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째를 낳기 전까지도 나는 머리숱이 많았지만 내가 머리숱 부자라고 자랑할 만큼 대단하게 여기지는 않았다. 그런데 이제는. 온전히 내게서 자랑할 거리라고는 머리숱이 전부다.
태어날 때부터 머리숱이 많았던 나는 머리숱에 관련된 에피소드도 많다.
어릴 때 이를 한번 옮아오기라도 하면 엄마는 난리가 났었다. 내 머리숱은 그들에게 최고의 주거지였다. 참빗으로 머리를 빗어내면 알들이 붙어 나오고 엄마는 그걸 톡톡 터뜨리느라 바빴다. 해도 해도 끝이 안 보이면 미용실로 데려가 독한 파마약으로 살처분도 하고, 약국에서 약을 사다가 이틀을 발랐다.
한 번은 명절에 할머니 댁 간다고 비행기를 타러 공항에 가던 길이였는데, 택시에서 내리려는 내 이마를 엄마가 엄지손톱으로 콱 찍었다.
톡 소리와 함께 이가 터졌다. 30년 전 기억인데도 이마가 아픈 것 같다. 아직도 엄마는 그때 정말 지긋지긋했다고 말한다.
내 머리카락은 반곱슬이다. 겉에 덮고 있는 모발이 곱슬이 심하고, 안쪽은 곱슬이 덜 한편이다. 그래서 파마를 하려면 매직도 꼭 해야 한다. 미용실에 가는 날은 나에게 쉬는 시간, 점심시간이 없는 6교시 수업인셈이다. 머리 하는데 평균 6시간 걸린다. 이런 날은 커피도 마시지 않는다. 화장실 가는 시간도 줄이며 내 엉덩이를 보호해야 한다. 로트를 말아 기계에 끼우면 무거워서 목이 부러질 것 같다. 그런데 이 과정도 남들보다 2배로 길게 한다. 모발이 두껍기 때문이다.
새로운 미용실에 가면 디자이너분들은 이렇게 말한다.
"저 머리 만진 지 8년 되어 가는데 머리숱 많은 손님 중에 1등이세요."
그리고는 항상 덧붙인다.
"머리숱 많아서 좋으시겠어요."
그럼 나는 그때마다
"아뇨 저는 잘 모르겠어요. 불편한 게 더 많아요."라고 했다.
나이 들면 알게 될 거라고 다들 그렇게 말했다.
첫째를 낳고 한 달 만에 머리카락이 빠지고, 남들 빠지는 시기에 나는 다시 머리카락이 나기 시작했다. 더 많이......
둘째를 낳고도 마찬가지였다. 더 빨리 빠지고 더 많이 났다. 그래서 "머리숱이 많으시네요" 할 때 "출산 두 번 한건 대요."라고 얘기하면 더 놀란다.
셋째 낳고는 무서웠다. 한 달 만에 매일 계란 하나씩 빠졌다. 그리고 또다시 채워지기 시작했다. 지인들이 물었다.
"너는 왜 머리숱이 그대로니?"
부러움과 슬픔이 묻어나는 물음이다.
예전 같았으면 "무겁고, 불편하다." 했을 텐데.
요즘은 이렇게 말한다.
"나한테 남은 건 이것뿐이에요. 내 몸뚱이에서 자랑할 거라곤 이거 말고는 없어요."
10대 시절 한쪽 귀에 머리카락을 넘기고 가느다란 실핀을 꽂아보는 게 소원이었다. 머리카락을 넘기면 살짝 귀가 보이는 게 소원이었다. 단발머리를 하면 머리카락 볼륨이 내 어깨너비가 되어갔는데, 제발 내 두피에 딱 붙어있길 바라고 또 바랐다. 머리끈이 갑자기 터지는 일이 다반사고, 머리를 높이 묶은 날엔 목이 아플 지경이었다. 그뿐인가. 머리를 완벽하게 말리는 것은 바라지도 않는다. 미용실 쌍 드라이는 종종 봤을 것이다. 나는 쌍 드라이를 두 명이서 해준다. 그 정도 공을 들여야 하는 일을 혼자서 하려니 완벽히 해낼 수가 없다.