합격이다!'


제일 안전한 곳에 합격을 했다. 현서는 서둘러 아르바이트 자리를 검색했다.


"오늘 같은 날은 친구들 만나서 놀고 그래~~"


"엄마, 요즘 알바 구하기 엄청 힘들대~ 얼른 알아봐야지. 이러다 다 뺏겨."


입학 등록금은 해결됐지만, 용돈마저 받을 수는 없었다. 게다가 다음 학기 등록금도 어찌 될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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