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부터 자기가 잘할 수 있는 건 공부가 유일했던 연우는 집에 있는 것이 불편했다. 항상 본의 아니게 연우의 성적이 동생에게 상처를 줬다. 연우는 그저 공부가 재미있었을 뿐인데, 아버지는 돈을 더 들이고도 진척이 없는 동생을 잔인한 말로 괴롭혔다. 어머니는 동생을 임신했을 때 잘 챙겨 먹지 않아 애를 낳을 힘도 없었다고 했다. 그래서 동생이 똑똑하지 않은 것 같다며 늘 자책했다. 그런 가족들의 모습을 조금이라도 덜 마주치고 싶어서, 항상 독서실에 마지막까지 남아 공부하고, 차가운 밤공기를 마시며 집에 가곤 했다. 잠이 부족한 탓에 툭하면 코피가 났지만, 그래도 집에 있는 것이 더 공포스러웠다. 연우는 어떻게든 이들을 피해 서울에 있는 대학교로 가야 했다.
수능이 끝났다. 연우는 평소 해오던 대로 잘 해냈다.
학교 현수막에 걸릴만한 명문대 수학교육과에 수석으로 합격했다. 4년 치 장학금에 기숙사까지 제공된다고 한다. 연우는 중학생 때부터 수학교사 말고는 다른 꿈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연우 아버지의 핸드폰이 수시로 울린다. 축하전화가 끝이 없다. 동생에게 잔인한 말을 퍼붓던 그는 밖에서는 다정하고, 예의 있고, 배려있는 사람이었다.
"그럼요, 좋죠~ 에이~우리 연우가 고생이 많았죠. 그래요~다음에 밥 살게요. 전화 고마워요"
집전화도 끊기 무섭게 계속 울려댄다. 친척들의 축하 전화다. 어머니는 기쁘기도 하지만, 타지에서 혼자 살 자식을 생각하니 걱정이 앞선다.
연우의 이삿날. 동생은 집에 있겠다고 했다. 연우도 그게 마음이 편했다. 서울에 가는 차 안에서 어떤 말이 오갈지 알 것 같았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새벽부터 일어나 연우의 짐을 확인하고 또 확인한다. 영양제도 잊지 않고 챙겨 넣는다.
'드디어 이 집에서 탈출하다니!'
연우는 기뻤지만 어머니의 근심 어린 얼굴을 보니 티를 낼 수가 없었다. 서울로 가는 차 안에서 어머니와 시시콜콜한 얘기를 나누다 보니 금세 학교 기숙사에 도착했다.
짐을 하나둘 꺼내다 보니 꽤 많다. 연우의 부모님은 기숙사가 새 건물 같고 좋다며 안심했다.
연우와 같은 방을 쓰는 학생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물건을 옮기고 이불도 침대에 가지런히 정리해 놓는다.
"근데 너 혼자 방 쓰다가 모르는 사람이랑 쓰려면 불편하지 않겠어? 나중에라도 이상한 사람이거든 자취나 하숙으로 알아봐도 되니까 말해~"
연우는 낯선 사람과의 동거가 싫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제공해주는 기숙사를 거절할 형편은 못됐다.
"네, 그럴게요."
짐 정리가 끝나고 셋은 학교 밖으로 나가 배를 채울 곳을 찾는다.
"간단하게 여기서 먹고 가요~"
연우 어머니는 김밥집 앞에 걸음을 멈췄다.
"오늘 같은 날은 고기라도 먹이고 보냅시다. 거 참"
연우 아버지는 연우 어머니를 못마땅해했다.
평소, 외식이라고는 해본 적 없는 집이었다. 치킨도 탕수육도 시켜먹는 것보다 푸짐하게 먹는다며, 연우 어머니는 거의 모두 집에서 만들어 먹였다. 연우는 난처해했다.
"김밥집 가서 돈가스 먹을게요. 그럼 되죠?"
그렇게 김밥집에서 가장 비싼 메뉴들만 골라 푸짐하게 한상이 차려졌다. 해는 이미 넘어가고, 헤어져야 할 시간이 다가왔다. 어머니는 주머니에서 두툼한 하얀 봉투를 꺼내어 연우에게 내민다.
"기숙사에서 밥도 주는데 뭘 이렇게 많이 넣으셨어요~ 교재 살 돈이랑 용돈 조금이면 돼요."
그래도 이게 부모 마음이라며, 받으라고 하신다.
그리고는 연우의 뒷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한참을 손짓하시다 차에 올라탄다.
연우는 기숙사에 돌아와 지친 몸을 침대에 맡긴다.
'아, 오늘은 일기부터 써야겠다!'
벌떡 일어나 펜을 들고, 일기를 써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