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우 이야기-2

너도 아직 좋고, 그 사람도 좋아

by 에토프

연우는 그 사람을 만나기 전까지 모태솔로의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 사람과 그 사람의 친구는 연우를 동시에 마음에 들어 했고, 우정에 금이 가는 일이 일어날 뻔했지만 한 친구의 쿨한 포기로 연우는 모태솔로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

그 사람도 연우처럼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와 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그 사람은 부유한 집에 외동으로 태어나 직장인들이 살 것 같은 오피스텔에서 자취를 했고, 한 번도 아르바이트를 해서 용돈을 벌어본 적도 없었다. 연우는 그 사람 덕에 잠시나마 자신의 도망처였던 공부를 내려놓고, 새로운 경험들을 접해 볼 수 있었다.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스테이크와 랍스터를 먹고, 생전 처음 패밀리 레스토랑에도 가보았다. 연우는 수학 과외를 하면서 용돈을 벌고 있던 터라 우의 지갑 사정도 나쁘지는 않았다. 부자동네에 어린이들을 상대로 가정 수업 제안이 들어왔고, 입소문이 나서 제법 많은 돈을 벌고 있었다. 연우는 아버지 월급과 엇비슷한 돈은 어머니에게 드리고 자기가 넉넉히 쓸 비용만 가졌다. 그동안 누리지 못 한 것들을 누리며 자유를 맛보았다.


"뭘 이렇게 많이 보냈어~"


"저 쓸 만큼은 넉넉히 있어요~괜찮아요~"


"내가 잘 저축해 놓을게."


"아니에요. 저 많이 버니까 어머니 쓰세요. 이제 좀 쓰고 사셔도 돼요~"


그만 아끼시고, 사고 싶은 거, 먹고 싶은 거, 남들 하는 것들을 어머니도 누리셨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지만, 연우는 알고 있었다. 어차피 못쓰고 모아두실 거라는 것을.


연우는 걱정 없이 3학년 대학생활을 마무리하고, 4학년이 되어서야 임용고시 준비에 매달렸다.


'너무 실컷 놀기만 했던 걸까. '


연우는 매일 본인이 공부한 양과 시간을 적어두고, 일기를 쓰며 합격을 위해 노력했다. 그 사람은 국어과 임용고시를 비하고 있던 터라 같이 공부하며 서로를 응원했다.


연우는 2차 임용에서 실패를 맛보았다. 인생에서 처음 맛본 실패였다. 그동안 연우의 인생그래프엔 굴곡이 없었다. 그래서인지 연우는 그 충격에서 쉽게 빠져나올 수 없었다.


"괜찮아~넌 실력 있으니까 기간제에 지원해도 금방 뽑힐 거야. 사립학교 기간제 교사로 지내다가 정교사 자리를 노려보자. 교생실습 때도 현직 교사만큼 잘했다며. 자신감 가져~!!"


그 사람은 1차에 합격했으나, 부모님께서 학원을 차려준다고 하셔서 2차 시험엔 응시하지 않았다. 여유롭게 살아와서 일까, 연우는 그때 처음 그들 사이의 빈 공간을 느꼈다.



그 사람은 졸업 후, 학원 개업 준비로 바빴고, 연우는 기간제 교사 채용 면접을 다니느라 쉴 새 없이 뛰어다녔다. 매일 붙어있던 그들은 많이 만나야 한 달에 네 번 볼 수 있는 사이가 되어버렸다. 그러다 연우는 운이 좋게도 2년 뒤면 정교사 자리가 생기는 사립고등학교에 기간제 교사로 채용되었다.


"나 합격했대."


"거봐 어떻게든 된다니까~축하해. 우리 이번 주에 맛있는 거 먹자. 아. 너 좋아하는 그 집에 가자."


그 사람과 데이트 약속을 잡고, 기쁜 마음으로 부모님에게 소식을 알렸다.


"그래, 고생했네~ 마음고생 심했지?"


"요즘 아버지 잔소리는 줄었어요?"


"에효, 어제도 걔한테 어찌나 큰소리를 내는지. 나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갑자기 잘 다니던 학교를 그만두고, 편입을 한다잖아."


그 집에 있지 않는대도 연우의 마음이 갑갑해졌다. 근심 가득한 어머니의 목소리를 듣고 나니 어머니가 더 그리워졌다.


"다음 공휴일에 시간 되면 내려갈게요."


연우는 어머니가 해주신 닭갈비를 좋아했다. 그래서 어머니 생각이 날 때면 그 사람과 함께 닭갈비집에 가곤 했다.


'내일이면 보네. 정말 오랜만에 보는 것 같다.'


그 사람과의 만남을 기다리며, 일기를 쓰던 연우에게 대학 선배가 전화를 걸어왔다.


"어쩐 일이세요? 잘 지내시죠?"


"너희 헤어졌어?"


"네?"


"아니, 나도 고민을 해봤는데, 알려주는 게 맞는 것 같아서. 글쎄, 얼마 전에 백화점을 갔는데 말이야."


다른 사람에게 옷을 골라주고, 다정하게 팔짱을 끼며, 서로의 얼굴을 쓰다듬어 주는 그 사람을 봤다고 했다.

연우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한 번도 의심한 적 없었던 사랑이었는데 , 한참을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그래, 내일 만나서 확인하자.'


멀리서 그 사람이 꽃다발을 들고 연우에게 뛰어간다. 연우는 복잡한 심경을 들킬까 봐 서둘러 식당으로 들어가자고 했다.


"꽃다발 예쁘지, 이거사면서 얼마나 기분 좋았는지 알아?"


연우는 언제 얘기를 꺼내야 할지 생각했다. 웃으며 얘기하는 그 사람을 보며, 사실이 아니길 빌었다. 그리고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나 말고 다른 사람도 만나니?"


"다 알고 있었구나?...."


부정도 아니고, 강한 부정도 아니었다. 상처를 주는 사람의 태도는 너무나도 당당했다.


"너랑 매일 붙어있다가 자주 보기도 힘들어지니까. 나도 외로워서 그랬어. 근데 나. 너도 아직 좋고, 그 사람도 좋아서 말을 못 했어."


그 사람은 여유로웠던 환경만큼, 마음에 사랑을 품는 자리도 넉넉했다.


"뭐라고?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알잖아. 나 거짓말 못하는 거. 네가 괜찮다고 하면 난 둘 다 만나고 싶어."


연우는 진짜 사랑이라고 믿었던 첫사랑에게 평범하지 않은 제안을 받고 머리가 새하얘졌다.


'정신 차리자. 정신 차리자.'


연우는 그 사람에게 받은 꽃다발을 맛있게 익은 철판 닭갈비 위에 뭉개버렸다.


"내 대답은 이거야."


연우는 식당 문을 박차고 나왔다. 그 사람과 그렇게 평범하지 않은 이별을 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집인데... 이 집도 못 오겠네 이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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