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이 좋게도 현서는 집 앞 편의점에서 주말 야간 알바를 하게 됐다. 금요일, 토요일, 일요일 밤 10시부터 새벽 6시까지 밤낮이 바뀐 생활이었지만 시간도 아끼고, 시급도 쏠쏠한 편이었다. 학기 중에도 무리 없이 학업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며, 바쁜 1학기를 보냈다.
그런 현서에게 연애는 사치였다. 당장 2학기 등록금부터 모아야 했다. 그러던 중 동네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삼촌이 하는 기차 모형 가게에 일손이 부족하다며, 방학 동안 같이 일해보자는 전화였다.
현서는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친구가 알려준 주소를 찾아가 사무실 문을 열자마자 금빛을 두른 빨간 기차가 한눈에 들어왔다. 한눈에 봐도 비싸 보였다.
'일, 십, 백, 천, 만, 십만?'
현서가 한 달 동안 편의점 아르바이트로 버는 돈으로 기차 모형 네 량을 살 수 있었다.
"현서 학생? 반가워요. 다른 친구들은 마실 것 좀 사러 나갔어요. 뭐 하는 건지 대충 얘기는 들었죠?"
"아니요. 저는 아르바이트할게 필요해서 그냥 알겠다고 했거든요."
"눈빛부터 엄청 열심히 할 것 같은 자세가 보이는데요? 조카가 현서 학생이 꼼꼼하고, 센스도 있다면서 제일 먼저 연락해 보더라고요. 저기 저 기차 저게 다 납땜해서 붙여서 만든 거예요. 납땜해본 적 없죠? 그렇게 어렵지는 않아요. 그리고 꼼꼼하게 잘하면 시급 더 올려줄게요."
현서는 그날부터 평일엔 기차 모형 납땜을 하고 금요일 밤부터는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했다. 앉아서 하는 작업이라 힘들지 않을 거라 생각했지만, 처음 하는 노동이 쉽지만은 않았다. 꼼짝 않고 앉아서 아주 작은 부분까지 납땜을 하려니, 눈도 피곤하고, 고개도 뻐근해졌다. 이튿날부터는 파스를 붙이고 일을 나갔다. 신나는 음악을 틀어놓고 단순 노동을 하는데도 시간이 더디 가고, 엉덩이도 아파왔다. 현서는 순간 아버지 생각이 나서 눈물이 핑 돌았다.
'이렇게 아빠도 힘드셨겠구나... 만만하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녔네.'
해보기 전에는 몰랐다.
'온몸의 신경을 곤두세우고 정교함을 요구하는 이 작업이 왜 단순노동이라고 하는 거야? 엄마는 이일을 10년 넘게 어떻게 해온 거야?'
매일 어머니의 어깨에 붙어있던 파스가 떠올랐다. 현서는 끝내 눈물이 왈칵 쏟아져서, 서둘러 화장실로 뛰어갔다. 부모님에 대한 고마움과 원망이 눈물이 되어 나왔다. 현서는 그렇게 한참을 울었다.
'오늘은 아빠가 좋아하는 걸로 사가야겠다!'
세수를 하고 심호흡을 하며, 뻘게진 눈을 사람들에게 들킬까 창피했지만, 애써 거울을 보고 미소 지어보았다.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후우...'
현서는 자리에 돌아와 남은 작업을 열심히 끝냈다. 몸이 아픈 것도 잊고 작업에만 집중했다.
그렇게 어느덧 여름도 지나가고 있었다. 현서는 바다에 한번 가보지도 못하고 여름을 보내야 했다.
"현서야, 이틀 뒤에 등록금 내는 날이지? 엄마한테 왜 말 안 했어?"
"그 돈 다 모아 났어. 걱정 말고 나만 믿어. 나중에 모자라면 말할게. 진짜야~~"
"그렇게 집에서 얼굴 한번 보기 힘들더니 열심히도 모았나 보네? 장하다 장해~~"
현서는 보았다. 현서 어머니의 눈이 반짝이고 있던 것을. 현서는 모른척하고 시선을 돌렸다.
"아, 말할게 또 있었는데 깜빡할뻔했네. 엄마 일하는 곳 사장님이 너 영어 과외해보면 어떻겠냐고 하시네? 그 집 아이가 중학교 1학년이라던데. 기차 모형 이제 끝났으니까 평일에 시간이 나지 않을까?"
학창 시절에도 영어 하나는 자신 있었던 현서였다. 친구들은 모르는 문제가 생기면 현서에게 가져와 묻곤 했다.
"해본 적이 없어서 겁나기는 하는데, 생각해볼게."
현서는 그동안 자신이 공부해온 방법을 쭉 생각해보았다.
'해볼까? 중1인데 고등학생보다는 해볼 만하지 않겠어?'
현서는 어머니에게 의견을 전달하고, 예상수입을 계산해보았다. 학비도 내고, 생활비까지 과외 하나에 넉넉하게 생활이 가능했다.
'성인 되면 좋을 줄 알았는데, 그런 것도 아닌 것 같아. 돈이나 빨리 많이 벌고 싶다..'
현서는 남들 다하는 소개팅, 미팅도 관심 없었다. 어서 빨리 대학생의 신분에서 직장인의 신분이 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