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이별을 당하고, 연우는 감정을 정리할 새도 없이 일터로 나갔다. 한 번의 실패는 맛보았지만, 여태껏 한길만을 보고 지금까지 달려왔던 연우다. 꿈꿔오던 일이 현실이 되니, 다 이룬 것 같았다. 적어도 일주일 동안은 그랬다.
교생 실습할 때 어느 정도 업무를 파악했다고 생각했는데, 아침에 출근해서 노트북을 켜는 순간 보이는 30개의 알림을 보며, 연우는 이 길이 그 길이 맞는지 헷갈리곤 했다.
'아니야, 할 수 있어 정신 차리자.'
밀려드는 공문을 처리하고, 종이 울리면 허겁지겁 교과서를 챙겨 들고 교실로 향한다.
'왜 나만 바쁜 것 같지.'
다른 교사들은 여유롭게 차도 마시고, 책도 보고 있는데, 연우는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물 한 모금 마실 시간도 없었다.
"선생님, 왜 이렇게 열심히 해요? 대충대충 해요. 누가 보면 부장 선생님인 줄 알겠네"
'대충대충이 어떻게 하라는 거지..'
연우는 몰라서 계속 열심히 하기만 했다.
자기 일도 아닌데, 자기 일인 줄 알고 열심히 했다.
"선생님도 내년에 정교사 지원하실 거죠?"
"네, 그래야죠."
연우는 딱히 정교사 때문에 열심히 한 것은 아니다. 지금까지 그렇게 자신을 괴롭히며 살아왔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불안했고, 누워서 가만히 쉬는 법이 없었다.
그렇게 두 학기를 쉴 새 없이 달려오는 동안 연애의 감정도 잊고, 일만 했다. 문득문득 그 사람이 생각났지만, 그와 함께한 모두를 부정하며, 잊으려고 했다.
"선생님, 바쁘세요?"
"동욱이구나? 왜? 무슨 일 있어?"
"선생님 소개팅하실래요?"
"응? 소개팅?"
"제 영어 과외선생님이신대요. 사진 보여드릴까요? 허락받았어요~"
연우는 당황스러웠다. 생각할 틈도 없이 엄청난 추진력을 가진 학생에게 설득당하고 있었다. 동욱이는 반장이었는데, 친구들에게도 인기가 많고, 선생님들에게 예의 바른 학생으로 소문이 나있는 친구였다.
연우는 사진을 보는 순간 느낌이 좋았다.
"그래. 할게"
"번호 알려주시면 저희 과외선생님한테 전달하고 연락드리라고 할게요."
"근데, 다른 선생님들도 계신대 왜 나한테 주선하는 거야?"
"어울려서요. 사실 제가 이어준 커플이 꽤 많거든요."
평소, 낯가림이 심한 터라 소개팅은 생각도 못한 연우였다.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모르겠다. 이제 곧 방학이라 바쁜 일도 없는데 나가보지 뭐.'
동욱의 친구가 동욱이에게 묻는다.
"야, 근데 선생님 소개팅 날도 저렇게 입고 나가시는 건 아니겠지?"
"그렇지 않을까 1년 내내 슬랙스에 셔츠만 입으시는대. 그리고 괜찮아."
"뭐가 괜찮아? 안 괜찮은 것 같은데?"
"어울려 우리 과외선생님은 패션센스가 좋거든~"
연우는 평소 꾸미기에 관심이 없었다. 깔끔하고 단정한 게 연우의 스타일이었다. 항상 로퍼나 운동화에 어두운 색 슬랙스, 각 잡힌 셔츠, 그리고 백팩. 검은색 가죽 손목시계가 전부였다.
연우는 옷은 해져야 사는 것이었고, 밥은 살기 위해 먹는 것 외엔 별 의미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