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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토프 Aug 12. 2021

"울게 냅 둬 얼마 살지도 못해"

매미는 무례하지 않았다.

아들이 졸린 눈을 비비며 말했다.

"엄마, 매미 소리가 너무 커. 그래서 깨서 시계를 봤는데 5시 40분인 거야. 그러고 다시 자긴 했어."


평소 같았으면

"그래? 창문 열고 자서 그런가? 닫고 잘 걸 그랬나 봐. 그래서 잠이 안 깨? 더 잘래?"

라고 말했겠지만


'매미'라는 단어를 듣는 순간 왜 이리도 내 처지와 닮았다고 느꼈는지, 오늘은 아들 편을 들어주지 못했다.


"매미가 얼마 만에 성충이 된댔지?"


"5년인가?"

무려 7년이다. 땅속에서부터 성충이 되어 자기 목소리를 내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7년.


"암튼 엄청 길었던 것 같은데... 그냥 좀 봐주자."

얼마 살지도 못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지만 이미 충분히 마음이 아팠다


"그래."


7년을 버티고 완전체가 되어서 자기 목소리를 쩌렁쩌렁 일주일에서 스무날 정도 실컷 내고 나면 일생이 끝나버리는 매미에게 불쌍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7년이나 되어서 자기 목소리를 내는 매미가 꼭 나 같았다.



 대화가 진행되지 않는 사람과 살다 보니, 중간쯤이면 서로가 말하고자 하는 것에서 이미 멀어져 있고, 더 말해봤자 에너지만 쓰고, 말끔하게 끝나지도 않는다. 어느샌가 속으로 말하는 게 더 익숙해지고, 해봤자 소득 없는 싸움에 입도 열 생각을 안 한다. 그렇게 지내다 결혼 10년 만에 화병이 왔고, 그제야 나는 내가 살려고 내속에 있는 말을 거르지 않고 다 말하게 됐다. 그게 누구든, 남편의 어머니든 나의 어머니든. 남편은 여러 사람 불편하게 해서 좋냐고 비꼬지만, 나는 매우 행복하다. 지금까지 살면서, 타인을 마음 편하게 하려고, 내 마음 불편하게 38년을 살았으니 이제는 좀 편하게 살아도 되는 거 아닌가.


 내 아들 돌잔치를 당신이 해주고 싶다며,  성인 30인분 음식을 집에서 직접 차리겠다는 남편의 어머니에게도 나는" 네, 그렇게 하세요"라고 했다. 다른 엄마들은 고운 화장에 예쁜 원피스에 돌 끝 맘이라는 단어를 써가며, 멋진 돌잔치 사진을 남기는 동안, 나는 끝도 없는 대접할 음식을 만들고 있었다.

왜 남편의 어머니든, 나의 어머니는 나에게 어떻게 할 것인지 묻지 않는 걸까.

시부모님은 항상 서울 쪽에서 결혼식이 있으면 우리 집에서 1박 또는 2박을 지내셨다. 거의 5년간 6주에 1번 정도 오셔서 주무셨다. 한 번도 자고 가도 되는지, 나에게 물으신 적이 없었다. 우리집인데 우리집이 아니었나 보다.

친정엄마는 우리집에 오기 전에 문자를 보내온다.

"지금 출발"

온다는 얘기도 없다가, 출발하고 나서 한 줄만 딱 보내온다. 우리집엔 나만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왜 저희 집에서 주무시고 가는걸 당연하게 생각하세요?


왜 우리 집에 올 때 가도 괜찮은지 묻지 않는 거야?



왜 딸에게만  엄마 힘드니까 많이 도와주라고 하시는 거예요?


왜 남자아이는 머리를 묶으면 안 되는 건대?


나는 틀린 말을 안 하는데, 내 말이 틀리다면서 당신들 말이 맞는 거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여러 사람을 불편하게 하는 나쁜 사람이 되어있다.



세상에 나오기를 7년 동안 기다리다가

크게 한번 울었다고,

시끄러워 죽겠다고.

널 나쁘다고 하는 게.

꼭 나 같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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